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자유기고가
중남미 대륙은 지구 반대편의 거리만큼이나 생경하고 멀게 느껴진다. 33개의 국가와 6억 인구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으로 카리브해Caribbean Sea 인근 국가도 포함하는 명칭이다. 군사 쿠데타, 독재, 빈부격차, 저개발 등의 특징이 머릿속을 먼저 스치면 업데이트가 상당히 뒤쳐져있다는 것. 젊은 세대에서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다양한 문화의 보고로 지극히 낭만적인 여행지로 예찬되고,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명소천지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단다. 하지만 필자가 짧게나마 일여 년 넘게 그들의 삶에 은근슬쩍 끼어 살아본 결과 낭만과 현실의 괴리감은 꽤 컸다. 단디 무장하지 않으면 신세계가 기괴하게 다가설지 모를 일이다.
엔리께 로조를 처음 만난 건 도미니카 공화국내에서 일 년 중 가장 크게 열린다는 예술시장에서였다. 기왓장 형태를 연결해 만든 투박한 팔찌부터 깨진 도자기를 이용해 만든 귀걸이, 벽면이나 대문에 걸릴 법 할 각양각색의 도판문패,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체스말셋트까지 눈길을 끄는 아이템들의 풍경은 분명 한국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꼼꼼한 마무리는 커녕 날선 흙의 질감들로 불편하게 거슬렸지만 쏠쏠하게 보는 재미와 수집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또한 그의 오브제는 재해석을 통해 의미를 더하는 게 아닌 보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다. 이를테면 오토바이에 못실어 나를게 없다는 듯이 아이 네 명은 기본이요 돼지건 가스통을 운반하는 실제상황이라든지 남녀의 수위높은 춤사위, 머리에 헤어롤을 장착한 채 태연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행동양식을 액션 피겨Action figure처럼 절묘하게 표현한다. 즉, 오랫동안 눈에 익숙해진 대상들을 생활밀착형 측면에서 다시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 결과물인 것이다. 분명 위트나 즐거움이 있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쉽게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표정들을 진지하리 만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를 보고 겪지 않은 경험이나 장면을 직접 겪어본 것처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창작자의 힘이 아닌가 싶다.
밀도 높은 일상의 공감이 소재
한국적인 디자인이 한국적인 정서에서 나오듯이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이하 도공)이라는 물리적 장소와 사회문화적 조건에 기인해 도공다운 정서가 담긴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촘촘한 도시생활의 밀도 높은 관찰과 결과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세심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시간의 단층을 느낄 수 있는 담벼락, 젊음의 자유와 낭만이 있는 거리낙서, 예를 들면 ‘쓰레기 버리면 죽여버릴꺼야. 젠장’ ‘닭 팔아’ ‘경찰과 공무수행 중’ 등 나의 집과 너의 집의 평범한 일상에서 ‘공감의 순간’을 가볍고 경쾌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주택이나 대성당을 복제한 미니어쳐 기념물 등에는 인간적인 스케일이 돋보인다. 집은 집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거짓없이 펼쳐내는 그의 표현 방법이 거칠게 느껴지진 않는다. 직접적인 표현 방법으로도 유치하지 않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도예가
엔리께 로조(59)는 아르헨티나가 고향인 남미사람이다. 약 20여 년 전인 1989년에 이주해왔다니 인생의 3분의 1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함께 보낸 셈이다. 아르헨티나가 더욱 풍부한 문화와 윤택한 경제상황으로 예술가로 지내기엔 그곳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왜 오게 되었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은 매우 노골적이었다. 아르헨티나에 도예가들은 상당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곳은 수가 매우 적고 주목받을 수 있어서라니. 6세 미만의 어휘수준을 가진 인터뷰어인 필자를 위해 짧고 쉽게 얘기했지만 그가 신문사와의 한 인터뷰에서 업그레이드된 대답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의 도예는 잃어버린 예술 중 하나다. 잠재되어 있는 가치가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줘야 했다. 인디헤나1)들의 몰살2)과 함께 고유한 도예도 사라져버렸다. 도예는 그들과 시대를 같이한 예술이다. 창조적 능력이 없는 도예는 바보나 다름없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이곳에 왔고, 오랜 시간 끈질기게 매만졌을 고집과 수고, 거기에 녹아 있는 진정성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아르헨티나와 도미니카공화국의 도예는 영향의 근원부터 달랐다. 아르헨티나의 도예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전통 인디헤나들의 방식으로 장식기법이나 번조기술 일부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활용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20세기 초중반의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유럽인들의 대거 이민으로 영향을 받은 것.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이주민들의 영향은 없었으나 인디헤나들의 문화는 파괴되었으며 오직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실용도기만 존재하고 있다. 60년대에 지우데셀리 폴Giudeceli Paul은 예술로써의 수준높은 도예를 시작했지만 이어지지 못하고 위기존폐에 놓이며 점차 사라져갔다. 지금은 소수의 도예가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에게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었을 때 인디헤나들을 우선순위로 들었다. 인디헤나들은 탁월한 테크닉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삶과 종교적인 믿음을 나타냈고 독창성과 창조성이 유일했던 시기였다. 한 멕시칸 작가이자 시인이 “정복 후 본래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No hay nada original despues de la conquista”고 말한 것처럼 그는 콜롬부스의 신대륙발견 이전precolombinos의 인디헤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닌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단다. 예외없이.
현실의 비애와 희망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은 작가다운 도예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의 배고픈 일이 될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타협점을 찾았던 것이 아티스트가 아닌 직업작가. 방법(분야)은 달라도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머릿속에 그득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예술에 종사하는 작가들, 일반적으로 그래픽 아티스트, 화가, 건축가 등이 많아지고 있고 실제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도 않았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예술을 하고 있다. 존 까리다드John Caridad, 루이스 피멘텔Luis Pimentel, 라파엘 세풀베다Rafael Seulveda, 티모 피멘텔Timo Pimentel은 훌륭한 도예가들이 있지만 종사자가 적다는 건 유감스러울 뿐이다.” 손에 꼽는 작가들만 봐도 꽤 고달프게 흙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0년대에 ‘국내도예 전람회Salon Nacional De Ceramica’가 개최되었지만 두 번 열리고 폐막되었고 이후에 회화, 조각 등 예술전분야를 취급하는 비엔날레에 참여하며 활동을 근근히 이어왔다. 또한 대외적으로 쿠바Cuba, 푸에르또 리코Puerto Rico 등 인근국가에서 열리는 국제페어에도 참여하고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한때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도예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평가절하 되어서가 아니라 팍팍한 현실이 녹록하지 만은 않은 것이다. 인력을 양성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사부족과 그에 따른 디자인의 낙후, 전통도자 부재, 유약 산화물 안료 등의 원자재 부족미국에서 전적으로 수입하고 있으며 높은 세율로 고가에 값이 매겨지고 있다 등은 또 다른 결핍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또한 마켓시장은 커녕 도예가나 예술가들을 장려할 박람회나 페어 같은 문화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니 그야말로 기운이 쭉 빠지고 할 맛나지 않은 상황들인게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3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