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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월호 | 뉴스단신 ]

현대미술의 7가지 키워드와 함께 떠나는 방창현의 세계도자기행(4)
  • 편집부
  • 등록 2010-08-10 17:23:29
  • 수정 2010-09-09 1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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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백의 풍경, 풍경의 여백
  • 네 번째 작가 : 히로에 하나조노Hiroe Hanazono

본 연재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인 숭고the sublime, 몸body, 미니멀리즘minimalism, 물성materiality, 서사narrative, 개념미술conceptual art, 팝아트pop art를 중심으로 본 현대도예에 관한 글이다.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기행문적 수필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이 현대 도예 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 졌다. 한국의 현대도예가 오랜 동면의 시기를 지나 이제 찬란했던 옛 영화를 위한 용트림을 하는 이 시기에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의 비젼과 현재의 성찰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저마다 제 존재를 피력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시 모질게 소외되어 어느 길모퉁이에 웅크려 이국異國의 가로수 등을 바라본다. 이건 습관이다. 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 놓여진 내 자신을 인식할 때 마다 느껴지는 이런 감정들. 유목민을 꿈꾸던 내가 정주민의 삶에 자꾸 이끌리는 것은 또한 무슨 모순인가?
어둠이 내린 시각, 갤러리 창 너머로 식탁 위에 풍성히 진열된 그릇들이 보인다. 순간, 허기진 내 배를 채워줄 그 무엇을 찾아 헤맨다. 여긴 필라델피아다.    

“식탁의 쾌락은 연령과 조건을 불문하고 국가와 시대를 넘어선다. 다른 모든 쾌락과 결합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를 위로해준다.”
 - 브리야 사바랭 Jean Anthelme Brillat -Savarin -
식욕은 성욕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나, 죽음에의 본능, 즉 타노토스Thanatos를 느끼는 사람은 처음부터 먹으려는 의지를 상실한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욕망은 신분과 상관없는 동등한 지위를 가졌지만,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존하기 위해 먹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먹는 행위가 종교처럼 하나의 의식으로써, 축복으로써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의 중요한 차이점은 신분, 학력, 출신과는 상관없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요, 습관의 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특정한 문화 속에서 하루에 세 번씩 경험하는 음식의 종류는 일상적으로 많지 않고, 주로 반복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준비되어 있다. 특별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진상되는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음식의 종류와 질은 보편적 삶의 수월성에 의존한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산업 사회의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가치가 몸과 의식에 각인 되어 식탁 위의 즐거움은 다른 물신을 위한 욕망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물신을 숭배하는 사회적 풍토와 신기루와 같은 욕망을 하루빨리 성취하려는 인스턴트 시대에 우리가 매일 먹는 소소한 음식에 대한 예찬이나 각별한 의식은 어쩌면 사치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일본 도예작가 히로에 하나조노Hiroe Hanazono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그 소소한 음식들을 특별한 지위로 올려놓는다. 피아니시모pianissimo, 악보에서 매우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적인 색과 유기적 건축미를 지닌 형태는 제 존재감을 낮춤으로써 작품 위에 놓여지게 될 음식의 색상과 형태를 위한 최상의 공간을 연출한다. 이중벽으로 캐스팅 된 용기用器, container 모양새의 넉넉함은 곧 있을 특별한 만찬의 풍성함을 알리고, 서로 어우러져 먹을 수 있는 여유로움과 살아 숨쉬는 존재에 대한 예찬을 나타낸다. 타인과 함께 음식을 먹는 내내 히로에 하나조노Hiroe Hanazono의 작품은 미각과 시각의 긴장감을 잃지 않고 주위 공간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테이블웨어 디자인tableware design 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용기의 ‘비움’ 과 ‘채움’이라는 서로 상반되지만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독특한 미학에 기본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용기는 그것에 담겨질 음식을 고려해서 스스로(디자인적으로) 넘쳐서도 안 되고, 시각적으로 또한 예술성이 부족해서도 안 되는 중간지점의 속성을 가진 매체이다. 도예디자이너들은 요리사들에 의해 만들어질 익명의 요리의 색과 향과 문화, 그리고 예식을 가상하며 작품을 만든다. 그러므로 용기 자체는 미완의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음료가 작품에 채워지는 순간 섬광처럼 눈부신 감각의 언어들이 쏟아진다. 그것은 다른 예술 쟝르가 다다를 수 없는 존재의 현존성現存性과 깨어있음을 감각을 통해 전달되는 절대 언어의 세계이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의미의 논리」에서 “시간 속에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시간의 세 차원이 아니다. 오직 현재만이 시간을 채우고, 과거와 미래는 시간 속에 있는 현재에 대한 상대적인 두 차원이다”라고 말한다. 히로에 하나조노Hiroe Hanazono의 작품 앞에서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존재론적 불안감들은 모두 무화되고, 인간의 관념이나 의미가 존재하지 않고 일차원적인 시간성만을 드러내는 즉자卽自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품에 대한 관념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관객들은 물자체1)로 물러나 영원히 알 수 없는 화석화 된 존재의 인식세계로 침잠된다. 관념의 부재 속에서 피어나는 선연한 감각만 오롯이 살아 숨 쉬는 그곳은 존재자들의 모든 감각기관을 일깨우고, 그 존재의 현존성現存性을 극대화시킨다.
식탁 위의 시각언어들은 시간과 함께 곧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으로 자리를 내어주고 이내 황망히 사라진다. 나머지 감각들도 잠시 식탁 위를 머물다 제 존재가 머물렀던 곳으로 흩어지고, 식탁 위엔 다시 비어 있는 용기만 남는다. 비움과 채움 그리고 다시 비움의 순환고리는 동양의 윤회輪廻적 시간의 의미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무언가 항상 채우려고만 달려온 인생 속에서 비움과 여백을 통해 욕망을 정화시키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동양의 비움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0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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