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II
<공예가들, 모임에 나가다>
글.이수빈기자
모임의 즐거움은 함께 하는 사람으로부터 연유한다. 30년이 넘게 매해 빠지지 않고 전시를 열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어려운 유리 블로잉 작업을 함께 하면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 달마다 모여 책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공예가들은 욕심없이 기쁜 마음으로 책에서 찾은 지혜를 나눴다. 모임 이상의 의미를 찾은 세 개의 그룹을 만나보았다.
흙으로 추는 시대의 노래 <흙의시나위>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연대해야 나아갈 수 있다. 30년 전의 여성 도예 작가가 그러했다. 흙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마음으로 도 자 조형 작업을 하는 여성작가들을 모아 ‘흙 의 시나위’를 일구었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설립 초기의 멤버들은 젊은 작가들에게 시나위를 통한 경험을 물려주고 각자의 작업실, 학교의 연구실에서 후배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흙의 시나위 설립 멤버, 문재희 작가는 “제3갤러리를 통해 새로운 작업을 하는 여성 도예 작가를 찾는다며 공문을 부치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인사동의 작은 식당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날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새로운 구성원들의 신선한 전시였기에 첫 전시부터 많은 분의 관심과 응원속에 시작했어요. 시작이 좋아도 중간에 흩어지는 모임이 상당히 많은데 후배님들이 매우 체계적으로 잘 운영해주고 있어서 고맙고, 또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흙의 시나위는 3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시를 열어 여성도자조형 그룹으로써 도 예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성이기에 마주쳤던 크고 작은, 가정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작품을 통해 말했으며, 그들이 겪은 시대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풀어나갔다.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든 바뀌고, 시간이 흐르 며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달라진다. 오늘 날의 시나위가 전시를 통해서 하려는 이야기도 예전의 ‘여자’보다는 나 자신의 표현과 전달에 집중하며 서서히 변화해왔다. 지금의 시나위를 이끄는 김문경 도예가(현 시나위 회장)와 정지현 도예가를 만나 그들이 써온 그간의 역사와 다가올 미래에 관해 들어보았다.
Q.모임에 어떻게 가입할 수 있나요?
예전에는 공모의 형태로 회원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임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추천제로 진행하고 있어요. 작업을 관심 있게 보던 작가와 연이 닿게 되면 가입을 권하곤합니다.
Q.여성들의 모임이라 눈길을 끕니다.
처음 모임을 꾸릴 때에도 여자들끼리 무언가를 보여주자고 시작했기 때문에 ‘여성 작가 모임’ 은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해요. 남녀를 구분하거나 배척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들끼리 힘이 되기 위함이죠. 여성 작가끼리 모인 모임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2017년에는 남성 작가들과 일대일로 협력하는 <호호好戶-이성교제>전을 마련 하기도 했습니다. 성별을 떠나 작업이 어울리는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었는데, 전시 준비 자체도 즐거웠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Q.여성 작가들의 모임에 있어 장점이 있다면요?
30대에는 출산과 육아를 겪는 등 주어지는 역할이 참 많잖아요. 그때 많은 작가가 작업을 포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시 기에 흙의 시나위와 같은 모임에 소속되어 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작업할 힘을 얻은것 같아요. 모임에서 같은 고충을 이해해주는 동료들이 있어 얼마나 힘이 되던지... 선배님들께서 ‘아이 키우느라 고생이 많을 텐데 작업 참 열심히 했다.’고 말씀해주시는 게 많은 응원이 되었어요.
Q.최근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30 주년 전시가 아무래도 가장 규모가 컸어요. 흙의 시나위 출신 선배들과 자주 교류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만나 뵐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도예계에 여성 조형 작가의 힘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전시였어요.
피스카스에서의 전시도 기억에 남습니다. 갤러리가 위치한 피스카스 예술인 마을이 매우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 우리 작품, 더 나아가 한국의 조형예술을 선보일 기회였습니다. 현지 사람들이 우리 작품을 좋아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전시 오픈 후 시간이 되는 작가들과 북유럽 여행을 했던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Q.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요?
대만, 일본 등 해외에도 우리와 같은 성격의 모임이 있을 것 같아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를 통해 핀란드 외 해외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해외 여성도예작가의 가입도 이뤄지면 좋겠죠. 또한 30년 이상 된 작가 모임으로서 사회공헌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외된 여성을 돕기 위한 전시나 바자회도 구상 중이고, 흙의 시나위 미래 회원이라 할 수 있는 도예전공 학생들을 위한 워크숍도 생각 중이에요. 우리도 그들에게서 젊은 창작 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성장해야 할 시기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배 작가를 만나고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선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리공예가들의 뜨거운 저력 <핫글라스>
유리분야의 협업은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띄었다. 결성과 해체 등 부침이 심한 공예계에서 롱런하고 있는 <핫글라스Hot Glass>가 말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속 비밀은 팀워크에 있다. 핫글라스는 블로잉Blowing, 램프 워킹Lamp Working 등 ‘뜨거운 유리’를 다루는 작가들의 협업에서 시작됐다. 블로잉 작업은 팀워크가 필요한 일이다. 1,200℃에서 1,500℃ 사이에서 액화된 유리를 파이프에 말아 빠른 시간 안에 형태를 불어 만드는 블로잉은 두세 명의 인원이 한 몸이 돼 움직여야 한다. 작업자를 위해 용해로에서 녹은 유리를 전달하고,양옆에서 무거운 파이프를 받쳐주고, 가마의 뜨거운 열기로부터 몸을 막아주는 등 복잡다단한 과정을 완성하는 힘은 ‘사람’에 있다. 핫글라스를 만든 김준용 작가를 청주대학교에서 만나 ‘특별한 팀워크’에 관해 들어보았다.
Q.유리공예는 작업 특성상 다른 분야보다 협업이 많습니다. 분야에서 핫글라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유리작가 20여명으로 시작해 현재 작가 28명이 활동 중이며, 작업적인 부분을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가입 대상은 출신학교와 나이와 관계없이 꾸준히 작업 중인 유리공예가와 유리를 전공한 대학원생입니다. 회원들이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예계의 침체와 시장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해 뛰어난 실력임에도 작업을 포기하고 모임에서 탈퇴한 작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공예의 대중적인 인지도 상승과 시장 활성화에 힘입어 유리공예를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어, 활동하는 작가도 늘고 모임도 활발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핫글라스의 주요활동을 소개해달라.
2013년 안산 대부도 유리섬 유리박물관 창립전을 시작으로, 1년에 한 번 단체전을 가집니다. 정기전에는 그 해 제작한 신작 출품이 원칙으로, 작가들이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전시 기간에 맞춰 열리는 워크숍이 우리 모임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데, 회원이 한자리에 모여 한 해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이며 회포를 푸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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