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 현대공예의 과제와 전망
한국 유리공예의 도약
김정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유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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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변하지 않는 투명함과 화려함을 간직한 매력적인 재료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의 하나이다. 잘 알려진 대로 유리는 단단한 물질이기 때문에 강도가 가장 높은 다이아몬드를 이용해야 연마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처럼 단단한 고체로 여겨지는 유리는 실제로는 고체형상을 가지면서도 액체 특유의 특성인 분자의 불규칙한 배열을 가지고 있는 과냉각액체이다. 또한 유리는 고온에서 용해되어 있을 때에는 전기가 통하지만, 반대로 상온의 고체화된 상태에서는 절연의 성질을 보이는 이중성도 가지고 있다. 유리는 금속산화물들의 혼합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물과 같이 단일 물질로서 어는점과 녹는점이 없다. 단지 서서히 녹기 시작하고 서서히 굳는다고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원소 중 90여 종이 유리의 성분이 될 수 있다. 그 혼합물의 종류와 비율에 따라 달 여행에 견딜 만큼 강도가 뛰어난 우주선의 창유리에서부터 조형작업을 위한 강렬하고 화려한 색상의 유리까지 수만 가지의 다른 물성과 색상을 가진 유리의 제조가 가능하다.
대부도 유리섬 유리공예시연장 블로잉 시연광경
유리공예의 현황과 문제점
여러 얼굴을 가진 유리는 1960년대 미국에서 유리 공방 운동Studio Glass Movement이 일어나면서 일상생활뿐 아니라 예술 표현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원동력이 되어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유리전공이 대학에 개설되었으며 조형예술의 재료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지난 20여 년간 대학을 중심으로 기법 연구, 전시 및 학술대회 등을 통해‘유리공예의 도약’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유리 대중화의 성과는 여전히 낮은 편이며 예술 및 관련 산업 분야에서 큰 기여를 못하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유리가 일상생활 특히 가전, 건축, 생활용품 및 예술 분야에서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계속 증대되고 있음에도 유리공예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및 지원이 없었다. 2011년 공예 디자인 문화 진흥원에서 진행한 공예백서 선행연구에서 유리공예와 관련된 업체 및 시장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유리와 관련된 유일한 연구 자료라는 점은 그동안 정부정책에서 소외되었던 유리공예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또한 공예 정책이 사회의 당면 요구와 필요에 충분히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와 산업,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다. 공예정책과 지원이 이러한 사회적문제점 해소에 중점을 두어야 함에도 관광 상품 개발 및 수공산업 육성과 같이 근시안적 발전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 대학의 열악한 교육 여건과 대학 졸업자들을 위한 작가 양성 프로그램 미비로 전문 인력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유리과목이 개설된 6개 대학 대부분에서 다른 전공과 병행하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 실습에 필요한 기자재, 공간, 강의 인력, 및 심화된 수업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으며 유리전문가를 양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유리전공 졸업자가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작가로서 자립 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셋째, 유리공예품 및 작품제작에 필요한 소재와 기법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되어있지 않다. 건축용 판유리를 제외한 한국의 유리산업은 1990년대 대부분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소재의 생산 기반 뿐 아니라 기술력도 쇠퇴하였다. 현재 작가들이 사용하는 유리는 대부분 미국, 독일 등에서 수입된 것으로 작품가격의 상승과 유리 대중화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개선 및 발전 방안
도자, 한지는 오랜 세월 대중과 일상생활 속에 함께하며 발전하여 왔으며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2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유리는 종종 유럽에서 유입된 외래문화의 산물로, 깨지기 쉬운 고가의 사치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리에 관한 이러한 고정관념은 역사적 한계에서 비롯되기보다 전공자들이 유리가 갖고 있는 녹색산업, 문화산업, 지역특성화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데 기인한다. 유리공방이 활성화 되어있는 미국, 일본, 유럽에서 유리는 더 이상 소수를 위한 값비싼 장식품이 아니며 투명함과 화려한 색상을 가진 예술품이자 일상생활을 위한 공예품이다.
