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의 재조명
선사시대 토기의 용도와 그의 현대적인 활용성
글/사진 박순관 도예가
선사시대의 원시인들은 음식을 담거나 먹기 위하여 식물의 잎이나 나무, 단단한 과일 껍질 등을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이후에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흙이 구워지면 단단한 토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음식을 굽고, 끓여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토기는 아주 중요한 생활 소품으로 여기게 되었다. 원시토기란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가마라고 할 만한 구조물이 없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모닥불에 굽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움집의 가운데에 설치하여 난방과 취사를 하는 모닥불에서 작은 그릇들을 한두 개씩 굽는 방법을 행하였다.
여름에는 움집 바깥의 공동 취사장을 이용하거나 토기를 전용으로 굽기 위한 평지의 가마터를 사용하기에 이르렀으며 점차로 더 큰 기물들을 구운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의 빗살무늬토기도 대부분 밥을 짓거나 음식물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한 것들이다. 당시의 토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증거가 있다. 사용 중에 금가거나 조금 깨진 그릇이라도 쉽게 버리지 않고, 깨진 금 양편에 구멍을 뚫어 넝쿨로 매어서 사용했던 유물이 적지 않다. 이렇게 꿰맨 그릇들은 주로 주거지 옆에 위치한 창고에서 주로 발굴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도토리 등 마른 음식물을 넣어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언뜻 보기에는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불편하리라고 생각되는 빗살무늬토기가 과연 불에 올려져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까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것과 아주 유사한 형태와 크기를 가진 토기가 지금도 남태평양의 피지 섬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그릇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면 조그만 굽이 생긴 민무늬토기로 발전하는 동시에 새로운 방식의 붉은 간토기, 검은 간토기, 가지무늬 토기 등 아주 고운 흙으로 만든 토기들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아름답고도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표면을 반반한 돌로 문질러 매끄럽고 광택이 나도록 하는 기술로 만들어 졌다. 더욱이 색깔에 있어서도 아주 빨간 흙을 칠하거나 연기를 먹여 검은색을 만들기도 하며, 부분적으로 세로의 검은 무늬가 나타나기도 한다.(후자는 그래서 가지무늬 토기로 불린다.) 그 동안 가지무늬 토기는 채색토기 혹은 채문토기라 하여 사학계에 잘못 알려졌으나 검은 무늬를 손으로 그려 넣은 것이 아니고 구울 때, 막바지에 장작을 기물에 세워 놓아 꺼먹이가 세로로 생기는 것을 알게 되어, 나중에는 이를 활용함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무늬가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청동기시대의 아름다운 간토기들은 주로 족장의 무덤에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제례용 그릇으로 사용된 것이다. 때때로 고인돌의 아래에 안치된 유골의 머리맡 양쪽에 놓여진 붉은 간토기는 한 쪽에는 조개(당시의 돈)를 넣고, 한 쪽에는 식량을 넣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간토기들을 부장품으로만 사용하던 풍습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크기가 더 커지며, 실생활에 쓰이는 도구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여주 흔암리 유적의 일반 주거지에서 발굴됨으로써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빚어진 선사시대의 토기들은 붉은 색의 진흙을 소재로 하여 비교적 낮은 온도인 섭씨 700-800도로 구워져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모닥불에 구움으로써 색상이 일정치 않고 부분적으로 얼룩얼룩한 꺼먹이 자국이 남아 있어 원시적인 단순함과 소박한 멋을 풍긴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세련되고 완벽한 아름다움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소 다른 맛을 풍긴다. 또한 토기는 토기만이 갖는 특성과 장점이 있기에 세계 도처에서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라 하겠다.
토기에 관해 우리가 지닌 문제들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도자기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울 정도의 길고도 우수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반도의 구석구석이 마치 박물관과도 같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선사시대의 주거지가 전 국토에 산재하여 있고, 수많은 종류의 선사토기들이 발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 토기와 청자, 분청사기, 백자에 밀려 빛을 못 보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선사토기가 발굴된 현장에 건설된 박물관에서조차 진품은 단 몇 점밖에 진열되어 있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모조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지에서 발굴된 그 많은 유물들은 박물관 창고에서 잠자고 있고, 어렵게 그곳을 찾는 관람객은 거의 모조품과 진품의 파편 몇 조각만으로 감상을 하는 편이니 과연 선사토기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될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은 물론 많은 국립박물관, 개인 박물관, 미술관 숍에서 아직까지도 선사토기의 재현품이나 미니어처 등 기념품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필자가 국내외에서 보았던 마야 문명전, 진시황 도용전, 아프리카 문물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등에서는 모두 토기 모조품이나 미니어처 기념품이 있었다. 프랑스 루블 박물관 앞 지하상가의 갤러리에서도 수많은 종류의 선사토기 기념품이 있다. 더나아가 현대 생활에 맞도록 새로이 디자인된 것들도 있다. 앞으로 우리도 도자기의 역사가 원시시대 토기로부터 삼국시대 토기,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로까지 다양하게 발전해 왔음을 증명할 수 있도록 선사시대 토기의 재현품이나 기념품을 개발하고, 이것을 일반인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일에 더욱 더 힘써야 할 것이다.
