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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월호 | 칼럼/학술 ]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28] 백자청화 매화 대나무무늬 완
  •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등록 2023-05-31 15:49:13
  • 수정 2024-07-05 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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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 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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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청화 매화 대나무무늬 완

글.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청화 매화 대나무무늬 완 白磁靑畵梅竹紋碗 」
조선시대 전기 | 높이 6.5cm, 입지름 15cm, 바닥지름 7cm

 

조선 초기의 청화백자는 중국에서 수입한 고가의 코발트 안료(회회청回回靑)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왕실조차 한정된 수량으로만 주문하여 제작하였다. 세조의 재위 시기인 15세기에 중국의 청화백자가 이미 중국 사신 등에 의해 국내에 수입되어 상류층의 애장품으로 사용되었는데, 하얀 바탕에 푸른색의 무늬가 그려진 도자기는 호사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도관찰사 김종서가 고령현에 방문했을 때 현감에게 고령의 백자를 칭송하면서 선물로 받기를 원하였고 양반들이 술자리에 나온 백자 잔을 가져가는 등 백자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였

다. 중국에서 수입된 청화백자는 특히 인기가 많아 사대부가에서 서로 다투어 거금을 들여 장만하니 그 폐해가 커서 성종6년 (1475년)에는 청화백자의 사용을 금지하게 해달라는 상소도 있었다.

 

왕실에서는 워낙 비싼 코발트 안료의 수입으로 국부의 유출을 염려하게 되어 국내에서 대체할 수 있는 코발트 안료의 개발을 권장하게 되는데, 『예종실록』 8권, 1469년의 기록을 보면 코발트 안료의 개발에 대한 내용이 확인된다. “강진현에서 생산하는 회회청은 채취하여 실험해 보았더니 간혹 성공적인 안료가 있었다. 경은 널리 방문하여 공사간의 자기를 만드는 때에 회회청과 비슷한 사토를 사용하여 실험하여 아뢰어라. 읍인이 이 채색을 얻어서 바치면 벼슬이나 상을 주는데, 벼슬을 높이거나 재등용하고 베 50필을 상으로 하사할 것이니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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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3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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