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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월호 | 특집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만난 한국의 들라크루와 _ 박세연
  • 편집부
  • 등록 2013-03-04 16:48:22
  • 수정 2013-03-04 16: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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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만난 한국의 들라크루와 _ 박세연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만난 한국의 들라크루와

박세연,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레이터

클레이아크와의 만남

지난 2007년 가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입사하며 도자예술과 인연의 동아줄이 연결된 이후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다. 2009년 2월에 개최한 <빛의 소믈리에>전을 맡게 되면서 본 미술관에서의 본격적인 전시업무가 시작되었다. 이 특별전은 ‘빛’을 접목한 생활 속 인테리어 소품이자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도자 조명, 도제품陶製品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한 전시였다. 필자가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이곳은 건축도자전문미술관으로 불리는 특화된 미술관이다. 내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을 선택하여, 도예와 관련된 전시기획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본 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의 방향과 지향점이 나의 예술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과 우리네 삶을 더욱 밀접하게 통합시킬 수 있는 전시기획을 통해서 예술을 향유하는 잠재적 수요층이 확대되길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생활과 다소 괴리되어 있거나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오는 예술을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인식의 변화에 도움이 되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나 포부가 본 미술관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었다.

첫 전시 이후로 몇 차례의 주요 기획전을 기획하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신념을 하나 둘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일상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가치 있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것을 재구성하여 창조하는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를 도자예술을 통해 펼쳐보고 싶었다. 우리 사회와 자연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가들과 함께,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예술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예술이 부여하는 가치와 문화민주주의 구현의 상관관계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전시에 담아내고 싶었다. 최근 기획한 <프리즘> 전시에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졌다. 본 전시에 참여한 7인의 도예가들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 대자연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구현하고 미를 추구해 나가는 일련의 행위와 과정의 결과물로 우리에게 진화된 예술적 정체성正體性을 보여주고 있으며, 클레이-아키텍처Clay-Architecture의 상호관계 속에서 도자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도자예술과 들라크루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에 맞닿아 있는 ‘흙’, ‘물’, ‘바람’, ‘불’ 이상 네 가지 원소가 복합적으로 사용되어 만들어지는 도자는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상에 기여할 수 있는 생활의 이기利器이자 예술품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대중에 의하여, 대중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공감대의 전제하에서 도예가는 실생활에서 벗어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예술가 및 전문가를 위시한 소수를 위한 예술을 창조하는 경향을 좇는 대신, 만인이 새로운 영감을 얻고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의 전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예가들이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도자예술의 정수精髓를 추구해 나가는 인고의 과정을 치열하게 감내할 때, 비로소 도자예술은 순수예술작품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내구성, 내화성 등의 이점을 내포하고 있는 ‘흙’으로 빚어진 작품의 본래 진가를 재조명 받게 되리라 생각한다.

도예가들은 종합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도예가들은 순간의 번뜩이는 영감으로 자연 대상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구체적이고 면밀한 계획 하에 작품제작에 임하고, 완성 단계에서 작품의 완전성과 조화를 자연의 순리에 맡긴다. 도예가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간과 자신과의 끊임없는 인내의 과정을 통하여 자연의 본질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나는 루브르 학교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하기에 앞서, 19세기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그래서 인지 찰나의 시간들로 완성되는 작품보다는 꾸준한 노력과 집념, 성실한 계획 하에 완성되어지는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작가의 창의성이나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기질이 두루 갖추어진 작품을 선호한다. 이러한 성향은 도예가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서도 적잖이 표출되는 것 같다. 클레이아크에서 만난 도예가들은 나에게 있어 한국의 들라크루와Eugène Delacroix, 1798-1863였다. 기질 상 원초적이고 역동적이고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관찰과 끊임없는 실험을 해 오던 19세기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와를 닮은 도예가들. 세익스피어, 바이런, 괴테 등이 적은 책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삽화가로도 활약하며 일상에 스며들었던 외젠 들라크루와. 내가 아는 도예가들은 단순한 공예적인 차원에서 머물기보다는, 그 공예적인 부분으로 일상에 쉽게 접근하여 대중과 허물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원초적인 감성과 맞닿은 ‘흙’이라는 거칠고도 부드러운 재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그것을 밑그림으로 그리거나 만들어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형태를 선보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자연이라는 본질을 우리 삶의 공간 안에서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예술가들이 바로 도예가라고 생각한다. 공예의 측면에서 벗어나 도예가 현대예술계의 새로운 조류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순수예술작업을 하는 작가들 못지않게 도예가들 역시도 작품의 내용과 형식미를 두루 갖추고 세상을 향한 신선한 충격파를 전하고 있다. 자신들의 경험을 세상과 나누어가질 수 있는 역량과 연륜을 쌓아가는 이들은 우리네 삶과 깊이 있게 연관되어 온 도자예술을 통해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온기를 전달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선사하고 있다.