외국의 생활 토기 보급 사례
다음은 필자가 국내외에서 여행을 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본 재미있는 일들과 토기를 보급하기 위한 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나라 선사토기의 경우에는 형태나 문양에 있어서 단순한 편이지만 중국, 타일랜드, 인도, 중동, 아메리칸 인디언, 잉카 제국,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는 토기는 형태가 매우 다양하며 채색 또한 다채롭다. 특히 높은 고지에서 살았던 잉카문명에서는 물이 귀한 관계로 주로 물병이 많으며 그 형상이 매우 여러 가지로서 당시의 생활습관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남태평양의 피지 섬의 토기들도 토기 전체에 섬세한 문양과 함께 화려한 색채들로 장식되어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제례용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보다 많은 장식과 채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의 토기들은 나라마다 토기를 만들고 굽는 일들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를 뿐만 아니라 부족에 따라서도 다르다. 현재도 각기 특색을 가진 토기들을 만들어 관광 기념품을 생산하고 있다. 타일랜드의 최대 카오린 산지이며 토기로 유명한 람팡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의 일이다. 해물 샤브샤브를 주문하니 잠시 후에 조그만 토기 화덕과 함께 토기 그릇에 음식이 담겨 온 것이다. 화덕 안에는 고체 알코올에 불이 붙여져 있었다. 우리는 끓는 육수에 생선과 야채들을 넣어 익혀 먹으면서 얼마나 재미를 느꼈는지 모른다. 그 동안 도자기에 유약이 발려진 그릇이 아니면 사용 할 수 없는 것으로만 인식되어진 고루한 사고방식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생활이 넉넉지 못한 치앙마이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토기를 사용하고 있음과 동시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토기를 사용하고 있음은 관광상품으로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일들은 필리핀의 유명한 관광지 보라카이 섬에서도 경험한 일이 있는데 여행을 같이 했던 여러 사람들이 철물점이나 시장으로 우르르 달려가서 토기를 고르며 즐거워하던 추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방콕 시내에서 붉은 간토기에 천연 과일주스를 파는 할머니를 만난 일도 기억에 남는다. 길다란 지게의 양쪽 대나무 바구니에는 뚜껑 덮인 붉은 간토기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 국자로 떠서 비닐 봉지에 담아 주는 주스는 냉장고에서 꺼내주는 것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으며 이국적인 재미를 더했다. 절 입구나 시골 마을의 입구에 놓여 있는 토기 항아리에 담긴 물만으로도 그들의 민속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일이나 현대 생활에 맞게 도시에서의 이색적인 풍경은 나그네의 목을 축이기에 더 할 것이 없었다.
날씨가 더운 나라이지만 얼음 몇 조각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주스를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것은 토기 덕분인 것이다. 토기의 벽은 물을 흡수하여 기물 밖으로 기화시킴으로써 그 안에 든 내용물을 바깥 온도보다 최고 섭씨 10도 이상이나 시원하게 해 주는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호치민 시내의 음식점에서는 토기에 밥을 해 주는 곳을 찾았다. 입이 오므라진 옛날식 붉은 토기에 밥을 지어서 손님들 앞에 가지고 나와 토기를 망치로 깬 다음에 밥을 꺼내어서 나눠준다. 깨진 파편 조각이 밥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토기를 깨뜨리는 기술도 기술이거니와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종업원 두 명이 3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서로 던지기를 서너 차례 반복을 하면서 파편을 떨어낸다. 음식점 바닥에는 이미 여러 개의 토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왕 깨진 것 더러는 밟아서 깨는 재미도 있고, 조각을 피해 가는 재미도 있었다. 단순히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라 행위예술과 같은 볼거리와 함께 토기 그릇까지도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우리네 선사시대 주거지를 가진 박물관도 서울 암사동과 강원도 양구군을 비롯하여 몇 군데에 있는 것으로 알지만 이런 재미를 볼 날이 오기를 바래보기도 한다.
