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 정물은 현실에서 특정된 고정적 위치를 갖지 않는다.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우연히 또는 자의적으로 정렬되고 재배치된다. 각각의 정물은 각각의 이야기, 각자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의 정물이 모여서 조화 또는 부조화를 이루고, 대상 간의 관계와 감정을 담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완성된 풍경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일 수도, 혹은 사람과 사물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일 수도 있다. 입체적이면서 동시에 평면적인, 불완전한 정물은 하나의 풍경 속에서 비로소 안정적인 구성을 이룬다.”
조연예는 정물화 이미지의 도자 작업을 통해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작가이다. 그는 정물 하나하나에 자신을 투영해 빚어내고 소묘적인 터치를 더해 평면적인 질감을 구현한다. 일견 3D인 입체 작품을 2D 그림처럼 보이도록 섬세한 착시 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려진’ 도자기 하나하나는 놓이는 장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만든다. 공간과 배치, 빛과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살아있는 정물화인 셈이다.
「STILL LIFE」 캔버스 출력 | 2022
조연예는 정물의 대상을 자신의 삶 속에서 탐색한다. 똑같은 작품도 어떤 시공간에 놓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듯 사람도 그렇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공간에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도 달라지고 작품도 바뀌는 것 같아요.” 초기에는 세잔 등 서양의 전형적인 정물화를 참고했다면, 이후에는 한국의 미를 담은 한국의 정물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유럽에 다녀온 뒤 영감을 받아서 새로운 기형이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무채색 계열의 화병이 겹쳐진 풍경, 곳곳에 꽃이나 과일이 놓인 모습은 정물화의 대표적인 형태이자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많이 연출되는 한 폭이다. 꽃과 잘 어울리는, 목이 길거나 손잡이가 있는 형태의 화병 종류를 다양하게 작업하다 보니 널리 사랑받는 연작이 됐다. 정물화의 대표적인 소재인 사과를 비롯해 배, 포도, 솔방울 등 열매류도 초기부터 꾸준히 만드는 사물의 하나이다. “식기류로는 에스프레소 잔, 와인 잔 등 컵을 애용해 주시는 것 같아 요. 소중하게 다뤄주시고 아껴주시는 모습을 보면 기쁘죠.”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연예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예를 시작했다. 조소 수업 등을 통해 흙을 만져본 적은 있지만, 흙으로 형태를 빚고 가마에 넣어서 구워 도자기를 완성하는 일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는 학부시절 사용성과 기능성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것보다 기형의 심미적이고 색다른 형태와 관계를 탐색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이때부터 도자기와 도자기의 결합에 흥미를 느끼고, 컵과 컵 손잡이의 관계처럼 그릇의 일부에 또 다른 그릇의 조형을 기능적으로 부착하는 방식 등으로 형태를 실험했다.
「STILL LIFE」 2019년도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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