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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월호 | 뉴스단신 ]

떠나는 여자 김민지가 들려주는 길가온 여행기 4
  • 편집부
  • 등록 2018-02-10 03: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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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편(1)

남부시장골목에서 보이는 전동성당의 모습

 

 

 

많은 게 그대로고, 또 많은 게 변하기도 해요. 그런 거겠죠, 엄마.
그리고 만약 엄마 말씀처럼 “로마가 하루아침에 세워진 게 아니”라면,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들,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지니고 있는 것들도 그렇겠죠.
네, 어쩌면 오십 년 전에 엄마가 노엘가를 거닐며 지니고 있던 것을,
지금 여기 화랑 앞에 앉아 있는 제가 지니고 있는지도 몰라요.
만약 제 작품이 어디에선가 왔다면, 그건 엄마와 저 사이, 그때와 지금 사이의 어디일 거라고 믿어요.
존 버거 , 이브 버거, 『아내의 빈방』

 

전주에서의 하루
전주에 가는 것은 뭐랄까, 고향에 가는 것 같다.전주는 내게 가장 익숙한 타지이며, 타지임에도 곳곳에 단골이 있는 곳이다.누구와 함께 가도 즐거웠고, 누구나 만족했으며, 누구에게나 추천했고, 십년 동안 언제가도 늘 아름다운 곳이다.심지어 부모님 포함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어른이 계시는 곳이다.그런 전주를 2년 넘게 가보지 못하고 이제 예전의 전주가 아니라는 얘기만 듣던 차였다.일이 태풍처럼 몰아쳐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 원고도 못 쓰겠다 할 때, 졸음운전으로 인한 접촉 사고가 났고 ‘에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싶은 마음에 딱 하루의 시간을 냈다.대학 졸업반에 만나 이제는 이웃 주민인 음악감독 소연 언니와의 두 번째 전주 방문이다.

 

교동 한옥 마을

한옥마을은 일본의 교토 같다. 고즈넉하고 시공간을 초월하며 전통이 깃들여 있고 문화적 민도가 높으며 음식도 최고다. 내게는 지인들의 부탁으로 만들어 놓은 전주 1박 2일, 2박 3일용 관광과 식사 코스 매뉴얼도 있을정도다.경기전과 아름다운 전동 성당이 있고, 골목마다 민요와 판소리가 울려 퍼지며, 갤러리, 민속품을 파는 곳이 줄지어 있는 곳, 오목대 정자에서 바라보면 선이 고운 한옥의 지붕들이 서로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곳.졸음을 극복 못하고 눈감은 채 고속도로를 달려 언니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며 겨우 도착한 교동은… 낯설었다.하나있는 호텔은 이름이 바뀌었어도 그대로였고 정다운 울 유신욱 쌤(유영플라워 회장)의 웃음소리와 느릿한 사투리도 그대로인데 한옥마을은 달라져 있었다. 들뜬 마음에 숙소를 나서며 길을 걷다가 눈이 휘둥그레 해지기가수차례.. 당혹스러웠달까. 와~ 뭐 이건 그냥 전주 시내를 옮겨다 놓은 듯 불야성이었다. 내 기억이 전부 사라져버린 기분. 촌년처럼 두리번거리며 “쌤, 여기가 왜이래요”만 연발했다. 쌤도 “긍께~ 나도 부끄러워 죽갔네잉”하고 응수 하셨기에 입 닫고 씁쓸한 마음으로 말끔한 가게에 들어섰다. 쌤은 저녁도 못 먹고 도착한 우리를 텔레파시가 통한 듯 족발집으로 이끄셨다. 사실 차안에서 노래노래 한 것은 마차집의 양념족발과 연탄돼지갈비였기에 족발이라는 얘기에 그저 히죽하며 쌤을 따라 걷다가 도착한 곳은 ‘장가네’였다. 20년 맛 집이라는데 리모델링을 해서 그런지 깔끔한 건좋았지만 다정하고 구수한 느낌이 없어 서운했다. 하지만 맛 만큼은 100년 노포처럼 연륜이 넘쳐 어느새 우리는 백김치 국수까지 흡입하며 천둥소리라는 막걸리를 댓병 비워버렸다.대학을 졸업하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고 들어선 이 길이 얼마나막막하던지 이십대 후반에 여러 악재가 겹쳐 딱, ‘그만둔다’하던 그때, 선생님은 “힘들수록 좋은 걸로 잘 먹어야 네가 더 귀한 사람이 되는 거다”하시면서 등심을 구워주셨다. 그렇게 격려해주시고 칭찬해 주신 덕분에나는 아직까지 용케 버텨내고 있다. 꼭 같이 작업하고파 꿈꿔왔던 감독님과 영화 작업을 같이 하게 된 얘기를 꺼내놓으며 “모두 쌤 덕분이에요” 눈물 글썽이는 고백도 술김에 했다. 눈물은 글썽여도 2차는 가야하고 단골 막걸리집인 홍도주막은 멀어서 모두의 은자언니가 있는 동문거리 ‘새벽강’으로 향했다. 멸치와 호박 지짐만으로도 술자리는 풍성하고은자언니의 선곡도 좋고 우리는 흥에 취해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숙소에 돌아와서는 결국 미니바를 습격했다. 단잠도 잠시, 우리보다 열배 부지런한 쌤 덕분에 일찍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왱이집’으로 향했다. 벌들이 왱왱거리듯 손님이 모여들어 흥하라고 이름 붙인 왱이집은남부 시장식 콩나물 국밥으로 유명한 집 가운데 한곳이다.

