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작과정을 돌아보는 집담회
동시대 공예 아카이브의 새로운 가능성
정리.이연주 기자 사진.이은 스튜디오
‘백자 공예상자’는 많은 공예분야 중 도자 특히 백자의 재료와 기법를 시각적인 자료로 선보인 연구결과이다. 초기부터 표본 조사와 제작을 함께 구상하고 꾸려나간 현장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개인적인 변화, 동시대 아카이브 지원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재료와 기법을 아카이빙할 때
이연주│오늘은 백자 상자 제작과정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도자 분야 실기 분야와 이론 분야를 담당해 주신 세 분의 교 수님을 먼저 자리에 모셨고요.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고 어떻게 진행하게 됐는지 소개해주 시면 좋겠습니다.
고미경│ ´한국공예상자’ 시리즈 중 첫 번째 ‘백자공예상자’ 의 기획과 제작의 책임을 맡은 고미경 학예연구사 라고 합니다. 우선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공예라는 매체의 보이지 않는 기술과 지식을 어떻게 전달을 하고, 앞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습 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의 사례들을 찾아보면 서 아카이브의 결과물이 궁극적으로 수장고나 전 시실에 박제된 형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관람객을 기다리는 형태를 벗어나 이 관 람객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조금은 적극적인 쓰임 을 위해 이동할 수 있고, 자유로운 형태가 되면 좋 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입니다. 결 과물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모이게 됐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하 과기대 산학협력 단에서 맡아 1년 동안 함께 고민해 주셨습니다.
이정석│ 이번 기획 연구와 연구의 총괄을 맡은 이정석이라 고 합니다. 도자 실기 분야는 저를 포함해 제 옆에 계시는 김대용 교수님 2명이고요, 다른 한 분은 이 론을 고증적으로 풀어주시는 박정민 교수님이십 니다. 사실 저희들은 재료를 만지고 재료를 어떻게 만들어갈까를 고민했다면, 역사적으로 산지에 대 한 기록과 원료를 어떻게, 왜 쓰였는지 기반과 방 향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박정민 교수님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음에 합류할 디자인 팀들은 재료와 기법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분류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주실 겁니다. 스케쥴상 참석은 못하셨지만 별도의 인터뷰를 통해 상세한 내용을 들어보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공예박물관이 처음 생기면서 많은 소재 중 도자 분야에서 아카이브 상자가 시작된 것이 뜻깊고, 또 이로 인해서 여러 분들도 뵙게 됐고.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어 의미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연주│ 백자 공예 상자 첫 번째 단계에서 전체의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을 했고, 무엇을 채울지에 대한 흐름과 체계를 구성하는 이론의 기초를 만드는 일이 박정민 교수님이 첫 임무라고 들었습니다.
박정민│ 제가 프로젝트에서 맡은 역할을 보면 고증과 표본· 체계 구성 담당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고증이라 고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부분입니다. 전통은 특 정한 원형을 추구한다기보다 시대의 전형들을 파 악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원료와 기법들을 구체화하면서 무엇을 담고,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 다. 백자 원료의 경우도 문헌에 기록된 지역들을 물론 가보고 싶었습니다만,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것도 있고, 경기도 광주, 충남 서산 등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특정 지역을 ‘정확히 여기’ 라고 말 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해서 문헌 자료에 있는 내용들로 큰 얼개를 잡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공정 뿐만 아니라 표본의 기본 맥락을 만드는 데 여러 도자 전공 선생님들께서 아낌없는 조언을 통해 구 체화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이 굉장히 건강했고 이 현장을 반영해 맥락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고미경│ 현재 원료 자원을 채취하려면 합법적인 절차가 필 요합니다. 