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 사례와 제안
| 심규환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팀 프로그램매니저
정책과 현장사이에서 바라본 레지던스 프로그램 운영
2000년 밀레니엄 직후, 젊은 작가들의 활동영역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광범위해졌다. 동시대 미술의 주류를 이루는 전 세계적 상황과 국내 상황이 우연히 맞물려 해외옥션과 각종 비엔날레에 ‘젊은 이름’들이 링크되고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또 다른 젊은이들의 작품이 러브콜을 받으면서 상업 갤러리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거듭 초대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젊은 작가들의 전시환경은 창작기금지원을 포함하여 개선의 극점에 도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창작을 위한 공간지원도 예외는 아니다. 레지던스프로그램(창작스튜디오)이 바로 그것이다.
‘창작공간’, ‘창작스튜디오’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작업실 또는 화실이라 부르던 미술가들의 작업공간을 ‘창작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고, 다양한 운영기관들의 목적과 설립취지 등을 통해 자연스레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일상의 작업공간’ 두 가지의 개념으로 나뉘게 되었다. 예술가 입장에서 볼 때, 한시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작업공간’ 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개인 또는 소그룹에게 정부나 특정단체가 작업실을 제공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결여된 상황에서, 이를 제도화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상향’과 같은 이를 표현하는 것은 과감히 생략하도록 하겠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활용한 강화, 논산 스튜디오 사례 이후 10여 년이 훌쩍 지난 2011년 현재의 창작스튜디오는 창작공간 지원중심에서 벗어나 국제교류 프로그램, 학술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지원을 하며 작가,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지역주민 등과의 징검다리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전국에 활발히 운영 중인 10여 개 이상의 국공립 스튜디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은 각 스튜디오별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기능의 차별성, 국제화를 위한 네트워크 모색 등 중장기적인 계획성립과 실천 등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각 운영기관들의 비슷한 설립취지와 공간이 생산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치(①예술가들에게 안정된 창작공간을 제공, ②지역주민의 문화향수 기회증대, ③낙후된 지역의 문화적 재생) 탓에 각각 프로그램 특성화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대한 설립기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창작 스튜디오 본연의 기능과 취지는 무엇인지, 해당 기관 입주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무게를 둘 것인지, 지역 내의 문화시설로써 문화향수 제공에 무게를 더 둘 것인지, 구 도심재생인지, 지역사회연계인지, 현 실정상 대부분의 창작스튜디오는 두세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하는 현실이 바로그것이다. 이는 또한 관점을 달리하면 ‘창작공간’이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인가? 예술소비를 위한 문화향수 시설인가, 하는 물음도 생긴다.
대부분의 국공립 창작스튜디오 사업은 사업기관의 1년 단위 예산의 구성과 집행으로 관련사업 평가가 이루어지며 이에 따른 심리적 조급성으로 인해 창작지원의 형태가 입주한 작가들의 창작 주기에서 한참 벗어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인터넷과 비엔날레 등의 행사를 통해 외국작가들의 국내 유입으로 자연스레 해외 주요 레지던스 프로그램 정보들이 넘쳐나 각 창작스튜디오마다 ‘국내외 교류 확대’, ‘국제교류의 거점’ 등을 목표로 설정했으나 기대와 달리 관련 인력과 예산 및 노하우 부족 등을 이유로 ‘기획(안)’서만 맴도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생산적 환경 아래, 새로운 창작스튜디오가 생겨나도 지역성과 문화적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아무런 여과나 비판 없이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라 조성목적과 운영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만 우선적으로 짓고 보자”식으로 시설 조성사업만이 선행됨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게다가 결재권을 갖은 설립기관 해당 부서의 관계 담당자들의 잦은 이동(순환근무)으로 인해 연속사업의 지장을 초래한다. 이는 다시금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기능에 관한 인식 부족을 만들어 앞서 언급한 일들이 되풀이 되는 현상을 만들게 된다.
창작스튜디오 사업은 그동안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피상적인 논리에 입각해서 추진되어왔다. 창작지원 사업을 바르게 정의하고 그것이 작가지원에서 나아가 한국현대미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더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창작지원 방안이라고 할지라도 기존에 전개해온 관행적인 지원사업의 수적 증대를 지향하는 수준보다는, 한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구조를 진단하는 것이 선행 돼야 할 것이며, 따라하기 식이 아닌 왜 필요한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창작지원사업을 수적으로 양만 늘려서 기관의 위신을 높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며 체계적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비전과 중장기적인 전략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인식 재정립과 전문 인력의 조직 구성, 예산 조성과 지출 방법 개편 등을 다양하게 모색하여야 한다. 또한 계획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과 실현 가능한 단계별 전략 목표를 향해 전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후죽순,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생겨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요즘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지는 창작스튜디오 조성에 관한 현상을 표현하는데 적합할 듯하다. 시행착오와 접근방법은 달랐으나 과거 논산, 강화의 경험과 예를 토대로 한층 진화된 현재의 창작스튜디오, 지금의 담금질 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장점과 과정을 살펴보면 어제보다 나은 업그레이드된 창작공간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성화된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다문화, 다 장르의 예술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나 가치를 인식하고 교류와 함께 유연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인적교류의 단초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참여작가들에게 제공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작가들이 단기간에 성취하기 어려운 영역의 예술 활동에 대해 괄목할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각 창작스튜디오 마다 별로 차별성이 없이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여 기존의 공간제공에서 한걸음 나아간 기능 정도라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의 기초예술 지원정책과 미술환경은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여 결과물에 초점을 맞춘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아닌 창작과정과 개발에 중점을 두는 예술 지원체계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계기로 전략적으로 보완된 창의구현 시스템과 이를 실험할 수 있는 제반환경이 시급한 상황이다.
‘메디치 효과’의 저자 프란스 요한슨은 “관계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이상의 분야가 융합하여 새로운 교차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이야기와 후원을 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례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의 예술가, 과학자 등 이질적 역량을 모아 그 과정에서 얻은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르네상스’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최근 아파트 광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비쿼터스를 통한 신 개념 주거문화와 부가 가치가 높은 3D 입체영상 기술 등 국내외 과학기술과 대중 문화예술의 융합을 통한 아이디어 산업 즉 콘텐츠 산업의 연구와 개발이 확대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를 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창조성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실험과 창조를 반복하는 실험정신을 갖는가 하면, 과학자들은 호기심과 창조성을 자극하기 위해서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과학은 현상에 대한 분석사실에 동기를 부여하고 객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예술가들 역시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행동들의 원인이 되는 감정인 호기심을 기초로 하여 다각적으로 사고하며 미학적 결론을 얻고 상상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 최후의 만찬으로 익숙한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적 활동과 그의 과학적 업적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한 과학적 창의성을 결합해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대중들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상력을 접목한 전시들이 크고 작은 공간에서 십 수 년 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는 미술과 과학의 상호작용과 이질적인 두 영역의 소통에는 어떠한 언어가 통용되는지 조명한 내용들로서 출품작들의 공통된 특징은 작품에 일정부분 과학적 기술을 응용 도입하여 시·지각적 유희를 제공하며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능동적인 체험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이는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과학적 기법, 요소 등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과학의 교육적, 예술적 가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창의성이 강하고 실험정신이 강한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려하지만 실험적인 창작환경과 관련 기술지원, 자문 등의 내용들이 작가들의 실질적인 요구에 발맞추지 못하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자와 예술가들이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공간이 마련되면 가치인식에 따라 서로 연계되어 상호이해와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로 올해로 개관 40주년을 맞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익스플로라토리엄Exploratorium이라는 과학교육기관이자 박물관인 이곳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8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