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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월호 | 뉴스단신 ]

현대미술의 7가지 키워드와 함께 떠나는 방창현의 세계도자기행(15)
  • 편집부
  • 등록 2011-08-16 15:00:24
  • 수정 2011-08-29 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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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도나Sedona는 없다
  • 열다섯 번째 작가 : 수잔 바이너Susan Beiner

이 글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인 숭고the sublime, 몸body, 미니멀리즘minimalism, 물성materiality, 서사narrative, 개념미술conceptual art, 팝아트pop art를 중심으로 본 현대도예 비평의 글이다.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기행문적 수필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이 현대 도예 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한국의 현대도예가 오랜 동면의 시기를 지나 이제 찬란했던 옛 영화를 위한 용트림을 하는 이 시기에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 비젼과 현재의 성찰을 제시하는 글이 될 것이다.


세도나Sedona는 없다  
열다섯 번째 작가 : 수잔 바이너Susan Beiner

 

세상의 가치는 모두 모사된 것에 불과하다. 자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차를 살 것이냐, 다른 차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그 정도의 자유 밖에 없다. 이것은 모사된 자유일 뿐이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사실 수잔 바이너Susan Beiner의 전시보다 아리조나Arizona에 있는 세도나Sedona의 거대한 협곡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무엇보다 신령한 정기가 땅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 신비의 땅은 많은 명상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구원의 땅 혹은 영혼의 안식처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은 어떤 기(에너지)의 작용으로 세도나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위한 ‘치료와 소생의 땅’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이 만든 예술품보다 신이 만든 천혜의 협곡과 광활한 대지를 마주하고 싶었다.
아리조나 피닉스Phoenix에서 100마일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니 어느덧 차창 너머 ‘Sedona’라고 쓰여진 나무 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30마일을 더 달리자 드디어 세도나의 광막한 풍광이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나는 아이처럼 설레는 맘을 주체할 수 없어 잠시 들숨과 날숨의 간격을 조절했다. 하지만 세도나의 기운을 받아 명경지수明鏡止水를 꿈꾸던 나의 마음은 순식간에 허망감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동차 창문에서 흘러들어온 세도나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상이했다. “세도나가 혹시 이곳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물던 나의 의문들은 ‘Welcom to Sedona’라고 쓰여진 표지판 앞에 단숨에 사라져 버린다.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절박감을 뒤로하고 몇 마일을 더 달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소에 세도나Sedona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에서 만들어진 실재를 압도하는 이미지가 나의 뇌리를 가득히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진 세도나의 ‘하이퍼 리얼리티Hyper Reality’는 실재 세도나의 모습을 너무도 초라하게 만든 것이었다. 세도나는 없었다. 이것이 내가 아리조나에서 처음 맞닥뜨린 현실이었다.
이미지가 실체를 압도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뒤로하고 나는 수잔 바이너Susan Beiner의 전시를 보러 아리조나 템페Tempe에 있는 세라믹 리서치 센타Ceramics Research Center로 발길을 돌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Synthetic Reality’라고 벽면에 적혀진 전시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조작된 실재’라고 해야 할 것인가.
전시장 벽면에는 온통 고부조 형태의 이름 모를 식물과 꽃들로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스립 캐스팅slip casting, 석고틀을 만든 후에 흙물을 넣어서 원하는 형태를 뽑아내는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자기porcelain 형태의 식물과 꽃들은 다양한 천연색의 칼라로 뒤덮혀 있었다. 마치 해저 속에서 자연증식을 거듭하는 익명의 산호와 엽상체, 해면동물, 그리고 만각류蔓脚類, Cirripedia들이 갤러리를 온통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거북손, 조무래기따개비, 주머니벌레, 줄따개비등 백과사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즐비하게 그 형형색색의 모양새를 관객들에게 뽐내고 있었다. 도무지 도자기로 이 많은 생명체를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지천으로 펼쳐진 생명체들은 언뜻 보기에 녹색인 듯도 했지만, 자세히 보니 그 안에는 자주빛도 있고, 분홍과 주홍의 미세한 차이도 드러내고 있었다. 달콤한 팔레트에서 빚어지는 오묘한 색조와 그 형들은 실재 생명체들의 그것들보다 더 정교하고 치밀했다. 
경이로운 것은 시각만이 아니었다. 마치 봄날에 흩어지는 수수愁愁로운 소녀들의 체내음인 듯도 했고, 심해 기암괴석에 달라붙어있는 해초류에서 퍼져 나오는 비릿한 생내음과도 같은 쉽게 형언할 수 없는 향기가 전시장에 가득했다. 경이로운 이 두 감각을 더하면 공감각이라 했던가. 아무튼 전시장 안에 있는 동안 내가 감당하기 힘든 어떤 기운이 밀려들어와 잠시 갤러리 밖으로 나와야만 했을 정도였다.
갤러리로 들어와 다시 자세히 작품을 들여다보니 그 생명체 하나하나는 처음에 익숙했던 이미지에서 물러나와 다른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연의 생명체가 아니라 인조적인 형상을 하고 있는 놈들도 보였고, 군데군데 기계성을 지닌 볼트bolt와 넛트nut도 오묘히 고개를 내밀고도 있었다. 무엇보다 흙을 구워 유약을 입힌 다른 작품들과는 너무나 생경하게 대조를 이루는 플렉시글라스Plexiglas가 작품 속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황홀한 ‘헛것’에 속고 있었음을 직감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의 풍광이 연출된 것 같은 갤러리는 기계성을 지닌 인조적 자연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볼트와 넛트 그리고 플렉시글라스가 이렇게 완벽한 자연의 조화를 위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무엇보다 작가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한 기술적 완성도는 형언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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