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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월호 | 특집 ]

국제교류-도자사를 주도하는 동양의 세나라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0:26:04
  • 수정 2013-03-07 09: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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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교류

도자사를 주도하는 동양의 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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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숙 도예가

 

 

동양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은 서양인의 안목으로 보면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있는듯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동양의 이 세나라는 서양과 판이하게 다른 것은 물론이고 공통점도 있겠지만 또한 매우 다르다. 크게보면 한덩어리의 동양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3국의 자연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생성된 각각의 문화, 정치, 사회, 경제가 서로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다른 특성을 지닌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양 3국의 도자문화는 그 시발점부터 그 조형과 색채가 다른 것이다. 특이한 것은 상호간에 교류를 통한 영향관계가 뚜렷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독창적인 도자문화를 일구어 갔다는 점이다.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인 야나기 소리는 ‘진정으로 전통을 유지하는 것은 충실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영원한 원칙들에 따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세 나라는 세계의 도자기술을 이끌어오고 그리고 그 기술을 세계에 전파한 중심지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표현활동으로써의 도자기를 통하여 각자 각국의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고 시켜야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교류의 시작

14년 전인 1998년도에 필자 개인적으로 급락한 집안사정으로 인한 긴급조치로 여주에 지상권만 있는 허름한 농가주택을 사드려 나름대로 집과 작업장을 짓게되었다. 아주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 대학에서 실기강의로 여러 학교에서 강의했고,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여주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엄청나게 힘든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에너지가 솟아올랐는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시를 했다. 1995년, 일본 시가현의 도예의 숲 국제창작관에 1년 연수 창작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교토에 있는 ‘Maronia’ 갤러리에 초청받아 도자조각전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돼 평소 꿈꿔왔던 일본내 유명갤러리와 미술관 등 여러 지역에서 개인전을 할 수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후 ‘도예의 숲’ 국제창작관에서 함께 작업하며 인연을 맺은 외국인 작가나 스탭들이 한국에 오면 허름하고 공사 중인 본인의 여주 작업장까지 찾아와 함께 묵고 가곤했는데 말이 한국의 친구집이지 공사중인 바닥에 스트로폴을 깔고 자는 노숙자 합숙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즐거워했고 그 소문을 들은 여주군의 과장급 공무원이 집에 한결 같이 찿아와 외국작가들이 여주에서 전시나 시연 등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듣게 되었다.

2000년에 들어 여주, 이천, 광주가 연합된 세계도자기엑스포(현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전신)를 앞두고 개최된 PreExpo가 개최되었다. 여주 지역에서는 여주대와 YICA(Yeoju Internation Ceramic Association)가 연계하여 국제적으로 우수한 외국도예가들(IAC 회원 10인 포함)과 지역도예가들을 합류시켜 국제워크샵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박용국 여주군수는 도예문화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으로 1999년, 일본의 6대요의 하나인 토코나메Tokoname까지 도예인들과 함께 순방하였다. 박군수는 일본민간인이나 도예인들에게 ‘한국의 도예잔치인 Pre Expo때 여주로 모두 오십시오’라고 적극 초청했다. 그 후 PreExpo 기간 수많은 일본인이 여주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어 여주군은 도예가들이 원했던 한일교류전시관과 국제워크샵을 위한 장소를 지어 제공했다.

그 당시는 전국적으로 도자관련 국제워크샵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여주군의 절대적인 지원은 아주 적합한 워크샵 장소에서 행해지는 우수한 작가들의 작품시연이었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 후 국제워크샵의 대표주자로 여주를 떠올리게끔 자리매김하게 돼 자연스럽게 여주를 국내외에 알릴 수 있었다. 당시의 성과가 현대도예영역이 전무하다시피했던 여주지역 도예가들에게 새로운 창의력을 고취시킨 것은 사실이며, 혈기 넘치고 우수한 작품을 제작하는 도예인들이 여주로 들어 올 수 있게 된 계기도 되었다. 군과 학교와 민간도예인 3박자가 일체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지원없는 국제교류의 지속성과 민간교류

일본 토코나메Tokoname태생인 후지 토모키Fujii tomoki씨는 음악프로모션, 도예가, 사진가 등 다방면으로 출중한 예능인이며 작가로 특히 도예인들에게 아주 인기있는 사진작가이다. 그 가 찍은 도예작품은 공모전에 입상하거나 좋은 가격에 판매 되는 운이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가 한국의 여주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해 죽은 뒤 화장하여 안치될 한 돌집이 마음에 든다고해 함께 알아 본 일이 있다. 확인해보니 1인용이 아니고 30인용이라 현재 같이 안치될 멤버를 구하고 있다. 그는 1985년에 일본 토코나메Tokoname에 해마다 열리는 정기적인 국제워크샵을 만들었다. 일명 IWCATInternational Workshop Ceramic Art in Tokoname인데 처음 시작 당시에는 홍보차원에서 참여작가들에게 경비를 제공했으나 IWCAT의 권위가 높아지고 규모가 커지자 상공회의소와 함께 주관하게 되었고 현재는 참여하고자 하는 국내외작가들에게 직접 참여비를 받는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여주의 예를들면, 2000년 PreExpo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많은 외국도예인이 한국을 찿았고 본인과 뜻을 같이하는 주변 지인들은 외국작가의 한국 전시를 기획하고 한국작가들의-특히 일본지역에서의- 전시를 돕게 되었다.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격년제로 시작되면서 민간 도예협회 주도의 국제워크샵과 국제전, 장작가마소성페스티벌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며 간간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워크샵에서 서로 인연을 맺게된 유럽권의 유명 작가들에게 젊은 작가가 연수를 할 수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탐방하고 5~6명의 작가가 모여 국제적인 ‘장작가마 교류소성’ 행사를 이뤄내고 있다.

지난 12년간 일본의 토코나메Tokoname와 시가라키Shigaraki 지역의 작가들과 한국작가들은 수도없이 양국을 오고 갔으며 교류전과 장작가마소성 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워크샵, 국제전, 개인전, 축제참가, 여행 등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그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미주, 유럽, 아시아 등의 해외작가들도 함께 한국과 여주를 탐방하고 있으며, 별도의 정부지원 자금 없이 순수하게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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