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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월호 | 특집 ]

아리타와의 30년 교류 역사를 듣는다
  • 편집부
  • 등록 2013-03-07 17: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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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타와의 30년 교류 역사를 듣는다

특별좌담

아리타와의 30년 교류 역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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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본지 편집팀이 <109회 아리타도자기축제>를 찾아간 기간 도산신사에서 진행된 이삼평 도조제에 한국 측 참여 인사들이 눈에 띠었다. 그들은 사단법인 한국도자문화협회와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단이었다. 한국 세라믹(요업)계 1세대로 지난 27년간 아리타와 단독으로 교류하며 매년 도조제에 초청, 방문해온 그들에게 아리타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도조제를 마치고 함께한 자리에서 아리타와 맺어온 지난 20여 년 간의 긴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부족해, 한국으로 돌아와 좌담형식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이 30년전 아리타와 맺은 인연에서부터 협회 활동의 시작, 아리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아리타의 현상황, 앞으로의 교류방향 등을 들어본다.

 

 

좌담참가자

김기형 (사)한국도자문화협회 회장,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전병식 (사)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 전 공업시험원 원장

박원숙 (사)한국도자문화협회 이사, 공학박사

 

 

 

□ 아리타와 교류하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병식 _ “아리타와의 첫 인연은 제가 공업시험원 원장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신세라믹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한국과 교류가 있었지요. 나고야에서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고 그 자리에 마침 당시 아리타에서도 관련 인사들이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 자리에 고란샤 대표이면서 큐슈산업기술센터 부회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후카가와 다다시 씨가 있었고 그의 “과거 큐슈와 한국이 교류했던 많은 역사적 배경이 있으니 다시 교류합시다.”라는 적극적인 제안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리타는 이코미 기술(석고틀성형기법)을 기반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고 후카가와 씨는 아리타 도자의 중흥을 위해 발 벗고 뛰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 다시 일본을 방문하면서 아리타 측의 초청을 받아 처음 아리타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때 그곳에 이삼평 도공의 비를 눈으로 확인했고, 매년 5월 도자기축제기간동안 한국의 도공을 도조로 모시는 제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도자기타일조합 측에 매해 5월 도조제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나라고 제안했고 그것이 교류의 시작이 됐지요.”

 

김기형 _ “1980년대는 일본이 버블경제에 들어서면서 경제활동이 활발했습니다. 당시 아리타는 상공회의소를 주축으로 해외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그러던 중 가장 가까운 한국과의 교류를 생각한 것이지요. 더구나 그들은 이삼평이라는 도공이 아리타 도자 역사를 시작했고 그로인해 후손들이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전병식 원장의 제안을 계기로 아리타에 가보니까 우리 도공이었던 이삼평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산꼭대기에 버젓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비석의 뒤로 돌아가보니 그의 업적에 대한 역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식민지 출신의 사람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 할 수 있었습니다.”

 

전병식 _ “놀라운 것은 그 비석에 새겨진 글을 당시 사가현 지사가 친필로 썼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가현 지사는 이삼평을 납치한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라는 사람의 후손으로 명치정국에서 막부가 쓰러지고 신명치정부가 생기면서 지사가 돼 ‘이삼평 비’라는 글을 직접 새기게 된 것입니다.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도산신사’에 이삼평과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김기형 _ “나베시마 나오시게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아리타 도자가 유명해지자 일본 내 도공들이 그곳으로 다 몰려든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공들이 많아지자 아리타 일대의 나무들이 장작으로 쓰이기 위해 엄청나게 잘려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나베시마는 인근의 나무와 한국 출신의 도공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도공들을 전부 외지로 쫓아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제작돼온 도자기들이 이후 나베시마 자기라는 이름으로 완성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 한국도자문화협회 결성의 계기는

김기형 _ "처음 아리타와 인연이 시작된 1985년부터 1990년까지는 국내 도자(세라믹)산업계 관련인들이 대표격으로 교류를 해왔습니다. 공식적으로 한국도자문화협회가 결성된 것은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에 세워진 이삼평 기념비 건립을 계기로 시작됩니다. 아리타 주민들이 일본돈 3000만엔을 기부해서 이삼평의 고향에 기념비를 세우는 사업이 진행됐는데 그 일을 진행해주는 협력체로 결성된 것입니다."

 

전병식 _ "한국도자문화협회가 결성된 이후에 우리는 일본 아리타 지역 외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확대하고자 노력했지만 타지역의 배타적인 반응 등으로 큰 결실은 맺지 못했습니다."

 

□ 아리타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대해

전병식 _ “아리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아직까지 그저 우리 선조 도공의 영향을 받은 유명 도자산지라는 여행코스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많은 방문단들이 다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산신사, 이삼평도공의 비, 이즈미야마 채석장, 유명 3대요장 등 잘 알려진 방문코스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과거 도자기가 발전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아리타의 도예가들이 현재 어떤 고민을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리타상공회의소 맨꼭대기 층에 있는 미술관에서는 매년 전통도예전은 정말 볼만한 전시입니다. 전통공예를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많은 젊은 도예가들이 참여하고 유명 언론사에서 상을 주기도하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년 전, 그 전시에 한국의 도예가들이 초대돼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교류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아리타의 도예가들이 전통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많을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합니다."

