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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월호 | 칼럼/학술 ]

[칼럼] 흙은 무엇을 원하는가?
  • 조새미 미술비평, 미술학박사
  • 등록 2021-03-03 11:39:34
  • 수정 2024-10-31 16: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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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2편 | 복제라는 운명
흙은 무엇을 원하는가?

글. 조새미 미술비평, 미술학박사

 

복제란 무엇인가? 조형 예술의 복제는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고, 훨씬 더 인간의 삶과 밀접했 다.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 관하여』를 쓴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의 말처럼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했고, 모방되었다. 도제들은 수련을 위해 스승의 작품을 모방했고, 장인들 은 동일 디자인의 물건을 제작했다. 수공적 복제를 제외 하고 기술적 복제technical reproduction에 초점을 맞 춰보면 그리스의 청동 주조鑄造와 주화의 각인刻印, 진 시황 병마용秦始皇 兵馬俑 테라코타 캐스팅casting과 같은 고고학적 발견에서 시작해, 중세 유럽의 동판, 에칭 etching, 19세기의 석판은 기술적 복제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20세기 들어 사진과 영화의 보편화로 예술작품 전체가 복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예술 개념도 변화 시켰다. 예술 작품이 아니라면 디지털 정보 기술에 기반 한 유전자 복제도 더는 미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흙이라는 매체는 복제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가? 20세기 이후 흙으로 제작된 작품은 복제라는 환 경적 조건에 저항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예를 들어 20세 기 중반 미국에서는 교외에 보급된 획일화된 대규모 주 택에 관한 반작용으로 인간의 숨결을 조금 더 느낄 수 있는 세라믹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흙으로 만든 물질적 사물physical thing은 여전히 탈 현 실화된 감각에 대한 보상이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역으로 기술적 복제의 방법을 흙의 언어 로 표현하는 작가와 작품에 주목했다. 동시대적 수용과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기술적 복제의 과정에 은유가 내포 된 작업, SNS 시대, 흙과 관련된 복제의 의미에 집중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독일 바우하우스와 도자 실험
테오도르 보글러 Theodor Bogler, 1897~1968
기술적 복제가 적용된 도자의 산업적 생산은 영국 스 토크 온 트랜드Stoke-on-Trent에서 18세기에 이미 시 작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사물들은 민주적 사 물로서의 도자기는 아니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모두 를 위한 사물을 위한 실험은 독일 공작 연맹Deutscher WerkBund, DWB 과 독일 바우하우스Bauhau의 도자 공 방에서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이 두 기관은 대량생산으 로 이어지는 원형 제작 단계에서 특정 주문자의 취향을 반영하기 보다는 대중적 원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1919년 개교한 바우하우스는 예비과정Vorkurs을 통 해 현대 조형예술 교육의 근간을 구축했으며, 10 개 의 공방 운영을 통해 산업과 예술의 합일, 총체예술 Gesamtkunstwerk을 추구했다. 하지만 바우하우스 도 자 공방은 시설적인 면에서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받은 애쉬비C. R. Ashbee 1863~1942 의 협단 체제가 연상되는 공 간이었다. 학생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발로 물레를 차 야 했고, 가마를 때기 위해 장작을 팼다. 공방은 바우하 우스 본교가 위치했던 바이마르에서 30km 가량 떨어진 도른베르그Dornburg에 위치했다. 이로 인해 도자 공방 은 당시 바우하우스에서 불거졌던 심각한 정치적 갈등으 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초기부터 독 자적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은 1918년 11월 혁명 이후 경제적 위기에 직 면해 있었고, 도자 산업의 경우 대량 생산을 위해 등록 된 세라믹 주전자가 전무할 만큼 산업 전반이 위기 상황 이었다. 3 이런 상황에서 바우하우스의 교장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1883~1969 는 도자 공방의 결과물에서 대량 생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1923년 서한을 통해 도자 공방의 마르크스Gerhard Marcks 1889~1981 교수에게 “몇몇 제품은 기계의 도움으로 복제 생산하는 방법을 찾 아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표현주의 경향이 짙은 재현 적 조각을 만들었던 마르크스와 지역의 베테랑 도예가 맥스 크레한Max Krehan 1875~1925 교수는 4 현실적 생산은 중요하지만 재료의 물성, 작업의 과정도 중요하며 산업 적 대량 생산 자체가 바우하우스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또 바우하우스가 그저 또 하나의 공장이 되어서 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자 공방과 관련해 가장 많이 알려진 이미지는 테오도 르 보글러Theodor Bogler 1897~1968 의 작품이다. 보글러의 주전자 디자인은 간결했다. 몸통을 포함해 6개의 부분으 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금속으로 제작된 손잡이를 제외 한 각각의 요소는 슬립 캐스팅slip casting을 통해 다량 으로 복제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몸통은 상하를 바꿔 적용할 수도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디자인 변 형이 가능했다. 이 작품은 금방이라도 공장에서 대량 생 산되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되고, 시민들에 의해 사용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각각의 요소를 주전 자의 몸체에 부착하는 과정은 숙련된 수공 기술을 요구 했고, 따라서 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로 해 당 디자인을 대량 생산할 수 없었다. 시각적인 면에서 기 계 미학적 요소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듯 보였으나 기술적인 면에서 산업 생산 현장에 바로 투 입되기 어려웠다.
