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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월호 | 작가 리뷰 ]

김미규 ‘흙’이란 장르 속 다양한 조형 세계
  • 이민희 기자
  • 등록 2025-09-02 12: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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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던 열 일곱 소년은 공예학교를 입학해 도예를 처음 접하고, 대학에 입학해 재료를 연구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며 흑자를 선보이고, 인체, 나무, 바퀴 등 여러 조형 요소들을 접목시킨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분청으로 제작한 솟대와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백자까지. 김미규 작가의 도예 여정을 들여다보면 무한하게 확장되는 그의 창작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제한도 한계도 없는 그의 작품 세계는 ‘흙’이라는 장르 속에서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분청각형 분과 받침」 20.5×20.5×21.5cm | 

산청토, 옹기토, 티탄유, 1250°c 환원염소성 | 2004


탄탄한 기능과 기술이 더해진 도예

목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드는 것에 익숙했던 작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공예학교에 진학하며 일찍이 도자기를 접했다. 부산공예학교는 예술과 기술을 접목하는 독일의 바우하우스를 도입해 설립한 실습 위주의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였다. 신입생 때 가마 속 내화판을 만드는 등 허 드렛일을 하면서도 선배들 어깨너머로 배우는 작업이 신기했고, 학교 장작 가마에 불을 때면 순번을 정해 밤새 지키는 것도 재미있기만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는 학교 생활은 작가에게 도자기에 대한 흥미와 능력을 동시에 키워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도자기공예기능사 자격 증을 따기도 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서울로 현장 실습을 가 김익영 교수를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요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김익영 교수의 영향이 컸다. 도자기는 기술과 디자인의 만남이라고 강조했던 김익영 교수의 배움 아래 공과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지만 준비 과정 은 녹록지 않았다. 실기 위주의 학교였던 공예학교 특성상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예비고사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 실습도 그만두고 독서실에서 뒤늦은 학업에 매진해 국립경상대학교 요업공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경남 하동에 도자기의 원료로 쓰이는 고령토가 많이 생산되어 때마침 국립경상대학교에 지역 특성화 학과로 요업공학과가 생기는 운도 더해졌다. 하지만 물리와 열역학 등 공과대학의 수업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작가는 미술교육과의 서양미술사, 조소 등의 수업으로 졸업 학점을 채웠다. 그렇게 학기 중에는 진주에서 수업을 듣고, 방학에는 서울에 올라와 김익영 교수의 작업실에서 일하며 대학 생활을 했다. 도자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가득했던 작가의 10대와 20대는 끊임없는 배움과 쉬지 않는 작업으로 기능과 기술을 한층 더 탄탄히 하는 시기가 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 김미규의 새로운 챕터를 열기 위한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백자 바보 반상기」 백자토, 옹기토소분, 백유, 1250°c 환원염소성 | 1998


남들과 다른 디자인, 생활 도자에 예술을 얹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에 선배가 소개해 준 연희동 공방을 인계 받아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선배가 연결해 준 그릇상에서 커피잔 의뢰가 들어왔는데, 평범하지 않은 독창적인 디자인을 고민하다 손잡이가 사람의 형상을 띤 커피잔을 만들었다. 철유를 바른 인체 커피잔은 소위 대박이 났다. 당시 거래처 중 하나였던 부산의 간판 백화점인 태화쇼핑에서는 매장에 상품을 풀자마자 동이 날 정도로 잘 팔렸다. 인체 커피잔은 특히 가을에 더 잘 팔렸고 10년 동안 작가의 효자 상품이 되어줬다. 그렇게 점차 가짓수를 늘려가고 공방도 일산으로 옮겨 작업을 이어 갔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디자인의 작품들은 반응이 좋았고, 작가의 작품을 따라 하는 상품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물레로 생활 도자를 만들던 작가의 작품 경향은 숙명여대 도예연구원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새로움을 맞는다. 당시 90년대 대학에서는 조합토를 사용해 조형 도자 작품 위주의 교육을 많이 진행했다. 대학에서 물레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작가는 숙대 도예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소지와 소성 방법을 달리 하면서 변화를 추구하고 물레 성형을 이용해 형태를 변화시키거나, 실험에 따른 재료 활용의 다양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한 가지 주제를 설정해 여러 조형 요소들을 접목시켜 내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업들도 꾸준히 했다. 작가에게 첫 성공을 가져다준 커피잔의 손잡이에 이어 작가의 조형 작품에서도 인체를 형상화 한 모습을 꾸준히 발견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인간이 추구하는 삶과 미래,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지닌 의미를 작품에 투영했다. 생활 도자를 만들 때에도 조형 도자를 만들 때에도 평범함을 거부했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 속에 작가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내면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업을 할 때도,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늘 하고 싶은 디자인을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남과 다른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예순이 넘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면각화 화기」19x19x28.6cm | 화기, 흑토, 투명유, 그라인딩, 1200°c 산화염소성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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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미규는 도예를 기능, 기술, 예술로 나누어 기능은 부산공예학교(現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에서 기술은 경상대학교 요업공학과에서 예술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숙명여대 도예연구원과 강사, 동덕여대 공예과 강사를 했으며 현재는 김익영도자예술에 근무하며 토우도예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도예입문 50년으로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만든다”라는 명제를 두고 꾸준히 실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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