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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3월호 | 작가 리뷰 ]

이종 간의 조합이 주는 시너지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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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국
  • 글 이재언 미술평론가

지난 10년간의 도예 상황은 위축과 정체 그 자체였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도예의 역동적 실험이 미술계 일반에 널리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젊은 도예가들의 도조나 환경도자 등에 걸친 다양한 실험은 현대미술에서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일구어가는 중이었지만 불가피한 환경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태풍과도 같은 바람이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IMF 경제 위기 이후 그러한 도예의 힘찬 에너지 분출을 더 이상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거대한 오브제 실험을 중단하고 공방의 존립을 위해 선택한 것이 기껏 ‘문화상품’이라는 모호한 이름에 몸을 의탁하는 것이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의 미술시장 호황을 보면서 이런 가정을 해본다. 최근 1-2년 사이 미술계가 절정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현대도예도 꾸준히 실험적 에너지를 지속했었다면 어떠했을까. 모르긴 해도 지금쯤 이 호황의 주도적 위치 혹은 수혜적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오늘날 목격되는 도예의 상대적 위축을 볼 때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예가 이헌국의 근작은 이런 점에서 반갑다.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 8회 개인전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마주친 남녀 인체 입상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투명하고 영롱한 감각적인 유리 작업이고, 상체는 왜곡 변형된 구체들의 아쌍블라지, 하체는 조합토에 의한 육중한 도조각 등으로 조합을 이루는 입체작품이다. 거의 등신 크기에 가까운 작품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스케일이 크고 에너지가 응축된 역작이다. 물론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그보다는 작은 크기의 오브제 작품들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대작에 못지않은 에너지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각별한 경험을 전해준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와 도자 고유의 특성에 관한 문제이다. 종래의 도조는 조각이 되는 그리고 조각다운 도자를 추구했다. 따라서 질적인 문제나 밀도의 문제보다는 크기의 문제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도조 운동이 한계에 직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자 고유의 기법과 재료, 구조와 형태, 색상을 중심으로 한 유니크한 표현의 탐구에 소홀했던 것이 반성된다. 그에게서 도조 특유의 아우라가 물씬 배어나는 조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반가운 일이었다.
작가가 도자 고유의 기법을 이용한 표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바는 다름 아닌 풍선을 이용한 아쌍블라지 양식에서 잘 드러난다. 둥근 풍선에 얇은 박막의 흙판을 균질하게 감쌌다가 공기를 빼면서 자연스럽게 수축적 변형과 왜곡이 일어나게 하는 기법이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형된 수축 형태의 단위들이 일정한 포맷으로 집합되어 구조를 이룬다. 그 집합은 구, 과일, 육면체 등의 구조 및 이미지를 띠거나 혹은 발鉢에 담긴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비정형의 구조체로 조합되기도 한다.
이렇게 조합된 아쌍블라지는 호두의 속살을 연상시키고 있지만, 그 속에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나 표정들이 숨어 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따라서 발견과 해석의 과정과 역할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거대 형태로서가 아니라 밀도 높은 형식을 통해 읽는 묘미를 전해주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주목되는 점은 우선 유리와의 컴비네이션이다. 유리는 금속과 잘 매치되는 특성상 금속조형에서 많이 다루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 가지 공정이나 시설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어 도예와 유리가 병행적으로 탐구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불투명성과 투명성, 고체적 질료와 유동 과정을 거친 질료의 공존이란 이질적인 조합이면서도 상호 시너지 효과를 가지는 관계항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통일성이 강조되면서 이질적인 요소를 배척하였지만, 새로운 패러다임과 트렌드는 다양성과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각 요소들의 이질성 혹은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면서 전체적인 유기체적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도자조형이 무언가 돌파구를 열기 어려웠던 것은 바로 도자의 고립적이고 근친교배적인 정체성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예술적 상황이 혼합과 절충으로 치닫고 있는 거대한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한계가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예술적 상황을 살펴볼 때 가변성과 유연성, 조합의 기민한 대처가 양호한 장르가 주도권을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믹스드미디어라는 개념은 단순한 안료적 혼합만이 아니라 거대한 장르나 영역 간의 이종적 교배로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교배적 조합이 결국 ‘새로움’의 요체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유리-도자 믹스드미디어 작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도예계에 의미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물론 보다 정제시켜 가는 시간과 과정이 더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점은 매체적 결합만이 아니다. 작가 고유의 표현기법들조차도 정제의 과정과 더욱 정묘한 응용의 집합들을 증대시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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