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지역도자축제
글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지난달 편집부로 한 지자체의 축제담당자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올 봄 열리는 지역도자축제에 참가할 해외작가 섭외업무에 협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축제는 지역 전통도자축제로는 드물게 매년 축제기간 동안 해외작가를 초청해 워크샵과 판매전을 열어왔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똑같은 작가군이 매년 다시 초대됐고 더구나 작가군 중에는 실력과 인지도가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도 포함돼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상황이었다. 그들은 유럽 등지에서 인맥으로 형성된 모임으로 몇 해 전부터 검증단계가 허술한 국내 지방 개최 도예관련 축제의 외국작가로 초대받아 여행 삼아 다니며 융숭한 대접을 받아온 인물들이었다. 이 같은 상황을 익히 알고 있던 본인으로서는 반신반의한 생각으로 해당 지역 축제 담당자를 직접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현재 국내 각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도예 축제의 현황과 실태를 설명했다. 최근 많은 해외작가들이 초대만 받으면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의 도자축제를 ‘파라다이스’라고 지칭한다는 것과 행사에 초청되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는 사실까지 전했다. 현재 성공적으로 열리는 타지역의 축제가 초기에 겪어온 과오를 굳이 답습할 필요가 있느냐고까지 했다. 그러나 담당자의 답변은 본인의 기대와 의지를 여지없이 꺾어 놨다. “저희도 노력중입니다만... 내년에 바꿔보겠습니다. 일단 올해는 참가국 수를 좀 더 늘릴 수있게 도와주시죠.” 수억의 예산이 집행되는 행사를 홀로 담당하고 있는 지방 공무원의 입장다운 반응이었다. 그가‘지난행사 대비 해외참가국 수 늘어나! 국제규모로 발돋움한 성공적인 축제!!’라는 허울 좋은 결과를 뒤로하고 ‘개혁’을 외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전통도자축제를 간판으로 내걸고 외국인이 몇 명 참가했는가로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모양새가 답답할 노릇이다.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지역 축제를 보면 축제의 ‘주제’는 간곳이 없고 지역민들의 정서마저 상실된 것을 발견한다. 대다수의 지자체들이 지역특성화의 포커스를 ‘지역문화원형’에 맞추고 지역민 정체성 회복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내세우며 그럴듯한 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관주도로 이뤄지면서 서로 경쟁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각 지역에서 열리는 몇몇 도자관련 축제는 더도 덜도 아닌 이 같은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평균 2.2개의 축제가 개최돼온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축제 공화국’이다. 문화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 전국 시도별 축제는 서울 119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총 921개에 이른다. 면단위 축제와 비공식 축제까지 포함하면 1,200여 개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대부분이 지역화합 한마당을 내세워 열리는 획일적이고 소비적인 축제이다. 식전행사에는 지역 기관장과 유력인사들의 인사말이 홍수를 이루고 동원된 주민들은 몇 시간씩 뙤약볕 혹은 빗속에 앉아 있어야 하고, 이어지는 본 무대에는 행사전문 연예인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포장마차 촌이 장관을 이루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나마 도자축제는 산전수전 다 겪고 앞서나가는 선발 축제가 있어서인지 수준이 평균이상은 되는 듯하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전국 시, 군, 구에서 개최되는 1,178개나 되는 지역 축제를 구조 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부 지원 축제를 57개에서 44개로 줄이고 지원 규모도 70억 원에서 64억 원으로 줄인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지역 축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매년 우수 축제를 선정 발표한다. 최우수-우수-육성-예비 축제를 포함해 올해도 37개 축제가 선정됐다. 우수 축제를 바라보는 문화관광부의 시각은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축제를 즐기고 갔는지 여부와 지역 화합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만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성과위주의 평가로 인해 질적 평가가 간과되는 것이다. 축제 주제에 적합한 다양한 컨텐츠 개발과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모쪼록 더 이상 국제행사라는 타이틀 획득을 위해 검증도 되지 않은 외국인들이 작가로 초청돼 모든 경비(항공, 숙박, 체류비) 일체를 제공받으며 즐기고 돌아가게하는 혈세를 낭비하는 소비적 축제는 소멸되기 바란다. 작은 지역 축제라도 먼 나라 외국인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특별하고 의미있는 축제로 승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지역도예인들의 더 많은 고민과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