보글러는 자신의 디자인을 토대로 대규모 공장을 운영 하기를 희망했고, 자신의 작품을 프랑크푸르트와 라이 프치히 페어에 출품, 전시했다. 이러한 보글러의 행보 는 스승들의 철학과 맥락을 달리했기 때문에 갈등이 증 폭되었다. 특히 도자 공방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도제 마그리트 프리드랜더Marguerite Friedlaender Wildenhain 1896~1985 는 스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보글러와 심각하게 대립했다. 1924년 12월, 보글러는 바우하우스를 떠나 벨텐 포르담 공장Velten-Vordamm factory으로 일터를 옮겼고 모형 제작자로 일했다. 바우 하우스가 데사우로 이전하면서 5년 남짓 운영되었던 도 자 공방은 1925년에 문을 닫았다.
바우하우스의 10개의 공방 중 도자 공방은 선도적으로 원형제작을 통해 시민 사회를 위한 민주적 사물의 미학 적, 그리고 대량 생산의 가능성을 실험한 장소였다. 보글 러는 진보적인 산업 문화의 역량을 지닌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 원형이 매개되는 방법을 상징적인 수준에서나마 실험했다. 새로운 미학적 형태를 기술적 복제를 통해 현 실화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권리가 있다
김재용의 환상과 욕망의 도넛
김재용 b.1973 은 도자와 조각을 복수 전공했다. 그는 2001 년 이후 달팽이 모티프를 통해 방랑자와 같은 자신의 삶 을 상징적으로 드러냈고, 2012년부터 시작된 「도넛」 시 리즈로 국제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넛」 중에 하나라도 정확하게 동일한 것이 있을 까? 작가는 동그라미, 네모, 하트, 별과 같은 다양한 모양 의 성형 틀에 슬립slip을 부어 기본 형태를 제작한다. 하 지만 작가는 같은 동그라미 형태의 「도넛」이라도 조금씩 크기가 다른, 많게는 9개의 몰드를 가지고 작업한다. 슬 립 캐스팅의 경우 최대한 일관성이 있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슬립이 완전히 굳은 상태에서 몰드와 분리하는 것 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재용은 때로는 슬립이 완전히 굳기 전에 몰드에서 「도넛」을 꺼내 두드리고, 살을 붙인 다. 또한 「도넛」 중앙의 구멍 모양과 위치 등을 조금씩 달리 배치하면서 다양한 모양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공장 에서 생산되는 도넛과 김재용의 「도넛」은 사람들을 행복 하게 하고 싶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을지는 모르나 제 작 과정의 차이는 현격하다. 작가는 어느 것도 같지 않은 「도넛」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김재용은 「도넛」을 처음 제작했던 2012년부터 약 1 년간 손으로 하나하나 「도넛」을 빚었다. 몰드를 사용하면 다양 성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작 업의 양적 규모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해졌고, 몰드를 사 용하면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다 양한 유색 유약 실험, 더 다채로운 장식 모티프를 적용한 「도넛」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노동 시간에 여유가 생 겼기 때문이다. 몰드를 이용한 기술적 복제의 방법이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점에서 「도 넛」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작가에게 초벌 한 하얀 「도넛」은 만화가의 빈 스토리보 드, 시인의 백지 노트와 같다. 하얀 「도넛」은 우리에게 어 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존재이다. 하 나의 완성된 「도넛」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본 형태를 얻은 다음에도 적어도 4 번에서 8 번의 소성 과정이 필요 하다. 유약 밑에 그림을 그리는 하회 과정underglaze을 수차례 반복한 후 상회overglaze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마에서 나온 후에도 세밀하게 장식을 부착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작가는 닮고 싶은 어떤 것의 이미지를 「도넛」에 투사함 으로써 수많은 사람에게 말을 건다. 「도넛」은 비극적 삶 에 노출된 인간,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인 간 할 것 없이 모두를 유혹한다. 또한 「도넛」은 인간에게 보편적 특성이 있으면서도 어느 한 사람도 같지 않음도 알려준다. 마치 마틴 루서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가 “하느님이 지구상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인 간의 보편적 인권에 관해 설파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인 간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음을 제시한 다. 김재용은 보편적 인권 위에 중동의 장식 문화, 미국 의 팝아트, 민화 속의 호랑이, 까치와 같은 동물 상징을 교차해 심어 놓고 어느 한 사람의 문화적 배경을 독해하 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존재할 수 없다고 속삭인다.