 

김기형 _ “올해 아리타를 방문했을 때 14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이마에몽 요장을 찾아갔습니다. 젊은 14대 이마에몽이 우리에게 꺼내 보인 작품은 새롭게 개발한 복합적 표현의 유약기법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14대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요장이지만 이 시대의 도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확인한 것입니다. 우리 전통도예가들도 현재 아리타 도자가 자신들의 미래 방향을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처럼 우리도 전통과 현대도자간 접점을 찾기 위해 더욱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병식 _ “사실 아리타는 현재 도자식기라는 분야에 한계성을 느끼면서 내부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일본요리와 여관, 가정에서 고가의 전통도자식기를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주방에서 도자식기 생활이 활발합니다. 도자식기만을 사용하다가 깨지면 다시 새로운 것을 구입해 갈아서 씁니다. 그만큼 도자식기 수요가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수만은 인파가 축제기간에 아리타를 찾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수요자들이 더 이상 옛 전통의 식기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그 수요에 발맞추지는 못하는 상황 인 것 같습니다. 김 회장님이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14대를 이어온 젊은 이마에몽이 전통을 굳건히 지키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처럼 아리타가 살아남는 길은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은 지키면서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자세를 갖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 도예가들과 비슷하게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아리타가 준비하는 2016년 도자 400년제

전병식 _ “아리타에서는 2016년 도자 400년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행사에 큰 의미를 두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전환점으로 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삼평 도공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을 세운 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아리타가 도자산지로 한 단계 뛰어넘는 어떠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의 염원 일 것입니다.”

 

박원숙 _ “올해 아리타를 방문해보니 축제추진위원들과 위원장이 머리를 맞대고 400주년 행사를 위한 축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예상컨대 그 행사에는 독일 마이센시의 대표단과 중국 경덕진의 대표단이 방문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대표단이 참석해야겠지요. 세계의 도자문화 역사를 이뤄낸 주요 국가의 대표자들이 모두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도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삼평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공주시 측에 아라타의 400주년 행사에 맞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전달했습니다만 정식 자매결연도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응은 미진한 상황입니다. 2016년 5월, 아리타를 찾아오게 될 많은 손님들을 한국으로 끌고와 우리 도자문화의 저력을 보여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병식 _ “한국에는 아직도 일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배타적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타의 경우는 특수합니다. 더구나 아리타 주민들이 공주시에 세운 기념비로 인해 일본 학생 수학여행단이 공주를 다녀가기도 한 상황에서 당연히 그에 걸 맞는 준비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분명 아리타는 400년을 기념행사를 계기로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포부를 외쳐댈 것입니다. 자신들의 100년 전 손님들을 불러들여 글로벌 마인드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4개 산지의 메이져급인 모습을 풍기려는 시도도 엿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맞춰 당연히 더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필요를 위해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또 대국적인 면에서 오랜기간 교류해온 파트너로 생각하고 아리타의 역할과 상황을 격려해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기형 _ “아직까지 아리타 측으로부터 어떠한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미루어 짐작컨대 독일 마이센과 중국의 경덕진은 초대되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우리 협회가 초청이 되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병식 _ “국제관계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대등한 위치여야 합니다. 일본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리타만이 일본 도자를 대표하는 곳인가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 바램은 지금까지 우리가 유지해온 교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잘 이어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 앞으로 아리타와 한국도자문화협회간 교류 활성화를 위한 과제는

김기형 _ “일본은 자신들의 도자기를 유럽까지 수출할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못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기술을 천시했기 때문입니다. 도공을 천시한 것이지요. 일본 도공을 쫓아내면서까지 한국의 도공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 도자기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려놓은 것과는 차이가 있지요. 한분야의 산업이 성공하는 것에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단은 공예진흥법과 같은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그런 움직임이 보여지고 있는데 도움을 요청해오면 협회 측에서도 적극 돕겠습니다.”

 

전병식 _ “우리도 전국각지에서 많은 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방식으로 출혈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뻔한 도자상품들로는 부가가치를 높일 수가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일본과 도자관련 교류를 해온 지난 20여 년 간 우리도 많이 변해왔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많은 우리 도예인과 요업인들이 일본과 다른 도자 선진국에 진출해 연구자로 도예가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든 14대 동안 전통을 이어온 요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노력 등은 그들에게서 적극적으로 배워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노력이 수반될 때 공예진흥법 등과 같은 정부지원이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김기형 _ “그간 많은 이들이 교류를 목적으로 아리타를 찾긴 했지만 그들의 중심에 들어가 필요한 것을 찾아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리타요업대학에 진학을 하고싶거나 주요 요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협회가 나서서 돕겠습니다. 그들의 기술을 배워오는 것은 또 다른 선의의 경쟁구도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협회 또한 매년 아리타도자기축제를 참관하고 도조제에 참석하는 입장이지만 그것을 통한 발전적인 고민과 방향에 대해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해오지 못했습니다.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추후에는 우리 도예계에 더 나은 방향을 설정, 제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원숙 _ "아리타의 도예가들과 주민들이 그곳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높은 친밀감을 보인 이유는 그들의 도조가 이삼평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우리 요업계 어르신들이 27년 간 끈끈히 맺어온 교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노력이 앞으로도 한국도자문화협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어져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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