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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월호 | 뉴스단신 ]

데비 한, 한국의 미를 정의하다
  • 편집부
  • 등록 2011-10-11 14:10:35
  • 수정 2011-11-17 15: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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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7가지 키워드와 함께 떠나는 방창현의 세계도자기행(17)

이 글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인 숭고the sublime, 몸body, 미니멀리즘minimalism, 물성materiality, 서사narrative, 개념미술conceptual art, 팝아트pop art를 중심으로 본 현대도예 비평의 글이다.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기행문적 수필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이 현대 도예 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한국의 현대도예가 오랜 동면의 시기를 지나 이제 찬란했던 옛 영화를 위한 용트림을 하는 이 시기에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 비전과 현재의 성찰을 제시하는 글이 될 것이다.

 

데비 한Debbie Han, 한국의 미를 정의하다   
열 일곱 번째 작가: 데비 한Debbie Han

 

사물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면서도
당신은 그것들의 겉모양을 주시하는 데 만족한다.
당신은 골수를 맛보고자 하면서도 껍데기에 매달려 있다
.1)        
           -프란츠 본 바더Franz von Baader, 수시니Clemente Susini, 『가설』 제 1권, p.69


한국의 현대도예는 단 한명의 천재작가의 탄생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왜곡되고 자학적인 역사적 트라우마trauma를 치유하고 한국인의 예술적 혼과 자부심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그 숨막히는 시각언어로 무장한 단 한 명의 예술가를. 더 이상 전통 혹은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눈부신 현대적 시각언어로 시원의 기억과 현대의 삶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게 만드는 그 불꽃의 언어를 구가謳歌하는 예술가를. 
   
데비 한Debbie Han을 만나러 간다. 내 나라에게 살고 있는 데비 한은 이제 한국 현대 미술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국의 현대 미술을 논하는 자리에 그녀의 이국적인 이름과 생경한 번개머리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2) 하지만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이 길이 마냥 설렘만 가득하지 못한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데비 한은 나에게 한 명의 유명한 작가이기 전에 나의 예술적 재능과 지경地境을 되돌아보게 한 일련의 작품으로 한동안 나에게 자괴감을 주었던 가히 다가설 수 없었던 작가였다.
데비 한의 작품이 전시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우린 만나기로 했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는 소녀를 기다리듯 내 마음은 가없이 설렌다. 데비 한이 멀리서 걸어온다.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는 어느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다. 여전한 번개머리에 단촐한 옷차림의 그녀. 하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모른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처음 그녀의 작품을 보았던 몇 년 전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미국 뉴욕에 있는 어느 시골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2008년 여름, 나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헤이리 예술마을을 둘러보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새로운 나의 고국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들까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생각에 나의 발걸음은 무척 활기차고 가벼웠다. 하지만 헤이리에 있는 터치아트 갤러리에서 나는 우연히 데비 한Debbie Han이라는 낯선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다. 이름도 생소했고 작품도 생소했었지만, 작가의 사진작품들 중에는 비너스 석고상에 청자유약을 입힌 작품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지금까지 내가 예술을 잘못하고 있다는, 아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어쩌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형언할 수도, 주체할 수도 없는 그 압도적인 감정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쩌면 내가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 글을 써야만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그 묵시록적인 예감을 전해준 작가, 그 데비 한을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데비 한 앞에서 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같은 동시대의 예술가로서 좀더 당당하게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고 나는 그녀의 아우라 속으로 깊이 침잠했다. 
 
