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 전통도예의 뉴 제너레이션
뉴 제너레이션들이여!
- 21세기의 주인공이 되자
| 김세용(세창) 도예가. 대한민국 명장 02-22호
봄의 문턱을 넘어서는 입춘도 지나고 보니 밤낮의 기온차로 아침풍경 저 너머가 뿌연 안개 속에 보일 듯 말듯 가리어져 있다. 마치 요즈음 우리 도예계의 현실처럼 느껴져 답답하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바다로 가는 여정에 어떤 고난과 행복이 기다릴지 모르는 것처럼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필자도 어느새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느새 후배들에게 이런 글을 쓰는 날이 온 것을 보면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원고 청탁을 받고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말을 해주어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지, 자신부터 돌아봐야 했고 또 나의 자식들도 대를 이어 가고 있기에 심히 염려스러웠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또한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대를 잇고자하는 후배들에게 우선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그리고 응원의 박수와 찬탄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역사와 제도가 부여한 질서 속에서 전통을 계승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멀리도 아닌 내 곁에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잘 알고 있다. 6~70년대에 우리가 처음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보다 지금세대들은 더 많은 숙제를 갖고 살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안타까워 어떻게 해야 ‘줄탁동시窋擢冬時’가 될지 늘 화두이다.
줄탁동시란 다 아는 말 이지만,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 병아리로 다 자란 새끼가 안에서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콕콕 쪼으면 밖에서 어미닭이 이를 알아차리고 동시에 겉껍질을 쪼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준다는 말이다. 만약 어미닭이 못 알아들으면 안의 병아리는 죽게 되고 또 너무 빨리 나오라고 쪼아대면 덜 자란 병아리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심정으로 지켜보는 부모나 스승들이 항상 깨어있어야 보살펴 줄 수 있을 테고 또 서로가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물질만능시대이면서 변화가 심한 현실 이다보니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무엇보다 후손들에게 도자기로 성공한 모습,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 동경과 희망을 갖게 해 주어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래야 후손들이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겨 전통을 이어갈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국립중앙박물관을 견학 갔다가 우연히 도자기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고려선조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혼을 담아 만들었을 청자의 매력이 동기부여가 되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천 년 전에 그렇게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었던 고려 선조들이 존경스러워 지금까지 그들의 혼까지도 닮아 보려고 노력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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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제너레션들이여!
가끔은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왜 가업을 이어 가고자 하는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가며 살아갔으면 한다. 혹 어쩔 수 없는 숙명이나 사명감 때문에 마지못해 억지로 대를 이으려 하고 있다면, 이 순간부터 뚜렷한 목표와 이유, 그리고 원대한 꿈과 확고한 철학을 마음에 심고 새롭게 시작해주기 바란다. 가업을 잇는 다는 것은 아버지세대가 해오던 일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대가 만들어놓은 경제적인 것이나 명예, 또는 주위의 환경을 이용해서 똑같은 작업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답습일 뿐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 아무런 노력 없이 답습을 계속한다면 결국 후손들에게 알맹이 없는 껍질만 남겨 줄 수 있는 슬픈 역사를 만들게 될 수 도 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과 우리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 듯 대를 이었던 사람들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뒤 늦게라도 뚜렷한 소신과 특별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명문대를 나와 다른 분야에서 성공 했던 사람들이 간혹 가업을 이어 시대의 변화와 병행하며 성공했던 예는 있다. 그러나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잘못하면 도공이 아닌 도예사업가로 전락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예사업가로 전락하지 않고 도예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지적 유산이나 기술 유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1+1= 2가 아닌 0 또는 4나 5, 아니 그이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계발을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해보지도 않고 스승이나 선대들 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못해 본 다면 마치 병아리가 알속에서 세상을 향하여 나오려는 몸짓도 못해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가업을 잇는 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99퍼센트가 본인의 노력이고 1퍼센트만이 스승의 조언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기 뒤를 이어갈 세대들을 볼 때마다 수없이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래서 늘 애가 타고 안쓰럽다. 그런데도 항상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아직도 멀었다는 쓴 소리가 먼저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질책보다 칭찬을 많이 해서 스스로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쓴 말들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책이나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직접 부딪혀서 장애물과 친해져야한다. 장애라고 생각 했던 것들이 오히려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남의 요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면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해버릇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열과 성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주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역으로 자기 일인데도 늘 남의 일처럼 하다보면 그것이 습이 되어 그 사람은 결국 남의 일 밖에 할 수 없게 된다 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주인 의식인데 귀 담아 둘 필요가 있다.