2010년 하반기 전시 전에 참여한 순수예술가들은 특이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기 보다는 도자기 본연의 특성과 유약의 느낌을 오롯이 살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이에 반해 도예가들은 작업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다 실패를 거듭 하곤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흙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진지한 접근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 현재의 성공이나 실패의 여부가 아니라, 실패를 하더라도 흙에 대한 탐구와 실험적인 도전을 멈추지 않는 도예가들의 노력과 장인정신이 진정한 도자예술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훗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흙’에 대한 많은 탐구가 이루어졌을 때 과거와 현재의 실험적인 접근과 시도들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흙’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시각과 인식을 제공할 것이다. 현 시대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나 실험을 주저하지 않을 때 미래세대에게 큰 자양분과 의미 있는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진보를 향한 도예가들의 다양한 시도와 자그마한 변화의 움직임들이 언젠가 나비효과가 되어 도자예술계에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큰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일상의 낙

최근의 전시 <프리즘>에서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도예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을 희석시키고 싶었고, 건축도자라는 개념을 좀 더 근원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었다. 막연히 건축도자라고 하면 건축물에 쓰여 지는 재료로서의 흙과 도자, 건축 내외부에 장식 또는 설치되는 도자, 그리고 건축물의 형태와 선으로부터 영향 받은 순수 도자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좀 더 광의적으로는 그 범위의 최극단에 있는, 일상공간에서 마주하는 도제품들 까지도 총 망라해서 건축도자라 명명하기도 한다. 이 기획전은 도자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결국 예술이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일상에 가려진 우리 삶의 단면과 진실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는 예술을 좀 더 근원적 질문을 통해, 그리고 거장들의 연륜이 담긴 해법을 통해 일반 관람객들이 예술을 친숙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게 본 전시의 기획의도였다. 누군가에게 생경한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접적인 경험이 반복되어 선행될 때, 생경한 대상은 친숙한 것으로 인식되고, 심적 거리감도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이다. 본 전시에서 이 역할을 7인의 도예가들이 맡게 되었다.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그들의 삶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생경하지 않은 도자예술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능적 용도로서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 아닌, 그들이 일구어낼 수 있는 새로운 순수영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앞으로 내가 선보이고자 하는 전시도 일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이 바로 예술이다’라는 존 듀이John Dewey,1859-1952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분리되거나 자연에 역행하지 않는 미의 원칙 안에서 예술가와 미술관, 관람객 모두를 위한 공존과 상생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으로의 회귀 또는 상생본능을 자극하고 동시에 미적인 경계aesthetic perspective에 배어있는, 우리 일상에서의 생명 기운들vital energies을 들추어낼 수 있는 작가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예술과 삶, 예술과 관객 간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싶다. 아울러 ‘일상성’과 ‘자연성’을 토대로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인 조화로움을 모색하는 전시를 통해서 우리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일조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예술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생활의 여유와 활력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박세연은 1975년 마산 출생으로 프랑스 뚜르대학교Université François Rabelais de Tours에서 미술사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에꼴 뒤 루브르Ecole du Louvre 박물관학 전문과정 졸업, 동아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전시기획팀에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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