데비 한Debbie Han은 11세가 되던 해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과 다른 외모, 문화 환경을 지닌 미국이라는 타자의 땅에서 ‘다름과 낯섦, 그리고 인식’이라는 현상학적인 아아디어와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된다. 예술가적인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어린 데비 한은 자연스레 한 사물에 존재하는 표층과 심층의 의미적 모순을 감각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를 희망했던 데비 한이 언제나 사물의 겉모습 뒤에 존재하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이미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작가는 미술대학에 다닐 때부터 ‘언어를 넘어서beyond words’, ‘미지의 세계로into the unknown’, ‘내면의 풍경inner landscape’라는 주제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데비 한은 눈에 보이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탐닉하게 되는데, 동양철학은 현상계 너머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과제였다. 무엇보다 데비 한은 참선과 요가 등을 배우면서 삶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자신의 작품과 삶을 연결시켰다. 한때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 색채를 쓰지 못하는 ‘절망despair 시리즈’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시작된 ‘달콤한 세상Sweet World’과 ‘Condom Series’에서 데비 한은 과거의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작품에서 벗어나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단편적인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인식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천착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데비 한의 작품은 세 가지 미학적 요소의 절묘한 결합으로 절정의 작품을 구가하게 된다. 그것은 ‘카니발리즘cannibalism’3), ‘그로테스크의 미학, 그리고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4)으로 요약될 수 있다.
‘카니발리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Sweet World」 시리즈다. 작품 「Sweet World I」에 등장하는 길거리에 버려진 익명의 ‘개똥’은 인류 역사에서 어느 한 시기도 ‘미’의 개념으로 승화된 적이 없었던 사물이었다. 동물의 몸에서 생식작용을 거쳐서 나온 이 배설물은 인간의 문화사에서 은폐되어야할 대상이자, 인간의 생활 반경에서 그것들이 잘 노출되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문명의 우위성을 상징하는 아이러니한 대상이었다. 데비 한Debbie Han은 이 배설물을 주워 초콜릿의 형태와 색으로 변형시켜 초콜릿 박스에 담아둔다. 초콜렛은 정결한 인간의 이성과 세련된 문화의 상징적인 표상으로 사용되었다. 데비 한은 ‘개똥’을 통해 현존하는 사회의 진리와 문화의 위계성을 통렬히 부정했다. 하지만 이 도저한 부정성은 부정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적 생명력을 낳는다. 그 생명력은 다름 아닌 ‘새로운 인식’의 틀이다. 이 새로운 의식의 틀은 철학자 박이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를 관습적인 사고의 틀에서 해방시켜 세계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다”5)고 볼 수 있다. 개똥의 질료와 초콜릿의 형상의 미묘한 어우러짐은 우리들이 어느 한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인식에 통렬히 비수를 꽂는다. 견고한 하나의 기표signifier를 가진 사물의 새로운 기의signified를 추적하는 사냥꾼처럼 데비 한은 기존의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포획해낸다.6)
데비 한Debbie Han은 지금까지 자신이 오랫동안 머물던 인식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식과 몸을 담고 있었던 곳에서 탈각脫却해야만 했다. 데비 한은 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지금까지 십 수 년 간 집착해온 캔버스와 붓을 버리고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동안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시각을 잃어버린 그림보다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반경을 더욱 넓혀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데비 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인 개념미술이 시각적인 즐거움과 노동이라는 예술의 근본(공예성)을 철저히 배제시킴으로써 메마른 예술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시하고, 공예적 노동집약성에서 새로운 예술의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 무렵이 데비 한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머물게 된 시기였다.
