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작가
미래 유물을 만드는 현대미술가
유의정
글. 서희영 객원 에디터 사진. 작가 제공
도자기는 쓰임을 위해 발생해 그 기술과 영역을 확장해 왔다. 기器의 형태는 쓰임을 위한 형태이지만 장식을 더하고 아름답게 다듬어 보기 좋게 발전시켜온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조형물이다. 이렇게 보면 도자를 기器와 조형으로 나누는 게 모호해진다. 애매한 가운데서도 애써 전통도예와 현대도예, 실용도자와 조형도자,
다시 기器와 도조 등으로 구분 지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유의정 작가는 이런 경계 짓기 속에 과감한 시도로 속시원한 분탕질을 보여준다.
시대가 담긴 유물 도자기
유의정 작가의 오랜 작업은 끊임없이 ‘그러므로 도자기...’로 회기했다. 유년시절부터 박물관 도자기를 바라보며 남다른 동경을 키웠던 그는 자연스럽게 도예과에 진학했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도자역사의 장구한 레퍼런스는 그 다양한 기법들과 시 대를 투영한 미감으로 끊임없는 탐구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도예과 재학 당시 조형도 자의 주류 속에서 무언가 형상을 만드는 조형작품이 왜 도자기의 형태면 안 되는 가 하 는 지점에 이른다. ‘그러므로 도자기’ 형태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해 여러 형태의 도 자기들 항아리, 접시, 사발 등을 쌓아 새로운 형태의 조형을 만들었다. 여기에 동서고금 을 넘나드는 문화의 상징물들을 장식으로 사용했다. 호메로스의 시와 흉상이 등장하기 도 하고, 에미넴의 노래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의정 작가의 작품은 현시대를 반영 하는 도자기로 근대 이후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많은 상업제품과 그 로고를 시 대의 상징으로 이용한다. “도자기는 오랜 역사속에서 늘 그 시대를 반영해 왔다. 현대 의 도자기는 현대를 반영하고 내 작품은 현대의 아이콘들을 담는다.” 때로는 기법과 문 양이름을 넣어 OOO자OO호 라고 이름 붙여지는 박물관 도자항아리의 형태에 미키마 우스나 하트무늬를 넣어 장식하기도 하고, 권위와 부귀영화 다산의 기원을 담아 장식 했던 옛도자기의 형태에 현대인의 욕망이 담긴 문구나 기업로고들을 채워 넣는다. 플 라스틱 제품을 캐스팅한 청자는 표면장식에 그치지 않고 현대의 조형을 도자기의 물성 으로 재창작 해낸다. 지금을 대변하고 있는 산업의 이미지들은 당대의 모습이, 타입캡 슐처럼 보존된 박물관 도자기처럼, 훗날 이 시대를 담아 전해질 것이다. 그는 “도자의 형상안에 담긴 이미지와 그 안에 들어가는 의미를 탐구한다. ”고 말한다.
형태로서의 도자기, 물질로서의 도자기
유의정 작가는 표현 매체로 ‘도자기’를 활용한다. ‘도자기’ 라는 말은 때로 흙으로 빚어 유약을 입히고 고온으로 소 성한 물질을 지칭하기도 하고, 달항아리나 매병, 주병의 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기의 형태를 갖던 그렇지 않던 소 재를 지칭하기 위해 도자기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도자기 형태와 실체가 있는 그 도 자기를 말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도자기’는 유의정 작가 에게 예술을 지속하는 창작욕과 아이디어의 원천이며, 시각예술의 표현방법이자 완성된 그의 작품이 된다. 그 럼에도 청자작가나 백자작가가, 분청작가가 아닌 예술가 유의정은 다양한 태토의 항아리를 빚고 상감을 하고, 화 장토로 장식하고, 전통안료로 그림을 그리며 때로 캐스 팅한 형태를 조합하기도 한다. 전통유약은 물론 색유, 상 회안료도 사용하고 때로 사진을 이용한 전사작업도 한 다. 다양한 기법을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작업 방향성 을 장인의 경지에 두지 않고, 표현매체로서 도자 활용하 기에 두었기에 자유롭다. 유의정 작가는 분화된 장인처 럼 기법의 완성을 추구하기 보다 도자기를 매체로 활용 하는 예술가로서 모든 과정을 예술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활용한다.
“도자의 프로세스가 작품안에 담기길 바란다. 작업과정에서 도자의 재료들과 고온으로 소성됐을 때 물질이 변화되는 현상에 시각적 의미를 담아 작업한다.”
그의 작품 청화백자용문대호, 청화백자송죽문대호는 아 마도 용그림이거나 소나무와 대나무 그림이었을 코발트 화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유약과 함께 흘러내린 안료는 도자기 아랫쪽으로 갈 수록 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 형돼 맑은 유약속에 섞여 있다. 그리고 코발트가 녹아 든 맑은 유약은 다시 매트한 색유 위에 맺혀 있다. 가마안에 서 흘러내리도록 고온으로 소성하며 애써 그린 그림이 흘러내린 이미지를 만들게 의도한다. 그림을 그리는 과 정 뿐 아니라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반복해서 소성하는 것은 화폭위의 그림을 손질하듯 예술의 과정이 된다. 페인트통을 매달아 물감을 뿌리고, 날리는 추상화 처럼 그의 도자기도 작가가 온전히 관여하지 못한 그림 을 입었다.
현대미술로서의 도자작업
유의정 작가의 작업은 도자기의 물성을 활용해 자유롭게 성형하고, 수많은 장식기법을 활용해 이 시대를 표현한 다. 유의정 작가의 최근작들을 지난 달 열린 <2021아트 부산>에서 만났다. 청화백자죽문호, 철화백자포도문호 는 전통도자기의 형태와 문양을 어떤 매체보다 적극적으 로 현대미술에 끌어들였고, 아크릴컬러처럼 화사하지만 가마에서 완성된 색유를 입고 반전매력을 뽐낸다. 이 이 질적인 색의 대립 혹은 질감의 대립은 하나의 도자기위 에 두개의 조형 혹은 두개의 화면을 만들며 호기심을 자 아낸다. 한국도자기에 자주 등장하는 용그림이 있는 항 아리들은 무슨무슨용문호라는 등의 이름으로 용이 그 완 성된 도자기에서 주인공이 되곤 하는데, 유의정 작가의 도자기 속 용그림은 크로마키 컬러를 입고 있다. “용이 의미하는 상징들을 소거해 전통도자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 다. 2020년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용모양의 크로마키 위에 어떤 욕망을 투영할까?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계는 도자, 나전, 누비 같은 전통공예를 접목한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특 히 인기있는 소재는 전통도자기다. <2021 아트부산> 에서도 달항아리나 청화백자가 회화, 사진으로 그 형태 가 재생산되고 있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창작자에게 도자 는 무척 매력적인 매체로 종종 기법적인 시도로 확대를 요원하게 된다. 하지만 도자기는 그저 하나의 기법으로 접근하기에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고 과정마다 고도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기술의 집합체인 물질로써 도자기 는 호기심만으로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20여년간 도자기법을 탐구하고 현대를 반영하는 도자기를 고민한 그의 작업이 독보적인 이유다. 그가 밝 혔듯이 그는 도자를 매체로 작업하고 있는 현대작가 유 의정이다. “도자 이미지의 재생산은 긍정적으로 보면 양 적팽창이다. 궁극적으로 도자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높 아질 것이다. 이렇게 도자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분 위기가 도자기의 본질로 회기한 내 작업과정에 자신감을 더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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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