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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월호 | 칼럼 ]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29 ]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무늬 편병
  •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등록 2023-07-25 16:31:55
  • 수정 2024-07-05 1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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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29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무늬 편병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조선시대 분청사기는 백자와 다른 정취로 조선시대 도자기의 또 다른 미적 성격을 구현한다. 도자기의 태토나 유약에 불순물이 포함되어도 오히려 그 상태를 능숙하게 살려 독특한 맛이 담긴 작품이 되었다. 몸통의 성형은 마무리를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거나 문양의 표현에서도 세밀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 대담함이 작품에 자연스러운 풍미를 더해주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관납용 인화무늬 분청사기는 전국적으로 생산되었으나 그 외에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는 지역적 특성이 강해 적용된 기법만 보아도 제작된 생산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박지기법剝地技法의 분청사기는 15세기 중엽에 제작되었으나 현존하는 수량은 많지 않으며 희귀한 편이다. 특히 긁어낸 바탕에 산화철안료로 메꾼 박지철채剝地鐵彩의 경우는 더욱 희귀해 전해지는 작품이 몇 점에 불과하다. 몸통을 성형한 뒤에 하얀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하고 무늬를 그린 후 무늬의 바탕을 긁어내고 산화철 안료로 긁어낸 바탕 부분을 칠해주는 기법으로, 몸통의 무늬가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는 분청사기만의 독특한 제작 방법이다. 이러한 기법의 작품은 대부분 호남지방에서 제작되었는데 대표적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등이다. 주로 편병이나 항아리, 합 등에 물고기, 연꽃, 모란꽃 등의 무늬를 추상적으로 새겨 넣은 경우가 많다.
 사진1)의 「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무늬 편병」은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몸통의 양 면을 평편하게 만든 편병이다. 남북국시대 신라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편병은 한 손으로 병의 몸통을 잡고 술이나 물 등의 액체를 손쉽게 따르기 위해 고안된 형태로 보이며, 납작한 모양과 통통한 모양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통통한 모양의 이 편병은 몸통을 둥글게 성형한 후 평편하게 두드린 것으로, 몸통에 비해서 높은 굽과 짧은 목에 입구는 벌어져 있다.  사진3)
어깨는 음각으로 간략한 띠를 둘렀으며, 몸통은 넓은 면과 좁은 면으로 4분 되는데 대칭으로 추상화시킨 모란꽃 무늬를 새겨 넣었다. 모란꽃 바탕 부분의 백토 분장을 긁어낸 뒤 산화철 안료를 칠해 모란꽃 무늬가 더욱 돋보이게 했는데, 이런 ‘박지철채기법剝地鐵彩技法’을 사용한 유물의 수량은 몇 점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하다. 추상적으로 그린 모란꽃 무늬는 전혀 세밀하거나 규칙적이지 않고 흐르는 듯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몸통의 모습은 아래에서 입구로 올라갈수록 약간 좁아지는 모양으로 경사져 있다.  사진2)
몸통에 비해서 높고 넓은 바닥굽은 안정감이 있으며 실제 사용한 듯 굽바닥이 많이 닳아있다. 백토분장한 위로 시유된 유약이 오랜 기간 땅속에서 산화되고 약화되어 간혹 유약의 박락현상이 보인다.  사진4)
가장 서민적인 도자기에 조선 사기장의 자유 분망함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창작의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서 오늘날의 명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사진1)「분청사기 박지 철채 모란무늬 편병粉靑沙器剝地鐵彩牧丹紋扁甁」 조선시대 전기 | 높이 14.5cm, 입지름 3.4cm, 바닥지름 7cm.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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