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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월호 | 특집 ]

말랑말한 그들의 속삭임, 장애인들의 도예활동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1:14:01
  • 수정 2013-03-07 09: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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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한 그들의 속삭임, 장애인들의 도예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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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사회의 문화와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 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던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활동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을 주는 장애인들의 성공사례도 방송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을 일컬어 우리는 흔히 가능성의 예술 ‘에이블아트Able Art’라고 부른다. 그럼 장애인들의 도예활동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에이블아트Able Art’의 이해가 필요할 듯하다.

 

가능성의 예술 에이블아트Able Art

‘에이블아트Able Art’는 1973년 4월 29일 일본 나라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특수학교를 졸업 한 후에도 자립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아주기 위해 ‘민들레 모임たんぽぽの会’이라는 주민자치 모임이 발족하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장애아동들의 생일날 1구좌 당 1000엔씩 ‘생일기금お誕生日基金’ 모금운동을 시작으로 해서 1976년 8월 재단법인 ‘민들레 집たんぽぽの家’을 설립하고 ‘와타보시 음악회‘나 장애인 자립지원 서비스센터 등을 운영하며 기금조성을 통해 그 후 7년 뒤인 1980년 5월에 ‘민들레집’たんぽぽの家을 건립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민들레 집’은 ‘아트센터하나アートセンターHANA’로 리뉴얼하여 약 4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일본의 장애인 문화예술 운동의 메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배경과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닮은 점은 많은 일본 또한 그 당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지금보다 더욱 심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때문에 ‘불가능’이라는 편견에 맞서기 위해 ‘가능성’이란 단어가 더욱 어울렸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에이블 아트 장애인 창작공간

한국에도 ‘에이블아트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사)에이블아트(대표 장병용)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이블아트센터’ 가 있다. 2005년 ‘장애인아트센터’를 설립,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의 ‘아트센터 하나’에서 연수과정을 거치며 일본 ‘에이블아트’운동에 영향을 받아 장애인들

이 가지고 있는 날것 그대로의 예술적 가능성을 발굴하고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의 경기문화재단과 ‘민들레 집たんぽぽの家’의 교류가 있었고, 한국에 ‘민들레 집たんぽぽの家’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필자도 정확한 시점을 알 수는 없으나, 짐작컨대 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을 칭할 때 ‘에이블아트’ 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듯하다. ‘에이블아트’의 취지나 그 정신은 우리나라에서도 배울 점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에이블아트’가 우리나라 장애인 예술 활동의 대명사화 되어 고착화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복권기금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활동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나, 장애인 문화예술관련 정책에 대한 연구는 최근 들어서 해외사례 연구나 세미나 또는 포럼 등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에는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을 칭하는 대표적인 명칭이 없다. 때문에 마땅한 단어를 달리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에이블아트’는 아마도 편리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실창작스튜디오(구, 장애인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장애예술가들은 정작 ‘에이블’이나 ‘가능성’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성’이란 말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단어들이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하는 꼬리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 가능성을 언급하는 자체가 이미 그 바탕에 불가능을 내포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가능성’이란 말은 장애를 떠나 모두에게 평등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창작공간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공간명칭 변경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고 (재)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예술가들의 창작활동지원을 위해 특화된 공간이다. 이곳은 금년 7월까지 ‘장애인창작스

튜디오’로 불리던 곳이다. 이 공간 역시 ‘장애인’이 들어간 명칭 때문에 입주 예술가들의 명칭변경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요구를 서울시가 받아들여 ‘장애인창작스튜디오’란 명칭에서 ‘잠실창작스튜디오’란 명칭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특히 관에서 운영하는 공간의 경우 여러 가지 대외적인 홍보적 측면에서 ‘장애인’이 들어간 명칭의 사용이 필요하다. 어쩌면 공간운영의 특화된 성격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명칭에 ‘장애인’이란 단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장애인’이란 단어를 명칭에서 빼고 지역명을 넣어 공간의 명칭을 바꾸었다.

이는 앞으로 장애인의 편견을 없애는 공간명칭으로 다른 공공기관이나 관에서 참고 할 좋은 선례를 남긴 사례라 할 수 있다. 장애인의 대한 편견은 장애인이란 단어를 쓰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지금은 ‘에이블아트’ 라는 수식어보다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을 더욱 이해하고, 소통하는 가치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필요한 때라고 본다. 그리고 ‘에이블아트 운동’의 훌륭한 정신은 본받되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명칭정립을 위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유형이나 그 개인차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장애를 가지고 논할 수는 없으나, 장애 유형이나 자기표현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붓을 잡든, 흙을 만지던 공통적으로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소통을 향한 표현 전달의 메시지라고 본다. 그렇기에 필자는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을 ‘소통과 표현의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은 아직 30 - 40년이 앞선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정책적인 연구가 아직은 부족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문화 예술분야의 전문가(장애인 전문 예술강사)도 많이 부족하다. 때문의 한국의 에이블 아트는 아직도 갈 길이 바쁘다.

 

(자세한 내용은 2012년 11월호 특집기사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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