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중국 룽취안 청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1편이 ‘2024년 여름 국제 대학 도자기 교류 창작 캠프’에 관한 내용이라면 이번 2편은 룽취안 청자의 역사와 특징,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9월에 가을바람 불고 이슬이 내리면 월요가 열리는데 천봉의 취색을 빼앗아 온다.”1)
이는 당대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비색월기 秘色越器」에 기록된 구절이다.
「바고우항馬蝗絆명 청자 다완」 사진출처: 도쿄국립박물관 이뮤지엄 홈페이지
흔히 청자의 색을 비취翡翠에 비유하는데, 비색秘色, 翡色 또는 취색翠色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된 의견이 분분하나 여러 사료를 보면 옥과 같이 곱고 신비로운 청자의 푸른색을 여러 대상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2)
손으로 빚은 옥이라고 불리는 룽취안龙泉 청자는 그 빛깔과 뛰어난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2009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 최고의 청자라 일컬어지는 룽취안 청자는 언제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했을까? 10세기 송대 이후 1,000여 년간 중국 저장성 서남부 룽취안 일대에서 활발히 제작되었다. 남송대 절정에 이르러 원, 명대까지 번성하였고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대량으로 수출된 진귀품이었다. 일례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청자 중 바고우항馬蝗絆, 마황반이라 불리는 다완은 눈여겨볼 만하다. 대를 이어 애지중지하던 다완이 깨지자 중국에 사신을 보 내 주문했지만, 남송 대 제작한 다완을 명대에 이르러 찾기 어려웠다. 대신 파손된 부분을 스테이플러 심 같은 ‘ㄷ’자 꺾쇠를 박아 수리하여 일본으로 보냈다. 마치 메뚜기처럼 보이는 꺾쇠를 이어 붙인 연유로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다완은 룽취안 청자였다.
깨진 그릇도 다시 붙여 사용하는 룽취안 청자의 매력은 무엇일까? 룽취안 청자는 두꺼운 유약 층이 특징이다. 반투명한 두터운 유약이 세밀한 조각을 감싸 부드러운 형상과 더불어 오묘한 푸른 색이 눈에 띈다. 유약을 얇게 입혀 표면의 문양이 비쳐 보이도록 한 고려청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여러 겹의 유약 층으로 옥과 같은 색과 질감을 도자기로 구현한 룽취안 청자의 제작 기술은 주목할 만하다. 초벌구이 한 도자기에 고온의 유약을 바르고 번조하기를 대여섯 차례 반복한다. 이때 열을 가하고 식히는 정도를 정확하게 통제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왜냐하면 열이 과하거나 부족하면 제 색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유된 유약의 두께와 불의 온도, 시간 등이 매우 중요하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대대로 전승되어 온 비법이라 할 수 있다. 룽취안 청자 가마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가마라 불리는 가요哥窯, 다른 하나는 동생 가마인 제요弟窯이다.3)
「남송대 가요 자기」 사진출처: 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가요는 송대 5대 가마 중 하나로 유약의 검은색을 띠는 잔금무늬가 인상적이다. 반면 동생 가마에서는 다층의 유약을 덧입혀 매끄럽고 부드러운 청자를 제작하여 룽취안요龙泉窯의 시작을 알렸다. 옥빛의 청자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하나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문화유산의 상징이 된 룽취안 청자의 오늘날 모습은 어떨까? 지금부터는 현대의 룽취안 청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은 룽취안 문화유산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국가급 거장을 지정하였다. 이 중 13세부터 청자 제작 및 연구에 전념한 쉬차오싱徐朝兴은 1988년 국가급 거장 및 중국 지적재산권 문화 대사로 지정된 공예 대가이다. 그는 전통 청자의 작풍을 계승하면서 독창적인 제작 기술을 개발하여 미적 범위를 확장시켰다. 특히 칼을 튕겨 문양을 새기는 혁신적인 방식은 룽취안 청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1994년 작품 높이 65cm의 「형제가마 혼합매병 哥弟窑混合梅瓶」은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좁은 구연부와 넓은 어깨선의 대비로 탄탄한 조형의 힘을 보여준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한 형제 가마의 유약적 특징을 한 작품에 담아 참신한 룽취안 청자의 형식을 창조했다. 이를 통해 전통 공예의 특성과 작가의 섬세한 미감 및 기술이 한데 어울려 또 다른 차원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쉬차오싱은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여 룽취안 청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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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九秋風露越窯開,奪得千峰翠色來.”
2) 고려청자의 비색은 ‘翡色’으로 12세기 중국 송대의 사신으로 고려에 방문했던 서긍徐兢의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 化奉使高麗圖經」에 기록된 것으로 당시 고려청자의 색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기서 비색의 비翡는 물총새를 깃털의 푸르름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며, 육구몽의 시구절의 취색翠色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청자의 색을 비색秘色, 취색翠色 등으로 지칭하며 신비로운秘 푸른색을 몇몇 단어로 형용하였다. 이밖에 비취翡翠는 옥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 당대의 문헌 「다경 經」에서도 “청자는 옥과 같고 백자는 은과 닮았다.”(青瓷類玉 白瓷類銀)라는 기록을 볼 때, 청자와 옥의 연관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 송대 룽취안에는 장생일章生一과 장생이章生二라는 형제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중 형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가요哥窯라 하였고 동생의 가마를 제요弟窯라 하였는데, 훗날 사람들이 동생이 도자기를 만들던 곳을 룽취안요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0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