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아트마켓 샌프란시스코>가 열린 페스티벌 파빌리온Festival Pavilion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4㎞ 운전하면 포트 메이슨Fort Mason이라는 항구에 도착한다. 과거 미 육군의 선적항으로 약 100년이 넘도록 사용된 이 항구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태평양 지역으로 나가는 대부분의 군수물자들을 실어 보낸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이한 역사적 배경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경관 그리고 시내에서 가깝다는 이점들로 인해 오늘날의 포트 메이슨 센터는 아트페어나 크라프트 페어 등의 여러 가지 예술과 문화 활동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제6회 아트마켓 샌프란시스코6th Art Market San Francisco>(이하 아트마켓)와 <레네게이드 크라프트 페어Renegade Craft Fair>는 각각 타깃층이 다른 콘텐츠 마케팅으로 성공한 아트 쇼이다. 아트마켓은 미국 굴지의 박물관 및 미술관들과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공신력이 있는 아트 쇼라는 것이다. 모더니즘부터 현대미술까지 작품을 소장한 갤러리 경영진들이 아트마켓을 통해 작품 판매와 아트 딜러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파리와 벨기에 등지에서 발생된 연속적인 테러로 인하여 많은 예술품 수집가들이 유럽여행을 포기함으로써 야기된 미술시장의 침체를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있다. 아트마켓은 미국 6개의 도시에서 차례로 열리는데, 보통 매년 3월에 뉴욕에서 시작해 샌프란시스코, 롱아일랜드, 시애틀, 텍사스, 그리고 마이애미까지 12월의 전시를 끝으로 일 년을 마감한다.
반면 <레네게이드 크라프트 페어>(이하 레네게이드 쇼)는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젊은 층을 겨냥한 페어로서 아티스트들이 최신 유행하는 옷, 신발, 액세서리, 홈데코, 향수, 가방, 악기, 도자기, 비누, 가죽공예, 비즈나 뜨개질 공예 등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독립 크라프트 페어로서는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며 미국 내에서 8개의 도시, 그리고 런던까지 총 9개 도시에서 순회하며 일 년 내내 열린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선 일 년 중에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총 3번 열린다.
제6회 아트마켓 샌프란시스코Art Market San Francisco
아트마켓 전시장은 차분하고 프로페셔널한 상업적인 느낌을 풍긴다. 정장을 한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들이 각각의 부스에서 밝은 조명을 받으며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었고, 관람객은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69개의 갤러리들이 페인팅, 사진, 조각, 도조, 설치미술 등을 각자의 부스에서 전시하고 있었다. 작년과 달리 이번 아트마켓에서는 젊고 새로운 도예가들의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아트마켓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도예가들
도예가 원신 장Wanxin Zhang은 1961년생으로, 중국 문화혁명 시기에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9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원신은 로버트 아네슨Robert Arneson을 선두로 하는 캘리포니아 펑크 아트Ceramic Funk Art Movement의 영향을 받았다. 급진적이고 격동적인 시대를 겪으면서 형성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인 맥락에서 찾고자 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 「애인과의 작별Farewell, My Concubine」은 말 표면을 산수화 전사지로 표현해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여인 몸에 그려진 문신은 대중문화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유머러스하다. 전체적으로 흐르는 듯한 곡선은 흙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과 더불어 감상적인 주제와도 잘 어우러져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와 애인의, 마치 한편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이별의 장면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서유럽의 종교화에서 따온 주제에 중국 명나라의 청화백자 테크닉을 합쳐서 표현한 작품 「피에타Pieta: Refluent Tide」는 흘러내리는 유약과 블루와 화이트의 대비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의 고통과 비탄을 공감하게 한다.
그레코로만 조각 스타일의 고전적인 두상 도조인 「무지개 브라더A Rainbow Brother」는 세라믹 펑크 아트 작가인 비올라 프레이, 로버트 아네슨 등의 작품 성향을 계승한 것 같은 작품이다. 삼원색의 강한 대비 효과를 내는 유약들을 사용했으며, 역시 흘러내리는 기법으로 시유했다. 장조로 작곡된 밝은 음악 뒤에 느껴지는 어두운 단조의 추상표현주의 느낌 역시 지울 수가 없다.
