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영원한 노스탤지어, 어머니를 닮은 달과 제주 바다
고용석의 달항아리와 제주 바다
글. 김진아 학예사, 한향림옹기박물관 전시팀장
“설레는 대학 생활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떠나는 날, 부모님, 특히 어머니를 떠나 타지로 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애틋한 아쉬움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바다는 한없이 맑고 청량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의 바다는 깊은 그리움으로 남았고, 그것을 백자로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 고용석의 인터뷰 내용 발췌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달항아리’는 백자 중에서도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예술품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사학자인 최순우(1916~1984)의 수필이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의 그림 등에서도 달항아리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의 달항아리는 과거의 문화유산에 대한 아름다움의 동경이나 재현이 아니라, 달항아리로 상징되는 한국적 이미지와 개인적인 정서의 표현이다.
그러나 고용석은 최근 4~5년 동안 달항아리가 상징하는 그 어떤 이미지나 정서보다도 달항아리의 성형 방법에 대해 천착하며 백자의 형태와 그 한계성에 도전해왔다. 달항아리는 조선의 백자 중에서도 가장 큰 크기의 항아리로, 두 개의 커다란 사발을 합하여 만드는 고난도 제작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그에게 있어 이런 달항아리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모든 작업의 원천이다. 단순한 유물의 재현보다는 만드는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둠으로써, 창작을 위한 자기 수련의 방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석의 이러한 신념과 제작 태도는 많은 양의 달항아리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4~5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고용석에게 달항아리는 그가 추구하는 궁극의 결과물이 아니라 작업의 시작점이자 과정이다. 2007년, 첫 번째 개인전의 주제였던 ‘결합’은 그가 달항아리의 제작과정에 대해 숙고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이후 달항아리의 제작은 수양 및 수련의 목적과 함께 자신의 모든 백자 작품의 영감을 주는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고 한다. 2017년의 개인전 <단상>에서 선보인, 접시를 앞뒤로 붙여 만든 형태의 작업 역시 달항아리의 성형 방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이 전시 이후 본격적으로 고용석은 그의 삶과 ‘결합’이라는 달항아리의 성형과정 및 형태, 의미 등을 연결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이 제작한 달항아리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고용석에게 달항아리는 작업의 동기이자 자신을 다스리는 일련의 수련 과정이기 때문에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달항아리의 형태는 계속 변해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둘이 만나 하나가 된 부부처럼 잘 붙어있다가도 서로 맞지 않아 찌그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철이 튀어 자국이 남는 등 여전히 거친 느낌을 추구하던 시기를 지나, 올해 제주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선보인 달항아리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관념이 반영되면서 이전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10년이 넘는 수련 시간과 하나하나 깨닫는 인생의 경험들이 함께 내재 되어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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