토기 보급 방안들
선사시대의 토기들은 거의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한 그릇들이다. 특히 음식을 끓이기 위하여 불에 직접 올려도 깨어지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높은 온도에서 구운 도자기가 불에 올려도 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자기질은 깨지지만 약한 불에서 구운 토기는 어떠한 흙으로 만들어도 불에 잘 견디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불기운을 잘 보존하므로 예로부터 불씨를 보관하는 불씨통이나 숯을 담아 방을 덮이는 화로, 취사용의 화덕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기들은 직접 숯불을 담아도 터지지 않아야 하고 표면이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성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서 개발할 것이 있다.
요즘 차 도구를 구색대로 맞추려는 차인들은 찻물을 끓이기 위한 질주전자와 아울러 화덕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동안 이들 재료로 무쇠, 놋쇠, 자기 등을 이용하였지만 역시 차를 마시기 위한 분위기에는 토기가 제격으로 여겨진다. 일부 자기로 만든 것들이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많은 차인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도 미흡한 형편이다. 다도를 가르치거나 시범을 보일 경우에는 연료로써 숯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번거로운 일이라서 현재는 전기를 이용하는 니크롬선을 장치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도 붙박이일 경우에는 좋지만 쉽사리 이동하기에는 편치 못 하므로 앞으로는 가스램프나 알코올램프를 사용한 토기 화덕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 필자가 작업장에서 즐겨 사용하는 토기가 있다. 난로나 개스렌지 위에 올려놓고 그릇 안에 고구마나 감자, 밤을 넣고 구우면 잘 타지도 않고 속속들이 익으면서 맛있게 구워진다. 가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굽기도 하고, 먹다 남은 것들을 토기 솥에 넣고 가열하여 데워서 먹기도 한다. 세라믹 용기는 달구어지면 원적외선이 방출되면서 음식을 속속들이 골고루 익혀주니 음식의 맛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전자렌지의 역할을 토기가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 동안 토기에 관심을 쏟던 중에 2001 세계 도자기 엑스포 기간 중에 여주에서 있었던 세계 민속도자기 워크숍에서 인도, 칠레, 파라과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줄루족, 뉴질랜드 마우리족, 미국 푸에블로 인디안 등 온 도공들과 함께 원시토기를 만들고 굽는 일에 참여하였다. 워크숍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마당에서 장작불을 피워 구운 토기에 곧바로 쌀밥과 민물고기를 넣은 국을 끓여서 시식하는 시간이었다. 칠레의 토기 접시로는 과일과 고기를 넣어 끓이는 과정도 있었다. 실제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실제로 음식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욱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했다. 화기로 사용하는 토분도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원하고 있는 추세이다. 세계의 많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는 장식품으로 쓰이는 대형의 토기나 화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알고 보니 대부분 타일랜드에서 구워진 것들이다. 우리 나라에도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업체가 있기도 하다. 겨울이 있는 우리 나에서는 야외에서의 토기 사용은 얼어 터지므로 제한을 받지만 실내용으로는 얼마든지 개발할 만 하다. 또한 요즘에는 작은 크기의 야생화를 키우려는 취미와 석부작이라 하여 풍란을 돌에 붙이는 취미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보다 새로운 디자인의 토분을 원하는 추세이다. 그리고 건물의 실내나 화장실 등 곳곳에는 자연 향을 내는 꽃잎이나 식물 조각을 담는 그릇을 두기도 한다. 그러한 용기들은 보통 플라스틱이나 유리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 보다는 아름다운 토기에 담아줌으로써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향기를 토기 깊숙이 품고 있다가 서서히 내보내는 보다 높은 기능성을 발휘토록 함이 좋을 것이다.
끝으로
선사토기의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실질적인 체험을 통하여 도자기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한편으론 가장 중요한 분야일 것이다. 가마가 없이도 도자기를 구울 수 있다는 점과 야외에서 장작불을 피워 흙이 익어 가는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도자기의 본질인 흙과 가마를 이해하는 가장 초보적인 경험인 동시에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장작불만 피워도 흥미로운 일일뿐 아니라 그러한 불을 이용하여 가장 원초적인 아름다운 그릇을 구울 수 있다는 것은 어린이나 도예 초보자들뿐만이 아니라 도자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교육적 효과를 갖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사용이 편리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넘치는 조리기구들이 많은 세상에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거나 차를 달이고, 집안을 치장하는 일들이 번잡하고 구차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문명을 떠나 원초적인 생활로 들어가 보다 여유롭고 감상적인 삶을 꿈꿀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 토기야말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임과 동시에 보다 과학적인 특성을 가지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물질인 것이라 하겠다. 또한 역사 깊은 도자기 나라로서의 면모를 눈을 통한 감정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관광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개발하는 것도 도예가들의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