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지방에서 열린 한 전시 오픈식에서 정년퇴임을 4년 앞둔 모 대학 교수님을 우연히 만났다. 3년 전 작업실을 찾아가 밤을 지새우며 대화를 나눈 이후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라서 그간의 근황이 무척 궁금했던 차였다. 마침 서울로 올라가는 마지막 열차를 예약한 터라 시간 여유가 있어 차를 마시기로 하고 기차역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평소 술을 즐겨마시던 분이라 늦은 밤 함께한 찻자리가 조금은 어색했으나 안부가 오가는 사이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근황을 여쭙자 다소 굳은 얼굴로 “요즘 큰 고민거리가 있어요. 40년 가까이 해온 내 작업에 대한 회의가 생겨서...”라며 말문을 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지방의 경우 몇몇 대학의 도예과만 겪어왔던 존폐위기가 확대돼 대부분의 대학 도예 관련학과가 겪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각 대학마다 학과별로 생존경쟁을 벌이며 대외 경쟁력 있는 인기학과는 살아남고 유사학과가 통합되거나 학과 명칭이 변경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것이 교육자로서 연구하고 가르쳤던 전형적인 예술교육에 대한 자신의 철학마저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자들의 미래를 담보로 삶을 영위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위해 제품디자인과 아트 비즈니스와 마케팅 등을 지도해야 함은 감내할 수 있으나 흙작업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회의는 참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과거 학창시절 제도권 내에서 전통적 도자예술을 기반으로 공예도자를 가르쳐온 자신의 스승과 선배 도예인들이 미국의 현대도예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면서 전통도자에서 현대도예로의 전환을 빠르게 도입해 기능(용도)의 문제를 더 이상 현대도예 교육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 그로인해 물레성형 한번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자신과 같은 도예인이 배출됐다는 것 마저도 너무나 안타까운 과거라고 한다. “제 선배들은 자신들의 인식과 사고를 바꿔 공예도자를 탈피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예술가로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와 반대로 만일 내가 이제 와서 물레를 돌리고 찻그릇을 만든다면 내 선배와 동료, 후배,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까요. 아마도 적지않은 비난이 쏟아질 겁니다.” 이어 “최근 후배들 중 자신의 예술철학을 담은 도자조각陶磁彫刻, Ceramic Sculpture을 통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심미성과 기능성을 지닌 생활도자디자인 상품도 제작해 대중적인 인기도 얻고 자유롭게 분야를 넘나드는 이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고 전했다.
40여 년간 도자조각陶磁彫刻, Ceramic Sculpture만을 연구해온 노 교수의 이같은 솔직한 고백에는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현대도예 교육의 일면에서 존재하는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통도예와의 정신적·조형적 단절, 무분별한 서구 현대도자의 도입, 부적절한 대학교육의 교과목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이 시대, 사회 전체가 경제논리에 적합하게 맞추기 위해 카멜레온과 같은 색 바꾸기를 강요하고 있고, 이러한 강요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벌이는 치열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모색으로 우리 예술인을 내몰고 있다는 현상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에 큰 상실감을 경험하고도 절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한 이 노 교수의 진솔한 고백이 가장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안. 문득 이웃나라에서 교수직을 은퇴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유난히 빨간셔츠를 좋아하는 흰콧수염의 키작은 원로도예가다. 정년 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릇과 도조를 넘나들며 흙예술의 정점에서 자유롭게 유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조금전 헤어진 노 교수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