예를 들어 문헌에 나와 있는 지역의 태토 를 채취하는 것도 허락을 거쳐야하는데, 어려운 현 장을 두 분 이 잘 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원토의 가소성 실험을 무수히 반복하면 서 표본화를 만드신 김대용 교수님이 하고 싶은 말 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김대용│ 저도 시편타입을 완성 못 할 줄 알았습니다. 도자 기로 쓰이는 원토는 무기물입니다. 오랜 숙성 기간 을 통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유기물, 성형화할 수 있 는 소지로 만들어집니다. 각 산지에서 채집한 흙을 정해진 시간 안에 형체(시편)를 만들어야 하는데, 흙이 아직 숙성이 덜 된 상태인거죠. 100개의 시편 을 만들면 그 중 90개가 깨졌어요. 세라믹 기술원 의 자문도 구하면서 일단 형체를 만드는 데 애썼 죠. 현대적인 도구와 과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과정 도 복기하면 좋았겠지만 우선, 관람자들에게 최적의 정보를 전달하려면 형태 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난관의 힌트를 찾아가는 과정
이연주│보이지 않는 것들을 실물로 구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점은 무엇이고, 보람을 느낀 순간 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이정석│제한된 시간에서 일반적인 아주 납작한 형태의 도 편을 만드는 게 수월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편으 로 제공한다면 일반인들이 봤을 때 흥미 유발도 안 될 뿐더러 도자기는 입체물로 만들어서 소성이 되 는 과정을 거치는데 현장감이 좀 떨어진다고 할까 요. 시각적으로 어떤 형태로 만드는 게 효과적일까 고민하다가 반달형, 원통형, 반추형, 다원형 등으 로 소재와 장식을 표현하는 기본틀을 완성했죠. 물 론 고생은 더 했지만 만족도가 꽤 높습니다. 그리고 박정민 교수님과 함께 산에 다니면서 흙을 캐왔는데, 물론 허가는 받았고요, 사실은 돌가루였 단 말이죠. 이걸 숙성하고 가공하는 데 김대용 교 수님이 굉장히 애를 많이 쓰셨어요. 실은 원통형 으로 제작해보자고 의견을 주신 분도 김대용 교수 님이신데,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가소성이 부족한 태토로 시편제작이 거듭 실패하는 점이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좋 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용│시편을 제작하는데 정말 흙가루까지 탈탈 털어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채집한 태토로 유약도 만 들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이정석 교수님은 아마 조 마조마 했을 거예요. 부족하면 흙을 다시 채취하러 가야 했으니깐요.(웃음)
이정석│예를 들면 초벌 상태라고 하지만 사실은 온도가 더 높은 것도 있어요. 높게 소성해서 보관성도 지키고, 안료가 손에 묻어나는 것도 방지할 수 있거든 요. 말씀드린 것처럼 과정의 순간을 포착해서 상자 에 담아야 하잖아요. 수축률도 그래요. 날 것과 재 벌의 수축율 차이가 큰데, 상자에서 보여질 땐 디 자인적으로 똑같이 보이길 바라거든요. 노하우를 너무 쉽게 노출했네요. (웃음)
박정민│ 저 역시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네요.(웃음) 도자사 측면에서 역사는 어떤 맥락과 흐름인데, 이 속에서 하나의 요소를 포착해 상자에 담는 행위가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요 소를 뽑아서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것들이 물론 머 릿속에는 많았죠. 하지만 실제 구현하는 과정과 공정들이 가지는 가변성, 좋게 말해 가변성이죠. 예 측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 본 대상을 교체하거나 각 장식 기법을 최대한 효과 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유물로 선정하게 된 거죠. 또 흙도 허가된 구역에서, 땅 주인의 허락을 통해 서 우리가 직접 확보를 해야 되다 보니 처음 머릿 속에 있던 다양한 백토 산지들과 태토를 가져다가 만들려고 한 결과물이 현실적인 반영으로 작아진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백두대간 보호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아무 데서 이걸 하는 게 아니구 나를 배웠습니다.
고미경│ 프로젝트 전체를 끌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예측불 가능한 점이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예를 들면 결과 물이 너무 어렵지 않고, 아는 사람들만 전공자들만 의 지적유희가 되지 않도록 무거움을 덜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희망들을 상자 디자인으로 풀어주셔야 했던 이상진 교수님께서 그야말로 맨붕이셨을 겁니다. 조선시대 양반댁 여 인네처럼, 우리들의 백자공예상자는 유연하게 움 직이되, 너무 무거워도, 너무 가벼워도 안 되고, 심 지어 멋있고 아름다워야만 했으니까요.(웃음)
_____이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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