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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월호 | 특집 ]

[특집] 치유로서의 흙_Ⅲ. 흙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매체이다
  • 편집부
  • 등록 2022-10-04 15:47:23
  • 수정 2022-10-04 15: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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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SPECIAL FEATURE]

치유로서의 흙

 

Ⅲ. 흙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매체이다

글. 임명선 미술치료사

 

코로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들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기술이 채워 주지 못하는 정서적 결핍의 시대가 되었다. 언제부턴가 치료, 치유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힘들고 우울한 일이 많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람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심리장애를 유발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정신건강에 관한 교육이나 상담을 필요로 하는 복지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로 인해 창조적 치유 활동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상승하고 다양한 치유 활동들이 등장하고 있다.
힘든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많은 어려움 속에 처해있다. 이러한 아동들에게 예술적 활동은 효과적인 치유방법이다. 예술 활동은 언어적 표현이 부족한 아동들이 자유롭게 내면세계를 표출할 수 있으며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치료적인 효과가 있다. 즐거운 활동의 긍정 경험으로 부정적 생각이 감소하면서 긍정 정서가 향상되도록 도와준다. 예술 활동의   다양한 매체 중에서 특히 점토는 재료가 주는 부드러운 유연성과 촉감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매체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유로운 표현으로 자기 조절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이겨내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의미로 치유적인 예술 활동과 흙(점토)의 효과에 관해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례 1.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7세 남아, 생전 처음 만져보는 흙에 대한 반응.

흙은 ‘처음 만져보는 것’이라며 “엄마가 놀이터 흙은 개똥이랑 고양이 똥이 있어서 만지면 안된다고 했어요.”라고 말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옷에 묻을 까봐 조금 걱정하더니 천천히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요.”라고 신기해하였다. 마음껏 활동하도록 치료사가 격려하니 잠시 주춤하다가 활동을 시작했다. ‘자동차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며 점토를 빚어 자동차를 만들고 커다란 피자를 만들었다. 점토를 피자 칼로 잘라 보고 만지고 주무르며 처음에 조심스러워하던 모습과 달리 매체에 익숙해지니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평소 가정에서 청결에 관해 철저한 교육을 받은 아동이 활동 시에는 즐거워했지만, 손에 묻고 옷에 묻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워했다. 강박적으로 청결을 의식하는 아동에게 점토 활동은 억압된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여 진다.

사례 2.
분리불안, 심각한 저장강박 증세를 보이던 7세 남아.

동생 출생 이후 계속 불안정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다가 유치원에서 친구에게 맞은 후 갑자기 엄마와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소변을 자주 보는 등 심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여 미술 치료를 실시하게 되었다.
신청 당시 분리불안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가족들이 고통 받고 있는 문제는 2년 이상 지속된 아동의 ‘쓰레기 모으기 행위’였다. 간식 봉지, 나무젓가락 껍데기 등 사소하고 불필요한 쓰레기들이 쌓이게 되었는데 버리려고 해도 발작적으로 쓰레기를 사수하는 아이 때문에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유치원 사물함에 넣어 둔 외투를 쓰레기와 뒤섞여 찾지 못하고 집에 그냥 오기도 할 정도였는데, 아동의 방도 쓰레기와 비닐봉지로 가득해 온 가족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가족들이 동생만 사랑한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받고 싶은 사랑 대신 차곡차곡 쓰레기를 모으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경우로 애착의 문제가 저장 강박으로 까지 이어진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동의 정서 안정을 위해 엄마와 함께하는 즐거운 미술 활동을 하는 동안 가정에서는 지나치게 엄한훈육과 일관성 없는 양육방식을 조율하도록 하였다. 엄마와 미술 활동을 함께하면서 관계가 개선이 되고 분리불안도 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동이 치료사를 신뢰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쓰레기가 쌓이면 왜 안 좋은지’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니, 아동이 거짓말처럼 쓰레기를 모두 버리게 되었 다. 이후 지속적인 활동으로 분리불안도 완화되었다. 현재는 분리불안도 사라지고 아동이 미처 버리지 못한 쓰레기를 보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어쩌지?”라고 말하니, “그걸 안 버리면 뭘 할라고?”라고 툭 던지듯 말을 해서
‘온가족이 빵 터졌다’고 어머니가 후기를 전해왔다.
즐거운 활동의 긍정경험으로 아동의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여유롭게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며 예술 활동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례 3.
반응성 애착 장애 소견을 보이는 7세 남아. 흙을 통한 활동으로 카타르시스를 경험.

