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서민들을 위해 제작되었던 녹청자와 흑갈유자. 그간 수많은 전시를 통해 흔히 볼 수 있었던 청자, 백자, 분청사기와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아 생소하게 느껴진다. 서민들에 의해 사용되어 그들의 삶이 생생히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질이 떨어지고 조잡하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고 그 연구성과 또한 미진한 편이었다. 도자 역사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녹청자와 흑갈유자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전시가 있어 관심을 모았다.
호림박물관의 아홉번째 <구입문화재 특별전>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은 2000년부터 근간까지 구입한 문화재를 선보이는 <구입문화재 특별전>을 매년 지속적으로 가져오고 있다. 그 아홉 번째 전시인 <녹청자와 흑갈유자전>이 지난 12월 18일부터 2008년 3월 2일까지 박물관 1층 특별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밝지 않은 조명아래 놓인 다양한 형태의 녹청자와 흑갈유자는 거친듯 하지만 듬직하게, 수수하면서도 진한 빛깔을 고요히 뿜어낸다. 청자, 백자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과는 달리 그 안에 진하게 깃들어 있는 강인한 생명력과 조상들의 애환은 보는 이에게 숭고미를 맛보게 한다.
녹청자
9세기 무렵 청자문화가 서남해안 일대에서 급속히 퍼져나가자 자연히 질이 낮은 값싼 청자 역시 서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되어 서민들의 수요를 충당했다.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번조 후에도 기공氣孔이 많아 치밀하지 못하고, 유약은 녹갈색이며 유면釉面도 고르지 못한데, 이러한 청자를 녹청자라 한다. 녹청자는 주로 고려시대에 제작되었으며 조선시대의 것도 찾아 볼 수 있다. 주로 대접과 접시가 많이 제작되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병, 대접, 잔, 주자, 발, 항아리를 통해 다양한 용도로 제작되어 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녹청자 중에서 보기 힘든 촛대, 향완, 정병 등은 일반적인 녹청자와는 다른 독특한 조형성을 담고있다.
질박한 형태미의 다양한 흑갈유자
흑갈유자는 산화철 비율이 높은 유약을 입혀 제작한 것으로 검은색이나 갈색을 띤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작된 다양한 기형의 흑갈유자를 통해 도자역사에서 결코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상기부터 항아리 등 저장용기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병은 비교적 많은 편으로 그 형태가 다양하고 색깔 또한 독특하며 또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기형의 편호, 매병, 정병 그리고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주자, 대접, 항아리 석간주 등이 전시되어 수수하고 질박한 형태미와 변화무쌍한 색 등 흑갈유자만의 개성적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호림박물관 류진현 학예연구사는 “2006년 구입한 문화재의 중심을 이뤘던 녹청자와 흑갈유자 두 주제로 구분하였다. 대부분의 박물관에서 청자 백자 분청사기 위주로 전시를 진행하는데 이런 서민적인 도자기를 한자리에서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라고 말하며 2009년 완공될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서울 강남)에서의 첫 전시는 <청자전>이 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함께 전했다.
일본인들이 ‘도지미’를 일본 고유 양식이라 하여 그 가마에서 생산한 녹청자 ‘이라보’를 애지중지 해 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인천시 경서동에서 일본보다 연대가 앞선 녹청자가 쏟아져 나와 고미술 사상 중대 발굴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1970년 이를 국가사적 제211호로 지정했지만 그 후 골프장 허가를 내 주는 등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서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 정겨운 녹청자와 흑갈유자에 더욱 관심을 쏟아 관리 및 연구조사가 잘 이루어져 귀한 역사적 증거로써의 문화재를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3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