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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월호 | 뉴스단신 ]

모란牧丹이 그려진 항아리
  • 편집부
  • 등록 2018-01-09 1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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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 속 그림, 그림 속 도자기 ⑦

「백자청화모란무늬항아리白磁靑畫牡丹文壺」 조선 19세기, 26.3×26.8cm, 국립
중앙박물관(덕수 1225)

 

여럿 가운데서 가장 작고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가리키는 것을 우리말로 ‘잔챙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는 물건 중에서 제일 나쁘거나 못생긴 것을 뜻하는 ‘째마리’나 변변치 못하고 너절한 물건을 가리키는 ‘섭치’와 같은 단어가 있는데, 고미술 시장에서는 값이 나가지 않는 조질자기를 두고 흔히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일례로 불과 오륙십 년 전만 해도 수화 김환기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사지 않나도 싶어 민족에 대한 원한 같은 마음으로 마구 사들였는지도 모른다”고 푸념할 만큼 백자 항아리는 골동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생활자기였다.1) 백자 달항아리가 우리나라 도자기를 대표하는 얼굴로 일컬어지는 지금도 태토의 정련도나 유색, 문양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일상기명, 가령 저장용기로 사용된 백자 항아리들은 소위 섭치로 취급된다.

구한말 전후에 생산된 크고 작은 백자 항아리들은 흔히 뒤주 위에 포개놓고 음식물을 담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말 신문 칼럼을 보면 “요새들 대청에 뒤주 놓는 것을 흉보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뒤주 위에 예쁘장한 항아리를 포개놓는 것이 어느 모로 보아서 보기 흉한지도 모르겠으며, 일부러 값이 싼 그림을 거는 대신 현판 같은 것을 이용한다면 훨씬 더 우아해 보일 줄 압니다”2)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또 아동문학가 어효선은 1952년 서울 수복 후 종로 거리의 고물상을 묘사하면서 “낡은 재봉틀, 선풍기, 유성기(축음기), 녹슨 스케이트, 나지오(라디오) 등등. 벽에는 서화 족자도 걸렸고 현판도 여러 개 세워 있었다. 선반에는 뒤주 위에 포개 놓였던 조선조 항아리 따위 도자기도 얹혀 있었다”고 당시를 술회하기도 했다.

한편 김환기는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소재로 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주로 그가 항아리를 수집하던 1944~1950년 전후, 서울시대 및 파리시대에 해당하는 1963년까지 회화의 소재로 백자호를 반복적으로 차용했다. 김환기의 서교동 집을 찍은 사진을 보면 대개 목이 직립하고 높은 조선 후기 백자호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도상의 연원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그는 백자 항아리의 둥글고 흰빛을 좋아하여 주로 순백자 원호를 많이 그렸지만, 그의 수집품 및 작품 일부에서는 모란, 학, 물고기, 구름 등의 문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가 그린 백자 항아리 속 모란은 구불구불한 꽃잎이 동심원 구도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고, 주변의 잎사귀는 통통한 형태로 묘사했다.

 

모란이 그려진 조선 항아리
이와 같은 목이 직립하고 높은 형태의 원호圓壺 혹은 입호立壺는 조선 후기 혹은 그 이후까지도 활발하게 제작 및 소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기가 늦어질수록 대개 목이 과장되게 높아진 형태로 나타나며, 전세품을 살펴보면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지만 일부에는 도안화된 간략한 문양이 장식된 예도 종종 있다. 백자호의 장식문양 중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 모란과 같은 화훼류의 도상이다. 조선 후기 백자에 널리 장식된 모란은 곡선으로 구불구불하게 겹겹이 그려진 꽃잎과 그 주위를 둘러싸거나 혹은 뻗어나가는 세 갈래 잎과 가지가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꽃과 잎의 형태를 선으로 그리고 문양을 채색하여 기면을 장식하였다.
모란무늬 항아리는 시집갈 때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뜻에서 가져갔다고 하는데4) 대개 고추장이나 꿀, 혹은 씨앗 등을 담는 단지로 사용되었다. 꽃 중의 부귀자富貴者라 불리는 모란은 부귀와 화목을 상징하여 장식회화의 소재로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으며, 가구 및 공예품에서도 중요한 장식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화훼를 그린 장식화 중에서는 단독 화제로 가장 많은 수량이 그려져 궁중화부터 민화에 이르기까지 병풍으로 다수 전세되고 있으며, 모란을 그려 넣은 자기는 광주 분원리요뿐 아니라 양구 칠전리 등 지방 가마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많은 수량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란이 그려진 크고 작은 조선백자 항아리들은 지금도 시장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량이 전세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일본에서 수입된 모란문호牡丹文壺
한편 흔히 목단항아리라고 부르는 일제강점기의 백자 모란문 항아리 또한 무척 많은 수량이 현재 시장에서 싼값에 유통되고 있는데, 근대기 일본의 조선 수출용 항아리 혹은 이를 모방하여 국내에서 생산된 유형으로 보인다. 실제로 개항 이후 일본 도자기 수입액은 점차 급증하였으며 통계적으로 외국 도자기 전체 수입액의 95% 이상을 차지하여, 근대 조선에 유통된 외국산 도자기는 곧 일본 도자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5) 일본산 조선 수출용 항아리는 푸른색이 선명한 조질 코발트 안료로 모란을 그리고 녹색 크롬 안료를 사용하여 잎과 가지를 묘사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채색하는 조선 항아리와 달리 몰골법을 사용해 잎 등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수출 모란문호는 대개 일본의 다케오武雄 또는 하사미波佐見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다케오의 시다志田지역은 1871년경부터 문양이 조각된 종이를 붙이고 안료를 바르는 스텐실型紙轉寫 기법을 사용해 문양을 장식하기도 했는데, 항아리의 구연 주변 어깨 부분에 장식된 문양에 자주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다 지역에서는 1930년대 석고틀과 석탄요, 인공 코발트를 사용해 요강 등의 용도로 제작된 수출용 항아리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하사미 또한 시다와 같이 항아리나 요강 등을 만들어 수출한 지역으로 유명하다.6) 항아리에 장식된 모란문은 하사미 등지에서 생산된 다른 기종의 도자기에도 장식된 예가 여럿 확인되어 도자기의 문양으로 널리 시문된 유형으로 생각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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