충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어린이집에서 퇴소 당하고 나서 코로나로 인해 행동 제약을 받으며 문제가 악화되었다. 수시로 분노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행동을 보여 가족들과도 잦은 마찰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미술활동을 병행한 상담을 실시하였다. 부모의 성향이 공감부족, 지시적, 강압적 양육 배경을 가지고 있어 경직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하는 미술 놀이, 가정에서 부모 자녀 간 부드러운 신체접촉과 활동을 증가하고 아버지의 양육 참여를 독려하였다. 아동이 초기에는 수시로 화를 냈는데 화를 내면 재미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화를 낼수록 상황이 더 악화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감정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미술 놀이 활동이 큰 역할을 차지하였다.
이 아동은 특히, 점토 활동에서 눈에 띄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동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점토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살짝 만져 보고나서 점토가 손에 묻자 큰소리로 “이거 뭐예요? 손에 묻으니까 손에서 가루가 막 생겨요.” 라며 당황하였다. 치료사가 흙은 원래 손이나 옷에 묻을 수 있지만 물로 다 지워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주고 마음껏 활동하도록 격려하였다.
아동이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만져보기 시작했다. 손으로 비비고, 뭉쳐 보고, 굴리고, 구멍 내고, 주먹으로 때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어떤 매체보다 안정감을 느끼며 마치 억압된 에너지를 발산하듯 힘을 쓰면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땀이 뻘뻘 나도록 한참을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업을 하고 난 아동의 표정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듯 밝고 후련한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손에 묻는 것에 관한 부담스러움 → 신기함 → 즐거움
→ 후련함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아동의 생동적인 표정을 지켜보면서 정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점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흙은 요즘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아이들은 청결을 이유로 놀이터에 있는 흙조차 만질 수 없다. 강박적인 양육이라 치부하기에는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이며 그저 아이들이 아이답게 놀지 못하는 세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흙의 느낌을 대체할 각종 촉감놀이 매체가 개발되어 볼 클레이, 하비 클레이 등 다양한 재질의 클레이들이 존재하지만, 자연의 일부이기도한 흙의 따뜻함을 따라갈 수 있는 대체품이 있을까 싶다.
흙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또한 흙은 활동 매체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흙이 있는 땅을 걷고 밟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중요한 사실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필자는 매일 산을 오르며 자연의 일부이기도한 흙을 접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고 있다. 점점 검은 아스팔트가 많아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흙을 밟는 일도 줄어가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하늘을 하늘색이 아닌 미세먼지 가득한 황토색으로 표현하는 광고가 생겨나듯 가까운 미래에는 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아이가 땅을 검게 칠할 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흙을 밟을 일도 줄어든 것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과거처럼 산과 들로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지 못 하는 안타까운 시대이다. 갈수록 바쁜 스케줄과 경쟁,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기기들에 잠식되어 마음껏 동심을 펼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자연 속에서 뛰어 놀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아이들이 자연친화적인 흙을 통한 여러 가지 활동으로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지는
경험을 가져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로인해 조금은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말했듯이 어려운 시대,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치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정서 지원 시스템을 확대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치료라는 명목 하에 우후죽순 생기는 다양한 치료들과 치유 활동 중에서는 다소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으니 신중하게 잘 선택해야 하겠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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