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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월호 | 특집 ]

찻그릇 - 민범식
  • 편집부
  • 등록 2013-03-29 10:22:28
  • 수정 2013-04-01 14: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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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그릇 - 민범식

민범식 MIN BUM SIK

민범식은 동아대학교 공예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산청요에서 2대째 가업 계승 중이며 경남 찻사발 초대 공모전에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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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

아버지가 일본에서 유학하신 후 1978년에 고향 산청에 가마를 짓고 산청요라 이름 지으셨습니다. 자연적으로 어릴 때 부 터 아버지가 작업 하시는 모습을 꾸준히 봐 오다가 대학을 도예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02 자신의 예술관에 영향을 준 인물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한 공간에서 지금까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적으로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아버지의 지도와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특히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충고도 해주시는데 대부분은 도자기 전반에 걸쳐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 둘 깨우친 미의식이나 지식들이 현재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아버지의 선생님 중 한분인 하야시야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 도예과에 진학 했다고 하니 그분이 제 가슴에 손을 대고 “작품을 머리로 만들지 말고 마음으로 만들라”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나 작업 할 때면 그 말씀을 되새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03 나에게 찻그릇이란

아버지께서 찻그릇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하야시야 선생님의 “일본인이 만들 수 없는 그릇을 만들면 일본 동경 최고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주선해 주겠다.”는 제안에서 부터입니다. 7년을 찻그릇만 만드신 후 인정을 받으셔서 일본서 첫 개인전을 하셨습니다. 그 후 제가 학교를 마치고 와서 지금까지 흙 실험과 유약실험을 하며 10년째 좋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보다 더 나은 그릇을 만들기 위해…

 

04 나의 흙작업 과정 중 가장 특별한 것

찻그릇은 크기가 작습니다. 작은 그릇이지만 많은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형태 무게 색깔 쓰임새 등 어느 하나라도 미흡하면 안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더해져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타나겠지만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은 비례와 굽입니다. 그릇의 좋고 나쁨은 비례가 크게 좌우합니다. 높이와 넓이 굽과 동체 등 비례가 좋은 그릇이 편안하고 당연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찻그릇은 굽에서 다양한 표현들을 나타냅니다. 굽 부분에서 이슬처럼 맺힌 유약이나 서리발처럼 선 흙날 등에서 개성이 나타납니다. 굽이 찻그릇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창적인 찻그릇을 만들기 위해 굽 부분의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05 작품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

더 나은 흙과 유약 재료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마에 불을 넣을 때면 보통 20~30여 가지의 실험들을 꼭 하고 있는데 대부분 잘 나오지 않거나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 년에 몇 번씩은 굉장히 좋은 결과를 보기도 합니다. 가마 속에 앉아서 그 그릇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좋습니다. 특히 한 번은 여름에 가마불을 넣던 중에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 져서 비를 가리느라 굉장히 고생한 일이 있었는데 가마 결과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소나기 오는 날을 골라서 불을 넣어도 그런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06 현재의 가장 큰 고민은

찻그릇은 그릇 이면서도 그릇 이상의 특별한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찻그릇은 섬세하지도 않고 채색되지 않고 날렵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편안하고 순리를 따른 소박한 아름다움의 깊이가 찻그릇이 지닌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의 찻그릇은 조선의 그릇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그릇이 워낙 뛰어나고 훌륭한 관계로 찻그릇의 기준은 조선의 그릇으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그릇을 현대에서 똑같은 느낌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조선시대의 그릇을 이해하고 지금 현대의 우리 그릇을 만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개의 길이 모두 다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길을 가든 조선시대의 그릇만큼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항상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습니다.

 

07 자신이 추구하는 작가로서의 철학

“머리로 만들지 말고 마음으로 만들라”는 가르침을 완전히 다 이해할 순 없지만 현재는 최대한 정성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도예가에게 흙, 유약, 불 등 모두 다 중요하지만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작가의 손을 거친 모든 기물은 전부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다고 정성스럽게 만들고 작다고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08 도예계 선배 혹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전통 도자기에서 재료는 아주 근원적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일본인들이 우리의 양질 흙을 그것도 엄청난 양을 헐값에 가져갔습니다. 그나마 남은 흙도 도자기 공장이나 벽돌 공장에서 대부분 소비하고 있고 우수한 품질로 이름난 유약재료들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머지않아 흙이나 유약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의 고갈은 우리 전통도자산업에 커다란 부담이 될 것입니다. 전통도예는 무엇보다 재료가 중요합니다. 흙과 같은 재료들이 더 이상 무분별하게 낭비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도예인들이 더 열심히 연구하고 개발해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9 다음 세대를 이끌 도예인으로써 꿈꾸는 우리 도예계

우리 고려인들이 비색 청자에 상감기법을 세계 최초로 접목해서 세계최고의 고려 상감청자를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청자는 소박하고 대범한 아름다움을 가진 분청사기를 만들었으며 순백색의 기품 있는 조선 백자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의 지배로 인해 전통이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일본의 침략으로 7년간의 전통단절이 있었지만 백년도 채 지나지 않아 조선 백자의 최고 황금기를 꽃 피웠습니다. 우리의 손기술은 세계 최고라 알려져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도자기가 세계를 다시 호령할 날이 올 것이며, 이미 저만큼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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