한국에 머물던 데비 한Debbie Han은 홍대 앞 거리를 지나다 충격적인 풍경을 목격한다. 그것은 미술입시학원마다 즐비하게 놓여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그린 서양의 석고상 그림들이었다. “학원 창문마다 마치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똑같은 석고상 그림이 가득 붙어 있는 장면은 충격적이었어요. 여기서는 대체 어떤 미술교육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죠.”7) 2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본 이 살풍경 속에서 작가는 획일화 된 한국의 입시교육과 미의 기준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미를 보지 못한 채 서구의 미를 맹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양의 미를 따라갈 수 없어 늘상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한국인들의 미의식은 작가에겐 큰 이슈로 다가왔다. 데비 한의 두 번째 미학적 요소인 ‘그로테스크의 미학’은 바로 이 무렵부터 등장한다. 그로테스크의 미학이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을 결합시켜 혐오감이나 우스꽝스러움을 드러내는 해체철학의 중요한 요소이다. 데비 한의 작품 속에 그로테스크의 미학이 등장한 것은 「아그리파의 클래스Agrippa´s Class」라는 작품에서 부터이다. 아그리파 클래스는 남자고등학교의 졸업식 사진 속의 얼굴을 모두 서양의 아그리파의 얼굴로 바꾼 작품이다. 그 이후 데비 한은 서구 고전미의 상징인 비너스의 두상에 평범한 한국 여성 등의 몸을 합성한 사진 작품 「여신들Graces」 연작을 시작하게 된다. 이 여인들은 그로테스크 미학이 지향하는 흉함과 기괴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서양의 미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부조리한 한국의 미의식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한다.
데비 한Debbie Han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미학적 요소인 ‘상호텍스트성’은 전반적인 작품에서 ‘패러디parody’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석고상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전를 차용해서 자신의 주제를 새롭게 입히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시작한 작품들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여신들」 연작 중에서 「좌삼미신Seated Three Graces」은 상호텍스트성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좌삼미신」은 찜질방에서 좌담을 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몸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젊고 아름다웠던 처녀 시절의 몸을 잃고 이젠 아이들의 엄마가 된 우리 어머니들의 되돌릴 수 없는 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양인의 큰 두상을 지닌 비너스 머리와 허리춤에 매달린 서너 겹의 줄무늬를 가진 세 명의 어머니는 묘한 해학성을 전달하면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가지는 폭력성을 비판한다.   
‘상호 텍스트성’은 2010년부터 시작된 「인식의 눈The Eye of Perception」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인식의 눈」 시리즈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진행되어 온 다양한 인종의 얼굴을 서로 오버랩시켜 우리가 어떤 한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문화가 개별자의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자기와 사진의 절묘한 결합은 「The Eye of Perception」 시리즈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최근의 작품 「The Battle of Conception」에서는 서양의 이상적인 미를 상징하는 아그리파, 비너스, 줄리앙은 한국미의 대표적인 색상인 고려청자의 ‘비색’에 뒤덮여 원전의 네러티브는 작가의 새로운 주제에 의해서 전복이 된다. 무엇보다 비너스의 이목구비는 더욱 다양한 인종의 그것들과 결합되어 하이브리드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유한 미를 보지 못하고 이상화된 타자의 얼굴로 성형한 채 서로의 얼굴을 뽐내면서 경쟁하는 듯한 이 작품이 나에게 묘한 통쾌감과 안도감을 주는 것은 왜 일까? 서양의 미의 기준에 의해 나의 몸이 언제나 ‘루저’로 각인 되었던 지난 시절, 그 속절없던 트라우마가 데비 한의 작품을 통해 해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감정은 ‘동병상련’이기보다는 작품 앞에선 내 몸에 대한 인식이 ‘넉살 좋은 해학’으로 승화되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 같다. 이 작품에서도 데비 한은 사물의 견고한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해체시키면서 새로운 기의를 생산한다.8)
데비 한Debbie Han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세 가지 미학적인 요소만으로는 작가의 작품을 설명하는 데 한계성이 느껴지는 것은 현대 개념미술가에게서 발견될 수 없는 독특한 수공업적인 장인정신이 데비 한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개념 미술작가인 데비 한은 왜 본인이 직접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서 칠여 년 간 수 백 번의 실패를 견뎌내면서 오늘에 이른 것일까? 데비 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형상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의식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창작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지난 10년간의 나의 작업을 돌아보면 포스트모던적인 표현방식에서 출발했지만 그 한계선을 뛰어넘어 미술의 시각적인 힘을 다시 재생시키는 시도였습니다. 미술의 힘은 궁극적으로 시각적인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처음 한국 왔을 때는 석 달만 머물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청자가 이끄는 데로 와보니 지금 제가 여기 이렇게 와 있는 거예요. 결과는 아무도 모르죠, 저는 그저 여정에 있으니까요”9)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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