캘빈 마Calvin Ma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도예가로 주로 인형이나 장난감 그리고 집을 소재로 하여 그의 정신세계를 형상화시킨다. 인형의 몸에는 창문이 가슴이나 머리에 부착되어 있고, 그 창문 안쪽에서는 하얀 얼굴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다. 마치 “몸은 정신이 거주하는 집이다”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성 결여와 대인 공포증을 심하게 앓아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영웅이나 악당 같은 액션 피규어action figure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여러 가지 가상의 캐릭터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분명히 장난감은 그에게 예민한 감성을 보호해주는 쉼터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장난감에서 느껴지는 꾸밈없는 순수한 면과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어둡고 멜랑꼴리한 면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초현실적인 느낌을 끌어내고 있다.
제프리 미첼Jeffry Mitchell은 미국 서부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도예가로 우리 삶에서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양립된 개념들을 모티브로 작업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 빛과 그림자, 죽음과 삶, 아름다움과 추함, 강인함과 연약함, 슬픔과 즐거움 등 언뜻 보면 상당히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개념들을 그만의 예술세계라는 필터로 걸러내 마치 아름다운 시를 읽은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동물이나 꽃, 나비, 나무들은 완벽하고 아름답게 묘사돼있어서 그 이면의 ‘시간의 덧없음’이라는 삶의 존재론적인 통찰을 이끌어낸다.
낸시 로렌즈Nancy Lorenz는 미국 작가로 대학에서 페인팅과 판화를 공부한 뒤 일본과 로마에서 자개 공예, 래커 공예 그리고 금박 공예를 공부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금박을 페인팅에 도입해 새로운 시각적인 경험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한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낸시의 작품은 순수미술과 장식미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담하고 선이 굵은 붓놀림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을 연상케 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길더의 흙gilders’ clay’이 궁금해서 큐레이터에게 작품 제작 과정을 물어보았다. 그의 설명을 대략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 철분이 많이 함유된 흙을(한국의 산청토와 비슷했다) 바짝 말려서 잘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놓는다.
2. 토끼가죽, 아교 가루 약 3 큰 술과 2컵의 물을 중탕기에 넣고 잘 섞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끓이면 안 된다.
3. 준비해 놓은 토끼가죽 아교풀을 중탕기에 넣고 1의 흙가루를 넣어가면서 원하는 농도에 맞게 잘 저어 섞은 후 체에 거르면 ‘길더의 흙gilders’ clay’이 된다.
4. 올이 굵은 삼베를 나무 패널 위에 부착시킨 뒤 삼베 위에 ‘길더의 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잡는다.
5. 흙이 마르면 그 위에 물을 적셔가면서 골드 리프gold leaf를 붙인다. 물이 증발하면서 골드 리프가 자리를 잡는다.
6. 동물 이빨이나 반들반들한 돌로 골드 리프를 문질러 윤을 낸다.
끝으로 소개하고 싶은 도예작가는 샌프란시스코 중심에 자리 잡은 유명한 레나 브랜스틴Rena Bransten 갤러리가 전시한 다렌 윌슨Daren Wilson의 그림과 도예작품이다. 다렌 윌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2011년부터 이태리 20세기의 거장,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1890-1964)의 정물화를 모작했다. 대가의 작품을 그대로 복사하는 작업은 오일 페인팅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르조 모란디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꽃병이나 수수한 병들, 그리고 차 상자들을 70개 정도 소유했다고 하는데, 40년이 넘도록 이리저리 배치를 다르게 하여 정물을 그렸다고 한다.
다렌 윌슨은 처음에는 모란디의 작품을 그대로 모작 했지만, 차츰 원작과 조금씩 다르게 병들을 배치하여 단순하고 절제된 그만의 새로운 구성을 탐구하려고 노력했다. 다렌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가 모작한 모란디의 작품은 내 것이 아니지만, 모란디의 것도 아니다. 유보된 상태라고나 할까?”라고 말한다. 다렌은 흙으로 모란디의 병들과 상자들도 만들었는데, 평면에서만 보던 모란디의 병과 상자들이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견고한 입체로서의 긴장감과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