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은 자기 생각을 그림에 표현하는 것이다. 화면과 재료를 선택하는 것부터 드로잉의 시작이다. 드로잉에는 통상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의도성이라는 지성적 부분과 의식의 흐름과 감각 같은 자동적인 기술에 의한 우연성이라는 감성적 부분이다. 시대변천에 따라 드로잉의 개념, 분류는 모호하지만,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의 중요성은 회화, 조각, 공예 구분할 것 없이 모두 동의하는 바다. 물론 시장에서 ‘드로잉’의 가치는 아무래도 유화, 아크릴화 등에 비해 가볍다. 그러나 최근 회화에서 의도와 발상이 중시되고 완성작이라는 의미가 쇠퇴해 가는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은 미술의 본질을 드러내는 독자적 예술 가치를 갖는 표현, 스타일로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나는 동시대 공예가들의 작업을 살피고 분석 방법으로 공예가들의 드로잉 유무와 작품 분석 지표로서 드로잉의 효용과 가능성에 관해 관심이 있다. 공예가들의 드로잉은 공예 제작 발상의 단초이자 설계도이면서 동시에 공예가들의 내적 심리와 환경에 대한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공예가는 구체적인 묘사적 기술의 목적으로 드로잉을 시도한다. 모눈종이 위에 정확한 실측으로 꼼꼼히 그린 도면을 보면 작품을 보지 않아도 철저하고 추구미 높은 완성도와 치밀함이 예상된다. 그에 반해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법처럼 무의식의 세계 즉 무념의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은 어떤 세밀한 도면, 실물보다 작가 그리고 작품을 잘 대변한다. 개인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개념을 극대화하여 일기 대신 매일 드로잉 하는 작가도 있다. 드로잉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그것이 아카이브형 작업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공예가들의 드로잉이 가지고 있는 많은 단서에도 불구 하고, 공예가들의 드로잉은 전시나 도록 등에서 본품에 밀려 간과, 빠지는 경우가 많다. 공예품의 ‘형태는 용도에서 출발한다’ 고 하지만, 공예가가 물질을 공예품으로 바꾸기까지는 고려해야 할 현실 조건이 많다. 물질, 중력과 같은 물리적 요소부터 공예가가 자신, 삶을 어떻게 바라보며 공예를 조형예술, 디자인, 전통 그 어느 관점에 더 중시하거나 중점 하는지가 고스란히 드로잉에 반영된다. 공예가의 드로잉은 때로 화가, 조각가의 것 혹은 건축가의 설계도나 디자이너의 에스키스도 같거나 다를 수 있다. 혹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거두절미 공예가의 드로잉이 중요한 것은 첫째, 공예가의 제작 의도, 재료와 용도에 대한 이해가 투영된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한 매체라는 것이고 둘째, 작가의 아이디어와 생각, 태도, 취향이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가장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매체라는 점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4년 10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