기억을 저장해주는 장소, 흙
김진

김진 b.1986 은 서울을 기반으로 공동체, 노동, 도시 문제를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 여성의 삶과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의 문제는 김진이 천착하는 주요 주제이다.
「말한다」는 약 20×15㎝ 크기의 세라믹 부조 160 개를 벽 과 한 몸인 것처럼 보이도록 설치한 작업이다. 어머니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이 부조들은 멀리서 보았을 때 동일해 보인다. 하지만 가 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어느 것도 똑같지 않다. 작가는 원 형을 만든 후 이를 토대로 석고 틀을 제작했다. 부조를 만들 수 있는 석고 틀에 어머니에 의해 버려질 뻔했던 일 상의 부산물, 가령 낡은 고무장갑, 바느질하고 난 뒤 남겨 진 실 뭉치, 청소 후 쓸어 모은 머리카락, 잡초, 파스 등을 배치하고 그 위에 말랑말랑한 흙을 꾹꾹 밀어 넣었다. 석 고 틀 내부 공간이 흙으로 채워졌을 때 작가는 이를 조심 해서 석고 틀로부터 분리했고, 부조 앞면 점토에 반쯤 함 몰된 일상의 부산물을 핀셋으로 살며시 제거했다. 작가 는 석고 틀을 재정비한 후 다시 다른 사물을 배치하고, 점 토를 채우고 꺼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말한다」에서 폐기될 운명이었던 사물들이 소 성의 과정을 통해 세라믹으로 반영구적 생명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ich 1926~2002 는 저임금 노동이나 실업 상태가 아닌, 임금노동의 보완 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지칭했다. 일리치는 그림자 노 동을 임금 노동의 샴쌍둥이와 같은 무급 노동으로서 산 업 사회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보완물이라고 말했다. 그 예로 여성들이 집에서 하는 대 부분의 가사 노동, 장보기, 학생들의 벼락치기 시험공부, 직장 통근, (…) 그리고 ‘가정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는 수많은 활동이 이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8 그림자 노 동의 특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노동이 특정한 노 동이라기보다는 필요 충족 행위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그림자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 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이 특이한 형태의 예속, 즉 “남성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이며 여성은 기본적으로 사적-가정적이라는 관념은 19세기 이데올로기일 뿐” 9 이 기에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김진은 작 품을 통해 질문했다.
김진은 2019년 개인전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를 통 해 일상 공간에서의 권력 관계, 노동의 의미, 나아가 딸과 어머니의 관계에 관한 사유를 전개했다. 우리의 데메테르는 누구인가? 우리의 데메테르는 그리스의 곡물과 수 확의 여신일 뿐인가? 김진은 「말한다」에서 수많은 데메 테르를 재현했고, 이를 통해 데메테르는 신화에만 등장 하는 것이 아니라고, 수많은 데메테르가 우리 주변에 숨 쉬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김진은 갈등의 칼날을 세 우기보다는 우리가 데메테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김진은 백경원 b.1987 과 함께 2017년 프로젝트 그룹 고사 리레볼루션을 결성했다. 설치 작업 「그림자 노동자 I」 (2018)는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 제조업 도시였던 스토 크 온 트렌트의, 「그림자 노동자II」 (2018)는 한국 청주 에 위치한 행남 자기의 여성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자 노동자」 시리즈는 이름 없는 여성 노 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기념비와 같은 작업이다. 「그림자 노동자 I」의 경우 영국의 웨지우드 사(社) Wedgwood Company의 재스퍼웨어Jasperware의 형식을 차용한 설치 작업이다. 작가들은 18세기 제작 방식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동시에 재스퍼웨어에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 모티프를 도자 공장에서 스펀지 질을 하는 여 성 노동자의 옆모습으로 대체했다. 김진과 백경원은 과 거 공장에서 실행되었던 전통적인 기술적 복제 노동을 현재로 소환함으로써 젠더 차이에 기반을 둔 불평등의 문제가 18세기뿐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임을 주장했다. 18세기 기술적 복제의 현시를 통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하고자 했던 이 작업은 김진의 작업에서 선의의 제안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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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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