위에서와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유리가 갖고 있는 미래 가치를 찾아내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양성과 대중의 인지도 향상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우선 국공립 대학 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대학을 유리특성화 학교로 지정하고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전문가 양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시설과 공간을 갖춘 독립된 학과가 설립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자립이 어려운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공간과 일자리 제공과 같이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인큐베이팅’제도가 필요하다. 유리작업을 위해서는 큰 규모의 시설과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하며 젊은 작가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공의 성격을 띠는 대형 유리공방이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리가 생소한 분야였던 일본에서 유리공예가 발전되고 단기간에 대중화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지자체가 중심이 된 유리 공방 활성화였다. 그 중에서도 토야마Toyama, 니지마Niijima, 오타루Otaru는 관광 또는 소재의 특화가 가능한 지역적 특성을 유리공예와 접목시켜 발전된 곳들이다. 이곳에 설립된 대형 유리공방들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소재개발, 기법연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함으로써 작가들이 운영하는 소형공방의 확산과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를 하였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제주도, 대부도, 남이섬 등 관광지에 큰 규모의 유리 공방이 운영되고 있으며 삼척 도계마을과 도자재단과 같이 지자체에서 설립한 유리공방도 운영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유리작업에 필요한 시설과 공간을 구비하고 있어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소재 및 기술 개발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트샵, 일회성 체험과 같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관광과 유통 분야가 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공방에서는 지역주민을 위한 장기적인 체험학습과 젊은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전문가 양성과 나아가 유리 대중화에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사설 공방이 수익성이 적은 교육, 연구, 작가지원과 같은 공익사업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공방 운영자의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와 함께 지자체나 정부의 재정 및 행정적 지원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음으로 소재의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예품의 질과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재료의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유리공예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유리공예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기업, 공방이 협심하여 재료를 개발하고 연구 자료를 DB화 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토야마 유리 공방Toyama Glass Studio에서는 재료 개발의 중요성을 깨닫고 요업 연구소, 대학과의 산학 협동을 통해 독자적인 유리를 개발하였다. 3년에 걸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토야마 만다라채」유리는 현재 이 지역 개인공방과 작가들의 조형작업과 상품제작에 사용되며 토야마 유리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코닝 유리회사는 자신들의 자본과 기술력을 유리조형 발전을 위해 제공한 경우로 이 회사가 설립한 코닝 박물관Corning Museum of Glass은 유리 재료, 제작 과정과 관련된 20만 건 이상의 자료를 DB화 하였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는 전 세계 모든 유리 공예가들에게 제공되며 유리의 지속적인 발전과 확산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부 출연 연구소로 세라믹 소재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세라믹기술원에서 유리 소재를 병행하여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우수한 연구 환경을 갖춘 세라믹 기술원과 대학이 협동 체제를 갖춰 한국의 실정에 맞는 유리개발을 위해 노력한다면 소재의 국산화는 멀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유리공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특히 유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력과 이를 담당할 전문가의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교육, 연구, 개발, 유통 및 관광 등 공방 사업 전 분야가 균형을 이루는 공방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유리공예의 도약이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유리 작가 및 대학 구성원들의 단합과 노력과 정부의 재정적, 정책적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대부도 유리섬 유리박물관 전경
필자 김정석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금속전공으로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대학원 유리과 졸업, 일리노이대학 조소과 대학원 수료, 서울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미술박사(D.F.A.)를 마쳤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8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 유리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참고문헌
- 이헌식, 『삶과 과학속의 유리이야기』, Timebook, 2005
- 2011공예백서선행연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 김정석, 이지혜, 「국내외 유리공방 분석을 통한 유리공예 활성화 방안 연구」, 공예논 총, 2013
- 토야마 유리공방 홈페이지 www.toyama-garasukob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