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조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 교수
아름다운 한국 도자기의 유형과 그 정신세계는 이 시대 문화를 이끄는 무형의 에너지로서 존재한다. 세계의 도자기들 속에서 우리 도자기의 뚜렷한 문화적 가치는 높이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문화적 단절기를 거치면서 왜사기 범용과 같은 왜곡된 상품시장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백 년 간 이어온 우리 도자기의 전통은 그 정체성이 퇴색하고 말았다. 21세기 급성장한 우리의 경제력에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도자문화의 재 부흥을 위한 나의 소명의식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고자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교육자로서의 역할 이전에, 한국의 도예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한국의 미 그것의 원류를 바탕으로 미적 가치관을 세우고, 작품을 제작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오늘날의 사회를 대변하듯 다양하고도 새로운 조형이념과 양식의 창조가 현대 도예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류 속에서 바른 ‘작가의식’을 세우는 것은 뛰어난 조형감각이나 숙련된 제작기법을 갖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작가의식이 없다면 차별화된 혁신을 이루거나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다한 물질문명의 급진적인 도래로 말미암아 우리의 선조들이 지켜온 숭고한 장인정신을 잃어버린 지금, 한국 도자공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과연 한국 도예가의 작가의식은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본고本稿에서 40여 년간을 도예가로 그리고 교육자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나의 사견에 비추어 한국 현대 도예가가 지녔으면 하는 바른 작가의식을 말해보고자 한다.
작가의 사고가 작품 속에 기술되어 그 미의식을 규명한다고 볼 때, 우선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도예가의 작가의식을 서술하기에 앞서, 도예가로서 걸어온 나의 길과 작품을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1976년 경희대학교에서 『고려청자 상감의 연구』 논문을 쓰고 1977~79년 일본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에서 수학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온 후,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도자의 원류를 찾기 위해 조선관요 분원의 터가 있었던 남종면, 이석리 작업실에서 조선도자 파편과 20여 년 간의 세월을 보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위축되고 왜곡되어 비쳐졌던 우리 도자문화가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로 다시 서기위한 방편들을 모색해 보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잠시 나타났던 연리문 도자기를 주제로 해서 물적요소와 정신적요소에 대한 절제미의 현대적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직육면체의 형태위에서 소거消去작업과 함께 단순화 시켜가는 조형은 조선시대 조형정신의 요체인 절제節制의 아름다움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나의 연리문 도자기는 역사적 고찰과 전통 기술적 요소를 통해서 흙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대중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도예가는 우선 도자역사의 근본정신을 고취하고, 긍정적이고 다양한 각도의 사고와 함께 고유의 목표달성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높아진 경제수준과 고급문화에 대한 대중의 동경이 점차 더해가는 요즘, 과연 한국의 도예가들은 한국도자의 미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의 미의식이 과거 고려청자와 조선시대의 도자기에 그 시선이 머물러 있진 않은가? 이 시대의 한국도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그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도요지와 세계 여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우리의 도자기,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 도예가를 통해서 현대도자와 전통도자 사이에서 의식의 흐름을 재조명하고 그 향방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와 같이 도예가들의 관념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칫 우리 역사 원류의 이해에 대한 강조로 인해 우리 선대의 도자기를 한국 도예가들이 취해야 할 목표점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그것은 오히려 한국의 도예가 넘어서야 할 벽이다. 다르게 말해 새로운 조형 세계를 펼치기에 앞서 우선 이행되어야 할, 한국이 이루어 놓은 예술세계의 정점을 넘어서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고루한 답습만으로는 선대의 도자기가 품는 아름다움을 넘지 못한다. 이 정점을 뛰어 넘어설 때 세계 속에서도 인정받는 한국 도예가로 그 걸음을 당당히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이것은 단편적인 기술의 연마나 원초적인 노동, 혹은 미학적 접근으로만은 이루기 어렵고, 복합적인 작가의식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도예가들은 공예가로서, 예술가로서 혹은 디자이너로서 아마도 제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도예가로서 어떤 길을 택하든지에 관계없이, 다음 제시하는 소견들은 앞서 언급한 역사적인 이해와 함께 지향해야 할 작가의식이라고 본다.
그 첫 번째로 ‘도예가는 도전해야 할 분야를 보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도자를 이제 종합예술로서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전통성과 현대성의 조화를 통해서 미래의 방향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첨언 한다면 ‘작가로서의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안목을 갖자’는 것이다.
먼저, 도예가는 충분한 개념적 사고에 바탕을 둔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는 현대미술과의 경계선에서 도예의 가능성을 보다 넓히는 시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공예트렌드 페어나, 도자기 축제 그리고 일부 한정된 공예전시 공간을 넘어 주요 미술시장으로의 진출기반을 다지는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의 훌륭한 도자역사에 상당하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도예 작가군이 아직까지 많지 않다는 것에 이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자문화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 동안 편협하게 다루어졌던 국내 도자시장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국내·외시장에 동시에 다가갈 수 있는 통찰력을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것이다. 개념적 사고와 함께 완성도 있는 작품제작을 위해서, 재료 및 제조기술의 지속적인 연구 개발과 제품의 고급화를 이루기 위한 도전 또한 도예가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화려한 전통의 일방적인 답습은 소수 전승 장인으로 충분하다. 현재는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고 새로운 사고와 제작 기법을 찾아내기 위한 도예가들의 도전정신은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된다. 철저하게 자신 작품의 특성을 개념적, 기술적으로 파악하고 그 장단점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도자를 통해서 동시대의 이념에 맞는 다양한 문화구성 요소를 보여 줄 수 있는 작업관이 필요하다. 이제 도예가는 현대의 통합문화 속에서 도자기를 ‘종합예술’이라고 할 만큼 총체적인 의미로 바라보아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해진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화 없고, 발전 없는 도자디자인은 시대적 요구에서 도태하기 마련이다. 그 시대 식문화의 변화, 사람들의 생활패턴, 글로벌한 문화의 혁신적 진화, 다인종 사회로의 진입 등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현대 도자의 범위를 확대 할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새로운 장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들 해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의 기술적 접근, 앞서 언급한 새로운 미술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도전, 다양한 분야에서의 통합적 접근, 그리고 작게는 유약조합을 비롯한 작가의 모든 작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를 이룸으로써 종합적인 문화구성 요소를 도자에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과거 우리가 이루었던 도자공예의 고부가가치화를 다시 한 번 현실화 시켜야 할 것이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3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