비록 지금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겁내거나 두려워 할 것이 없다. 필자도 한때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국적 없는 도자기를 만드는 이단아라는 혹평을 들었다. 그러나 확고한 신념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독특한 나만의 도자세계를 고집했기에 명장의 반열에 올랐고 많은 투각기법을 개발하여 새로운 장르의 청자를 만들 수 있었다.
인생은 긴 마라톤 경주와 같아서 출발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출발하지만 결승점에 들어 올 때는 1등에서 꼴찌까지 순위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말고 폭넓고 튼튼하게 기초를 만든 다음 열정과 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꾸준히 자기 길을 간다면 틀림없이 성공 할 수 있다. 오히려 너무 잘 나간다고 방심하거나 교만해져서 실패 했을 경우 결핍경험이 없어 고통을 극복 하지 못 하고 쉽게 포기 할 수도 있다.
1980년 겨울에 겪었던 고행담
창업 이래 별 탈 없이 잘 나오던 청자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만들고 싶은 큰 욕심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조급한 마음에 밤낮 없이 만들어 구웠지만 2년여 동안 실패하기를 거듭하다 보니 모두가 지치고 빛이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또한 수없이 많은 도자기가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하고 마치 줄탁동시가 잘못된 것 같이 망치 세례를 받아 버려졌다. 그러나 결코 무의미하게 그냥 버린 게 아니고 실수 할 때마다 새롭게 배워지는 것이 있었고 또 여기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어 낮이나 밤이나 오로지 도자기에 미쳐서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위로와 격려가 시련을 극복 할 수 있게 한 것 같아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중에서도 아내의 왕과 왕비 지론은 간과 할 수가 없다. 지론인즉 남편을 왕같이 모시면 자기는 저절로 왕비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인데 항상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천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상심한 나에게 핀잔 보다 용기를 주던 아내가 천군만마 보다 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상대를 칭찬하고 높여 주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아내였다. 이런 이치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응용 한다면 살기 좋고 훈훈한 세상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으며 또 어떤 때는 큰 수술도 한다. 그것은 의사선생님이 무슨 병이든 치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처방을 받는 것이다. 만약 그때 도자기를 치료 해 줄 수 있는 전문의가 있었다면 그토록 오래 실패를 반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어디에도 물어 볼 때가 없어서 마치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자기스스로 해결 했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마치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 같기도 하고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이기도 했다. 누가 등 뒤를 떠미는 것도 아닌데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고행하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정진을 했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도자기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스스로 작용해서 나라는 것을 비울수록 더욱 혼이 실린 도자기로 승화 한다는 것이다. 항상 수행하는 구도자 같이 마음을 비우고 무심으로 삼매 속에서 작업 할 때 만족스런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세라믹기술원이나 대학, 또는 많은 연구기관, 선배도공들의 체험으로 만들어 놓은 많은 자료들이 있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배우기가 수월해졌다.
이집트의 도자기학교
며칠 전, 교육방송에서 이집트의 도자기학교에 관한 프로그램을 시청 했다. 도자기 마을에서 아이들이 점토로 동물들을 만드는 것을 보고 너무나 때가 안 묻고 순수한 도자기에 반한 선생님이 학교를 만든 사례이다. 도자기교육을 한다고 한가지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고 농사를 통해 자연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흙을 채취하러 사막을 다니기도 하고, 직접 만든 흙이나 유약으로 완성품을 만들어 보게 하여 흙의 성질이나 유약의 원리를 배우게 함으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 같아 참으로 본 받을만했다.
지금 우리는 흙이나 유약을 만들어 파는 곳이 있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런 교육이 시간 낭비 일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엄청난 교육이다. 필자도 처음 도자기를 배울 때 흙과 유약 만드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그때는 모두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던 때라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서로 견제하는 형편이었다. 때로는 어깨 너머로 몰래보고 배워서 실험을 하려다 들키어 혼 줄이 나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흙과 유약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워 자주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광산에서 좋은 흙이나 유약원료가 나온다 하면 빚을 얻어서라도 같은 질의 원료를 많이 확보 하려는 욕심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유약에 사용하는 좋은 재를 구하려고 강원도 산 속에 있는 숯가마를 찾아가서 구하기도 하고 직접 불을 때서 만들어 쓰기도 했다. 전기가 없던 때라 유약 원료인 돌멩이를 절구에다 부셔 맷돌에 갈아서 고운체로 걸러 사용하였으니 얼마나 원시적으로 작업을 했는지 지금 현 세대들은 아마 이해 못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불과 4~50년 전 이야기다.
