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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월호 | 해외 ]

서양문화에서 공예와 제품의 위기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2:56:09
  • 수정 2016-03-26 17: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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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_ 하워드 리사티Howard Risatti 미술공예비평가
  • 번역_ 최석진 미국리포터

교육자이며 미술공예 비평가인 하워드 리사티의 저서 『공예의 이론: 기능과 심미적 표현 A Theory of Craft; Function and Aesthetic Expression』이 지난 2007년 가을에 출간되었다. 리사티 박사는 삼십 여 년 간 교육과 미술 현장에서 겪어온 ‘공예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이론적 사색을 책 속에 담아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예의 사회적 경계들과 공간성 그리고 일시성을 넘어선, 인간 가치를 표현하는 능력과 결합된 공예의 독특한 기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순수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공예의 실제적 구분을 기술하는 정규 이론저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즈음 그의 글은 매우 선명하게 독자의 시야를 밝혀준다. 본지에 게재된 글은 2009년 새해를 맞아 리사티 박사가 한국의 월간도예에 보낸 특별 기고문을 번역한 것이다.

서양에서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유럽대륙으로 그 후 미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것은 많은 혜택을 가져왔는데 특히, 서유럽과 북미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의 물질적인 삶의 향상에 뚜렷하게 기여했다. 대부분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이 변화들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견해와 가치구조에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논의들이지만, 필자는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근래의 몇십 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나타난 기계적 생산의 결과로써 변화에 대한 한 측면 즉, ‘만드는 것’에 대한 태도 변화를 간략하게 논의 하고자 한다. 특히 손의 활동으로서 ‘만드는 것’과 자동화된 기계의 과정으로서의 ‘만드는 것’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영어권 나라들에서 표현하는 공예품craft objects과 디자인제품design objects 즉, 기능을 가진 어떤 것을 만드는 이 두 가지를 논하고자 한다.
공예와 디자인제품은 모두 기능성을 수반하며 또한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같은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문화적 제도나 어떤 사회 구성의 바깥에 존재하는 관습이다. 예를 들어, 손으로 만들었든 기계로 만들었든 용기는 무엇을 담기 위해 어떤 물리적 형태를 가져야 하는데, 이 기본적 구조에서의 형태는 제작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관습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어떤 특별한 형태만이 용기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신석기 시대의 매장용 용기에서 미국의 현대 도예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용기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왜 모두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사진1, 2)
산업혁명 이전 모든 제품들이 수공으로 만들어 졌을 때 어떤 것을 만드는 능력이나 기술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재료와 기능성, 인간의 손 또한 창조적 상상력 사이에서의 상관관계를 볼 때 전체 혹은 대부분의 제품들이 그 시대적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주위에 둘러싼 모든 제품들이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만든 사람의 손과 제품 그리고 사용자 사이에서의 불협화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이 산업혁명과 함께 극적으로 변모해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19세기 말 영국에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예술 공예 운동Art and Craft Movement같이 이것의 사회적 결과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들은 능숙한 숙련가의 손이나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산업적 기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그 결과로, 기술이나 인간의 노동력에 의한 활동으로 ‘만드는 것’을 포함하는 사회적 의미가 생산품의 가치나 수공으로 평가절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경우 보통 손으로 만든 공예품의 경우를 말한다. 영국과 캐나다 그리고 미국과 같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이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공예와 디자인 그리고 순수조각예술의 경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쟁하여 왔다.
필자가 가진 의문은 공예는 순수예술이나 디자인만큼 좋지 않으며, 공예는 순수 예술만큼 높은 위치가 아니고 단지 기능적인 제품을 만드는 한 방법일 뿐으로 순수예술 혹은 디자인과는 경쟁할 수 없다는 깊은 잠재의식 속의 사고 때문에서 생겨났다.
필자의 저서 『공예의 이론』에서 말했듯이 공예는 순수조각예술이나 디자인과는 다르고, 그것 자체로서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하며 필수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예는 순수조각예술이나 디자인이 담당하는 것과는 달리, 세상과 또 다른 이해와 가치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예, 순수 조각, 디자인을 서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본다.
공예와 순수예술의 구별은 사물과 이미지를 구별하는 문제이다. 사람들이 논쟁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이 만들어지는 재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재료로 인간의 발처럼 보이는 형태를 만들었더라도 재료가 돌이든 점토든 그것은 실제의 발이 아니고 삼차원적 발의 이미지일 뿐이다.(사진3-1, 3-2) 또한, 재료가 그 작품이 공예품인가 조각품인가를 결정하지는 않으며 다만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을 결정한다.(사진4) 다시말해 돌로 만든 옹기든 점토로 만든 옹기든, 모두가 하나의 용기이며 그 어느 것도 조각이 아니다. (사진5)
공예와 디자인 사이에 경계선을 없애려는 생각을 할 때, 격이 낮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이에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이것은 디자인이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현대적인 아이디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공예가 하지 못하는 초현대적이고 가장 최근의 현재를 표현하는 것같이 보여진다.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공예는 진부한 활동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회화라는 순수예술도 또한 오래된 구식의 창작 활동인데, 단지 극소수사람들 만이 시대에 뒤지며 낡은 방법이라는 이유로써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기 때문에 공예에 대해 이같이 논쟁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사진6)
수공예와 디자인에 대한 의문을 논의하기에 앞서, 필자가 말하는 ‘디자인과 디자이너’ 그리고 ‘수공예와 수공예품’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이너란 연필이나 종이 또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기능적인 제품의 이미지를 만드는 전문가이다. 이 이미지가 디자인이라고 불리며,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기계에 프로그램화 시키는 세트로서의 역할을 한다. 전자동 기계 작업과정에서 수작업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손이 부분을 만들지는 않지만 손으로 제조된 부분들을 조립(나사를 조이고, 용접하고 하는 등)할 수는 있다.(사진7) 
공예는 이와 대조적이다. 수공예품은 공예가나 숙련된 여성들의 능숙한 기술로 직접 재료로 모양을 만든 결과이다. 이것이 수공예 기술자나 숙련된 여성으로부터 상상력과 능숙한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재료들 사이에서의 ‘주고받음’인데 바로 이 점이 수공예의 중요한 면이며 수공예 기술의 핵심이다.(사진8)
손으로부터 재료가 제조자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어떤 형태로 될 때 재료는 고유한 물리적 특성 때문에 저항하고 밀어낸다. 디자인은 손과 재료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 사이에 ‘주고 받음’이 없는데 그 이유는 디자인 과정에는 제품의 모양의 형성과 제품의 실제 제조 사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언급했듯이, 디자인 과정에서 형태는 드로잉에 의해 형성이 되지만 제조는 이것과 분리되어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디자이너로서의 문제는 기계에 의해 실제로 만들어지는 제품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내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계이고 재료로 직접 작업하는 것은 손이 아닌 것이다.
(다음 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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