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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월호 | 해외 ]

Blue-로열 델프트 Royal Delft
  • 편집부
  • 등록 2018-07-05 13:22:57
  • 수정 2018-07-05 13: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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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로열 델프트 Royal Delft 

 

김선애 도예가


There is no blue without yellow and without orange, and if you put in blue, then you must put in yellow, and orange too, mustn´t you? Oh well, you will tell me that what I write to you are only banalities.-Vincent van Gogh, from a letter by Vincent Van Gogh to Emile Bernard, June 1888

 

‘인터스텔라(2014)’영화에서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이해는 못 하지만 믿어보기는 해요.’
도자기 역사에서 파랑은 나에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과 같은 존재이다. 영국 런던의 V&A에서 유럽도자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파랑의 속삭임은 나에게는 사랑의 속삭임과 같았다. 네덜란드 리서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파랑이 이야기하는 또 다른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 속 끝나지 않는 스토리였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친구였던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 프랑스 화가에게 편지를 쓰며, 파랑을 표현하려면 함께 노랑과 오렌지를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랑과 주황색 없이는 파랑이 없다는 그의 말은 재미있게도 이번 호에서 함께 만나려 하는 델프트 도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렌지색은 네덜란드 왕가와 국가를 상징하는 색으로 16세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 독립운동을 펼친 영웅과 관계있다. 당시 네덜란드 귀족이었던 오라녜 빌럼 1세는 네덜란드 독립을 이끈 영웅으로, 왕정이 된 이후, 그 가문의 이름인 오렌지색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오라녜Oranje는 영어로는 오렌지Orange라고 쓴다. 그래서 오렌지색이 네덜란드 왕가와 국가를 상징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는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이 있는데 델프트를 가고자 한다면 먼저 고흐가 들려주는 네덜란드의 파랑 이야기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델프트까지
암스테르담을 떠나 델프트까지 기차로 이동하다 보면 네로와 파트라슈가 사랑한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 실사판 버전이 나온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기억의 동화의 실 배경은 벨기에의 앤트워프였다는 아쉬운 사실. 들판에 멀리 풍차를 보며 델프트까지 이동한다. 네덜란드에 필자가 방문했던 날은 비가 오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방문한 날에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기차가 델프트 역까지 가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섰다. 생전 처음 밟아보는 네덜란드 시골길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을 더 델프트까지 이동했다. 다시 영국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던 그때 마음은 글을 쓰면서 하나의 추억으로 새겨진다.
로열 델프트 공장&박물관의 역사ROYAL DELFT FACTORY&MUSEUM
델프트에서 언제부터 공장이 세워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32개의 델프트웨어 공장이 있었다 전해진다. 16세기 중반 이후, 암스테르담에 있던 Haarlem, Middelburg공장이 이탈리아에서 다색도기를 배워와 생산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16세기 후반에 가서야 델프트 고장에서 델프트도기를 만들었다 전해진다. 17세기에는 많은 공장이 급속도로 생겨났다. 당시 중국 자기가 네덜란드 선원을 통해 들어와 자연스럽게 소개도 되었고, 1602년에 생긴 더치동인도회사 또한 극동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자기를 들여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653년 설립된 ‘De Porceleyne FlesThe Porcelain Jar’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델프트 공장이었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로열델프트의 전신이다. 17세기 전성기를 맞이하며 델프트의 파란 꽃을 피우던 시절이 왔다.
18세기에는 이미 유럽에서 포셀린이 발명되어 델프트 도기와 비교해 포셀린은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델프트에서 도기를 만드는 공장들은 점점 더 어려움을 겪게된다. 1746년에 하얀 흙이 발견되었다. 새로운 흙은 델프트 도공들이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우수하여 어두운 태토를 덮어서 포셀린처럼 보이게 만들던 하얀 주석 유약이 필요 없어졌고 문양을 그린 후, 투명유약으로 바로 시유할 수 있었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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