푸른돌 도자작업실
왱이집에서 도자 작업하는 은주언니를 만나 함께 해장하고 언니의 ‘푸른돌 작업실’로 향했다. 사실 전주에는 도자 작업실이 많은데 한옥마을 쪽은 유독 원데이 클래스가 많다보니 공방이 아니라 아카데미 같아 쉬이마음이 가지 않았다. 여유가 있으면 제주여행(본지 4,5월호 ‘떠나는 여자김민지가 들려주는 길가온 여행기-제주편’ 참고) 이후 흥미가 완전 생긴옹기 구경하러 진안 손내옹기를 갈까싶었지만 (2005년 무렵 이현배 작가님을 뵙게 해주신 것도 유쌤이시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고민했는데,쌤이 언니를 불러주셔서 더욱 완벽한 쉼표 여행이 되었다. 유난히 얇은몸에 올 블랙 패숀으로 무장하신 언니는 변해버린 한옥마을이 싫어서자꾸 도망을 다니며 어디로 이사 갈까 궁리중이라고 하신다. 은주언니는삶이 몹시 무료했던 때에 지인의 권유로 흙에 정을 붙이면 사는 것에 좀더 마음 붙일까 싶어 도자를 배웠단다. 하다 보니 나름의 즐거움이 있어 그렇게 조금씩 작업을 지속해 왔다고 했다.차를 한잔 마실까하며 바로 위층 언니의 집으로 갔는데, 웬걸.. 작업실보다 집이 너무 탐이 나서 ‘우리는 너무 좋다,너무 좋다’만 연발했다. 사람 많은 그 길가에서 그저 계단을 따라 올라왔을 뿐인데 다른 세상인양 오밀조밀한 세계가펼쳐졌다. 손길 닿지 않은 구석 하나 없이, 허투루 놓인 것 하나 없이 개성 있는 집을 보니 나의 작업실이 왜 이리 부끄럽던지.. 결국 분덜리히Fritz Wunderlich 음악으로 의기투합한 두 언니님들은 와인을 뽕~ 따시고 운전해야하는 수면 부족자는 낮잠을! 잠결에 멀리서 들리는 듯한 두 사람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와 재즈보컬리스트 빌리 홀러데이Billie Holiday의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선잠을 잤다. 결국, 포도농장 증류주 소리에 눈을 반짝 뜨고 한 모금 맛을 보고야 말았지만.이날의 정경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각인될 평화로운 일상의 순간이 될 것 같다.숙소에서 짐을 뺄 시간도 되었고 해서 은주 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차에 올라타 남부 시장으로 향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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