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도예가 김혜정
자기 안의 생
글.박진영 객원에디터 사진.문성진
‘그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작업을 해왔고 그때마다 매우 다른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제 보니 ‘나’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일맥상통한다는 거예요. 그릇을 찢든 안 찢든 본질은 같아요. 작업에 굳이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내가 담기는 것처럼.’
작가 생활한 지 20년이 되는 올해, 도예가 김혜정은 작가로서 ‘성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야 일인칭의 작가가 돼서 누가 봐도 ‘김혜정’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그릇을 만들게 되었다고. “대부분의 공예가는 작업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는 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 작업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도 하고요. 오히려 작업에 나를 담 으려는 생각을 버릴 때 비로서 사물이 힘을 발휘하고 여기서부터 ‘작가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공예는 시간이 걸리는 장르이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시간을 꼭 거쳐야 한다. 도예가 김혜정에게는 “마치 바다에서 호흡법과 헤엄치는 법을 익혀 자유롭게 놀듯이 물레에 몸이 완전히 들어가” 원하는 그릇을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레 앞에 앉으면 잡생각이나 복잡한 일상이 다 잊혀지고 몰입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물레 차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학생 때에는 몸이 지금보다 더 불편했거든요. 물레로 정말 동그랗고 예쁜 그릇을 만들고 싶은데 내가 만든 건 뭔가 삐딱해서 늘 속상했죠.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놓지 않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화여대 도예과에서 학부 4년 을 마치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에 도 “머리에는 학사모를 썼는데 손은 어설픈 걸 내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컵 하나 제대로 만들어서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막막함을 느꼈죠.” 그는 나이 서른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물레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영국 서부의 슈롭셔 Shropshire 공방 레지던시에서 3년의 수련기를 가졌다.
그가 물레로 만들려고 한, 삐딱하지 않은 ‘온전한 기 器 ’는 좌 우대칭이 아니라 중심이 맞는 것’을 의미한다. 물레 위에 흙 덩어리를 올려놓고 중심을 맞춰 돌렸을 때 얻어지는 안정된 형태. 일그러져도 아름다운 달항아리처럼. “20년간 물레의 중심만 바라보고 나머지는 다 빼는 연습만 해온 것 같아요. 그렇게 조형적으로나 장식적으로 군더더기를 빼 는 방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도자기가 어느덧 얇아지고 가 벼워졌는데 어느 날 굽을 깎으려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그 릇이 손 모양대로 휘더라고요. 처음에는 다시 모양을 잡으 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이 그릇들이 이렇게 스스로의 무게감에 의해 움직이려고 하는데 굳이 똑바로 맞출 필요가 있 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각기 자유로운 형태로 앉 아 있는 모습이 ‘나’라는 나무에 열린 열매처럼 보였어요. 마치 그릇들이 ‘나’를 닮은 유전자를 자생적으로 형성해 갖 게된 것 같았어요.” 14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2006년 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잡은 지금의 구기동 작업실에서 이렇게 ‘열매’ 같은 그릇 시리즈가 탄생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글씨체가 있듯이 나만의 ‘물레체’가 있음을 비로 소 알게 된 거죠.”
김혜정의 ‘물레체’를 발견해온 도예의 시간들
손에서 우연히 나온 ‘열매’ 같은 형태에 작가는 좀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더해갔다. 매끈한 그릇 기벽을 손으로 찢고 꼬고 비틀어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 “그 당시 마침 일본에 서 열게 될 전시를 준비하던 중에 이런 행위를 의미하는 언어를 찾고 전시 제목에 반영했어요. ‘nejire捻れ, yojire 捩れ, mekure捲れ’라고 ‘비틀다, 꼬다, 넘기다’라는 뜻인데 한자가 다 ‘손수변 扌’에 ‘생각할 염念’의 의미가 붙는 식이에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릇을 비틀고 꼬고 하는 것은 그 냥 형태를 변형하거나 장식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도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진행하던 일종의 ‘몸부림’이었어요. 평소에 머리보다는 ‘손으로 생각’하고 흙에서 주로 마음의 위안을 찾던 터라 결국 이 모든 것이 나의 삶과 흙에 관한 이야기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2010년 이 전시를 하고 다음 해에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났다. 일본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작가가 돼서도 그곳을 오가며 활동한 그에게 이 일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업이 손에 안 잡히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 들었어요. 물레에 앉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작업을 하면서 나 또한 가담하게 되는 삶의 모순들이 참 답답했어요. 그러던 중에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느닷없이 생각났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섬에 사는 어민들이 일 년에 딱 한 번 산란기 때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데 창도 배도 없이 식물의 잎으로 만든 그물만 손에 들고 일렬로 서서 바다 깊이 들어가는 거에요. 어느 지점까지 갔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육지로 돌아오면 그물에 물고기들이 가득하죠. 정말 원시적이지만 풍요로운 장면이었어요. 우리는 지금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짧은 시각에서의풍요로움만 추구하며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는데, 그들은 그 어설픈 그물로 잡은 물고기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잖아요.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삶이지만 좀 더 크게 보면 자연의 순리에 맞는 방식이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공예도 마찬가지죠. 그 그물의 이미지가 어떤 메시지를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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