가마 불 때기에 필요한 장작은 품종개량이나 용도변경으로 벌목을 하는 산이 있으면 나무를 사서 일일이 톱으로 잘라와 가마에 불 때기 좋게 패서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다. 흙은 수비해서 자연 건조 시킨 후 다시 물을 뿌려 재워 뒀다 발로 밟거나 떡메로 쳐서 성형하기 좋게 만들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 전기물레, 토련기, 볼밀 등의 기계들을 사용하면서부터 도자기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그 당시 도자기 요장은 대형화, 분업화 되어 있어 각 분야에 많은 인력이 필요했는데 생산 시스템이 분업화 되다보니 자기분야에만 전문가가 되어버린 반쪽 도공들이 만들어 졌다. 또한 각종 원료들과 흙 수비 시설, 그리고 장작들을 패서 쌓아 놓을 수 있는 넓은 터가 있어야하고 창업자금도 많이 필요해 요장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고등학교와 대학의 도예과를 졸업한 공방들이 많이 생겨서 폭 넓게 공부한 멀티도예가가 많이 배출 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요즈음은 초벌구이까지 해서 파는 공장이 생겨 너무 쉽게 공방을 창업 하는 것을 보면서 마치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도자기가 발전할 수는 있겠지만,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부터 소성까지 할 줄 아는 그런 도공들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이집트 학교의 이야기로 가보자.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 줌으로 시야를 폭 넓게 만들어 다양한 작품 세계를 배우게 하여 일 년에 한번 씩 자기들이 만든 도자기를 가지고 축제를 한다. 축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음식도 만들고 학예회처럼 장기자랑도 하면서 판매를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케팅도 배우는 것을 보았다. 더욱이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거나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설 전시장을 만들어 아무 걱정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꿈을 심어주는 것을 보았다. 얼마 전에 한국도예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 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귀에 맴돈다. 필자는 그 학교를 방문 할 때 마다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선생님들과 최신식 실험실습 설비들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기능력 등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졸업 후의 진로에 어려움이 많다고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집트의 도자학교 상설전시장 생각을 해보았다.
필자도 그런 도자기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유네스코 창의도시 이천시와 한국도자재단이 내외국인들을 위해 도자, 도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서 필자도 동참하여 공방을 개방하기로 했다.
같은 밀가루라도 서양 사람들은 빵을 만들고 동양사람 들은 국수나 만두, 수제비 등을 만든다. 이렇듯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도자기를 배우고자 원한다면 전수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여러 나라의 도자관계자들과 서로 교류하며 배울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 폭넓고 신나게 도자기 만드는 문화를 만들어 주고 싶다.
우리의 우수한 도자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또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면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태평양을 헤엄치는 큰 고래가 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신구세대와 내외국인 간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 한 뒤에 그것을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부터 익혀야겠다.
내 것만 좋다고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 항상 마음의 창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의 것을 이해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도자기는 만든 사람의 분신이며 거울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개성이 있으면서 부끄럽지 않은 자기만의 도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수천 년을 걸쳐 이어져온 전통위에 새로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점, 한 점, 혼신의 힘을 다 할 때만이 불후의 걸작이 만들어져 세계적인 문화의 꽃으로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자식에게 이야기해주는 특급 비밀을 하나 공개해야겠다.
“도자기를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바닷가의 모래알만큼 많이 흙을 만져보고 대화하며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는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항상 도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듯 가슴에 사무치도록 해야 한다. 도자기 만드는 사람을 ‘도모陶母’라고 한다. 어미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그런 심정으로 도자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뉴 제너레이션들이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다.
천 년 전에 만든 고려청자를 보면서 감탄 하듯이 천년후의 후손들이 감탄 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를 대변하는 도자기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며 마친다.
필자 김세용은 2002년 대한민국명장 (02-22호) 선정됐으며 현재 경기도 이천에서 세창도예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인 도예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