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의 여정은 흙에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흙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고, 불은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도공은 이 두 원소를 매개로, 물질의 세계를 넘어선 정신의 세계를 빚는다.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김윤선 작가는 그러한 물성과 정신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미학을 구축해 온 도예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선 존재의 은유이며, ‘얼굴’과 ‘달’이라는 상징적 모티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재, 감성과 이성을 아우른다.

「대합창」 240×240cm | 백토, 흑토, 유리, 환원소성 | 2012
1. 얼굴, 감정의 물성화 ― 현대적 초상 도자의 미학
김윤선 작가가 꾸준히 천착해 온 주제는 ‘얼굴’이다. 이는 단지 인물의 표정을 담는 전통적 초상 조각과는 다른 지점에 있다. 그의 얼굴은 대체로 비정형적이다. 웃고 울고 일그러진 얼굴들은 그 자체로 감정의 파동을 담고, 인간 내면의 심상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한편으로는 원시적 토템을 연상시키는 그의 조형은, 인간 존재에 내재한 본능과 무의식을 표출하는 기이한 생명력을 띤다.
김윤선은 회화적 감각을 도예적 조형에 이식한 점에서 주목된다. 점토를 선처럼 자르고 도판 위에 드로잉 하듯 구성하며, 색유리·철사·화장토 등의 비정형 재료를 활용해 물질감과 시각적 텍스처를 강조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도자 조형의 경직된 틀을 넘어, 표현 매체로서의 도예 가능성을 확장한다. 그에게 도자기는 단순히 불에 구워낸 ‘그릇’이 아닌, 감정과 시간을 담는 하나의 캔버스이며, 조형적 언어이다.
작가의 작업은 종종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의 말처럼 “내 얼굴은 촌놈”이라는 고백은 단순한 자기 풍자가 아니라, 도시 중심의 미적 기준에 대한 저항이자, 소외된 감정의 복원을 지향한다. 비대칭, 일그러짐, 균열 등은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수용하는 작가의 시선이며, 이는 전통 도자기의 ‘완벽함’과는 다른 방향의 진정성을 품고 있다.

「얼굴」 35×60cm | 조형토, 화장토, 라쿠소성 | 2012
2. 달항아리, 백자의 재구성 ―시간성과 우연성의 조형
조선백자의 정수로 불리는 달항아리는 고유의 비례미와 상징성을 통해 한국 도자의 미감을 대표한다. 그러나 김윤선은 이 전통적 형태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달항아리의 본질을 현대적 감수성과 조형의 실험을 통해 새롭게 정의 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의 계승이라 기보다, 그것에 대한 비평적 응답에 가깝다. 그의 달항아리는 백자의 광택이나 대칭성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대신, 거칠고 무심한 표면과 불균형한 형태, 다양한 자연물의 재료가 주는 예측 불가능한 질감이 그의 달 항아리를 채운다. 그는 점토의 밀도를 자연 소재로 조정하고, 유약과 안료의 조합도 철저히 즉흥적이다. 장작가마와 라쿠가마라는 전통적 번조 방식의 활용은, 작가의 조형 언어에서 중요한 우연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조형적 실험을 넘어서, ‘달’이라는 존재가 지닌 상징성과 감정성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그의 달항아리는 고요하고 평온한 달밤의 형상이자, 삶의 균열과 회복을 상기시키는 기억의 그릇이다. 백자의 미감이 정제된 질서와 이상을 품고 있었다면, 그의 백자는 생의 흔적과 감각, 시 간의 층위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 달항아리」 15×15cm | 색소지, 화장토, 환원소성 | 2020
3. 도공의 존재론 ―무계획의 직관과 존재의 흔적
김윤선 작가의 작업에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재료와 불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며 작업을 직관에 맡긴다. 이는 도공으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며, 현대 예술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장인정신’과도 통한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던 흙의 감각은, 그의 예술적 기원으로 작용한다. 대학에서 도예를 접하고 목공예와 조형에 관심을 가지던 그는, 흙의 무한한 가능성에 매혹되며 본격적인 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교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병행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흙과 불을 탐구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우연성’은 핵심 개념이다. 계획되지 않은 질감, 예측 불허의 번조 결과, 실험적인 재료 조합은 도자예술에 있어서의 개입과 자율성 사이의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서툴고 부족한 작업일수록 더 애착이 간다”는 고백은, 결핍의 미학을 추구하는 동시대 예술가로서의 존재론적 사유를 반영한다.

「얼굴」 40×25cm | 백토, 환원소성 | 2022
------------------------------------------------------------------------------------------------------------------
작가 김윤선(b.1962)은 강원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1988)한 후,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1994)를, 1998년 국민대학교에서 공예미술학 석사를 취득했다. 서울과 춘천에서 9회의 개인전을 열며 흙과 불을 매개로 우연성에 기반한 도예 작업을 이어왔다. 현재 강원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창작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사진. 작가 제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8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모든 과월호 PDF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