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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월호 | 특집 ]

무형(無形)의 에너지(energy) ‘전통’ 그리고 ‘현재진행형’-노경조
  • 편집부
  • 등록 2014-10-31 09:07:03
  • 수정 2014-10-31 0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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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 전통도예의 뉴 제너레이션

무형(無形)의 에너지(energy) ‘전통’ 그리고 ‘현재진행형’

노경조 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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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예술陶磁藝術은 인류역사 속에서 나타난 가장 유형有形, tangible의 창조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도자기는 세계문화 속에서도 비교적 가장 광범위한 생산품으로써 인류 역사와 문화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보편적으로 높은 온도의 소성燒成을 통해서 얻어진 내구성耐久性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특질特質 때문에 도자기는 흔히 형태form, 장식decoration, 태토clay 등을 통해 각 시대의 문화적, 지역적 특색을 반영反映한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 대부분의 소장품이 도자기이며, 이를 통해 각 시대, 지역의 생활환경, 식문화, 시대적 트렌드trend, 문화적 특성 등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도자기가 갖는 영속성永續性의 반증反證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물론 다양한 시대에 존재했던 제작자들makers은 각 시대의 기술적 제약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생산품의 제작 방향이 결정되었겠지만 이 또한 시대적,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제작자 자신을 통해 작품에 녹여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제작품들을 위한 다양한 영감들inspirations을 자신의 문화적 특성들로 부터 얻었을 것이고,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다름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예컨대 시대마다 미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게 변모하듯이, 도자문화의 범주 안에서도 이러한 변화되는 미감美感은 제작자를 통해 도자기에 구체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집약되어 나타났고, 문화를 재는 척도尺度로서 각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그 시대를 대변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도자기 청자, 백자, 분청사기의 예를 들어보더라도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와 함께 도자기 제작이 비롯되었지만 중국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고 독자적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의 청자와는 달리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 독창적인 상감象嵌기법의 사용, 환원소성에서 산화동酸化銅 안료의 붉은 진사辰砂 발색법 등 세계 도자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기형과 문양의 세련되고 아름다움은 당시 고려인들의 높은 정신적 소양素養을 통해 불교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분청사기는 정치적, 문화적으로 쇠퇴한 고려 말에 고려청자의 전통을 근간根幹으로 등장하여 신흥왕조인 조선 왕조가 정착되는 과정의 초기 200년 동안 존재하다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매우 독특한 부류의 도자기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분청사기는 지방색이 강하며 상감,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덤벙 등 다채로운 장식기법의 사용을 통해 대담한 형태와 추상적인 표현이 가능하였던 것은 왕조의 교체 과정에서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그 동안 내재된 장인들의 미의식이 자유롭게 일탈逸脫되어 표출된 시대상의 반영反映일 것이다. 한국미술의 백미白眉라 일컬어지는 조선백자 또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통치이념 변화 속에서 생겨난 시대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고려를 상징하는 청자대신 백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을 표방하며 검약儉約과 실질實質로 대변되는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인의 미감을 절제된 표현수법을 통해 잘 반영한 도자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한국 전통 도자기의 유형類型과 그 정신세계는 그 시대 문화를 이끄는 무형無形의 에너지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진화하고 있다. 전통이란 민족문화에서 변하지 않고 일관되게 계승되는 무형의 정신적인 개념이다. 필자가 이 같은 무형의 정신적 에너지를 ‘전통傳統’이라 표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 글은 이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민족 고유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무형의 에너지로서의 ´전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 전통도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명감을 지니고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에게의 필자의 애정 어린 당부의 목소리이다.

 

이미 서술한바와 같이 전통이란 과거의 산물로써의 가시적可視的 결과물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시시각각 변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유기체 같은 것이라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도자분야에 있어 ´전통´이란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있어 극복되어져 떨쳐버려야만 하는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이해 문제의 결여缺如 때문일 것이다. 수백 년 간 독자적 도자 전통의 맥을 이어온 우리나라는 19세기 후반 국운이 쇠퇴하면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의 중심지로 변모하였으며 주체적 모색摸索과 선택選擇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타의적 힘의 논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불행한 처지였다. 모든 분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기간 동안 우리 도자 문화가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오늘날의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오해를 만들어낸 원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거듭되는 국난의 혼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상황이 되어, 우리가 지향할 바를 설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과도기를 가져야 했다.

 

이처럼 19,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 도자 문화가 겪었던 사회, 문화 등의 문제들은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도자의 ´전통´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어려운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전통이 단순히 답습踏襲하여 계승되어야만 하는 고리타분한 옛것이 아니라 충분한 이해와 선택적 취합聚合을 통해 현재의 시대정신과 조화되어야 하는 새로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과거가 화려했던 전통문화 속에서 완성되었던 선대의 도자기들이 현대 도예작가들의 지향해 나가야 할 목표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한국 도예가 넘어야 할 벽이며, 오늘날 우리가 옳은 의미에서의 전통을 발현發現하기 위해 당연히 숙지하여야 하는 하나의 수련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이란 형태form를 모방模倣하는 복제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써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함께 살아 숨 쉴 때 진정한 의미로서의 전통이라 말할 수 있음을 시사示唆 하였다. 다시 말해 전통 자체의 의미는 형태로서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신적 밑받침으로의 전통이 형태에 피력披瀝되어야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루한 답습만으로는 선대의 도자기가 형태는 아름다움을 뛰어 넘을 수 없으며, 이 같은 화려한 전통의 일방적인 답습은 전승이란 방법으로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가령, 청자 매병梅甁은 고려시대에 존재 했을 때 그 전통의 실체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모방품replica으로써 현재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복제되어진 전통의 껍데기만이 남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전통은 형태적 복제가 아닌 무형의 에너지로서 그 시대상과 함께 정신적인 상태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새로운 형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과거 전통의 충분한 고찰考察을 통한 민족 미의식의 특징과 그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좋은 자질의 작가라는 매개체의 조화를 통해 현재를 대변하는 새로운 전통의 탄생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발맞추어 현대를 살아가는 도예가들이 이 같은 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세계 도자 문화를 받아들이는 주체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도자는 세계 중심에 서서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노경조는 경희대학교와 동대학원, 일본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했다. 미국 버밍엄박물관과 뉴올리언즈박물관에서 초대전을 가졌으며, 작품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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