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결정유의 세계
결정유는 다채로운 아름다움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차별화된 작품을 포함한 잠재력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결정유를 전개한다는 게 시행착오를 쌓아가는 경험이 필수적인데, 급변하는 세상은 느린 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작가라면 한번쯤 생각해봤을 결정유,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은 결정유에 대한 특성과
중요성을 꼭 찾아볼 만한 정보로 소개한다.
그간 축적해온 경험과 각고의 노력으로 결정유 세계를 이끌고 있는 결정유 도예가 4인을 만나보고, 지속가능성을 토대로 결정유의 저변이 늘어나도록
힘쓰고 함께 소통하는 실천이 더욱 중요해지는 현장을 소개한다.
특집 I
결정유의 존재론 Ontology of Crystalline Glaze
글. 변규리 공학박사·수주도예연구소 소장
“색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다면 먼저 순수한 하얀색 바탕을 준비해야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결정을 아름답게 석출시키고 싶다면 먼저 순수한 투명유를 준비해야한다.”
1. 결정유(結晶釉/Crystalline Glaze)
지구가 만들어진 45억년 전부터 지구의 구석구석 바다와 땅 밑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질작용 들이 일어났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180만년 전 아프리카대륙에서 이동하기 시작한 현생인류 의 조상인 호미닌들은, 살기 좋은 땅에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정착하면서 지구가 만들어 낸 지질작 용의 결과물들 즉, 토양(soil), 암석(rock), 광물(mineral)들을 이용해 생존과 번식의 도구를 만들 었는데, 그 중 하나가 도자기이다.
도자기는 잘 뭉쳐지는 붉은 점토만을 이용하여 만들던 토기시대에서 아주 오래 머물다가, 다채로운 물성의 토양이 존재하는 서아시아의 땅에서는 중저온계 유약의 도기陶器질로 발전하였다. 지리적 으로 다른 토양과 광물을 품은 동북아의 땅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자기瓷器의 시대를 열게 되 면서, 유약이라는 얇은 유리질 박막을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녹여 태토표면에 붙이게 되었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도자기 유약을 빛이 투과되는 정도로 분류해보자면, 비교적 질좋은 즉, 한 종류의 용화상(熔化相)으로 되는 균질유인 광택 투명유와 잘 분상된 광택의 유탁유를 제외한 거 의 모든 유약은 결정유(結晶釉)이다. 아름다운 벨벳질감의 세련된 무광택유도 결정유이며, 반짝 이는 붉은 모래알같은 철결정이 올라온 철사유나, 노란 메밀색과도 같은 결정을 띄운 석회마그네 시아계 철유인 메밀유도 동북아 도예인들이 즐겨쓰는 결정유이다. 우리가 기본유의 제법에서 결 정을 띄우는 결정보조제(조핵제)들은 대게 천연의 나뭇재 안에 소량의 불순물로 첨가되어있으므 로, 냉각이 느린 장작가마전통의 동북아 도자사에서 고온의 미세결정유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 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산화철을 기본으로 한 고온의 색유가 제일 먼저 발달한 중국 북송과 원 대의 다채로운 천목유조들(화목천목, 유적천목, 요변천목유 등)과 비슷한 시기 균요유도 산화동을 발색제로 이용한 일종의 복합 결정유이다. 산화 코발트를 이용한 청보라계 결정유나 산화철, 이산 화 망간, 산화 니켈 등 금속산화물의 전이금속을 도핑 후 성장시킨 화려한 아연결정유, 티탄결정유 등은 비교적 현대에 들어와 도예가들에게 사용되는 전형적인 화려한 결정유 군에 속한다.
특별한 냉각조건을 거치지 않은 전통적인 미세결정의 요변성 결정유들과, 근대 이후 개발된 아연티탄 계 결정유들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유의 점도(粘度)제어라 할 수 있는데, 근본적인 제법은 동일하다. 결정유(結晶釉)는 규칙적인 손잡기를 좋아하는 원자들의 집합체로 맺어진 광물계의 새로운 작은 집 단들이 열에너지의 도움으로 힘겹게 점액질 유리를 뚫고 올라와 성장한 무늬를 가진 유약이다. 결정 의 생성은 승온과정에서 기본유리상(glass matrix)에 먼저 핵이 만들어져야 하고, 소성시간 조절에 의해 그 핵 주위에 원자들이 모여들며 냉각 중에 분리되어 결정을 성장시키게 된다. 따라서 결정의 생 성조건은 명확히 존재하는데, 그것은 조핵제, 승온시간, 서냉시간, 기본유의 점도 등 이다. 다채로운 형태와 패턴을 가진 결정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주로 이 현상의 내부구조나 연결성을 연구하는 공학분야를 결정학이라 한다. X선이나 UV, FT-IR, RAMAN 등의 분광기를 이용한 최첨단 분석에서 어느 것도 잘 잡히지 않는 브로드한 선으로 나타나는 비정질 분야의 연구보다는, 뚜렷한 피크나 특성 밴드로 보여져 수치화나 분석이 용이한 결정학이 금속, 반도체 등의 신소재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공 학적 연구와 응용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전통세라믹인 도자재료 연구에서는 비용이 매우 높긴 하지만 자유로운 분석기기의 사용과 해석이 전제되기만 한다면, 논문이나 연구과제로의 접근이 가장 용이한 유약 주제가 결정유이기도 하다.
어떤 유약의 안이나 바깥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결정의 무리들과 보이지 않는 결정의 무리들이 존재 한다. 원래 투명한 유리의 원자들은 그 누구와도 손잡길 좋아하지 않으며, 일정온도에서 오히려 알카 리 입자들에 의해 규소(SiO2)의 규칙적인 사면체 네트워크가 모두 끊긴 상태로 아모포스(amorphos) 하게 존재하는데, 이를 과학자들은 비정질(非晶質)이라고 부르고, 일반인들은 유리라고 부른다. 그들 을 줄세우고 무리짓게(clustering) 부추기는 결정화(結晶化)의 외부세력은 열에너지와 압력(thermal energy and pressure)이다.
도예가들은 이 가혹한 지구의 내부적 조건을 가마(窯)라는 작은 도구를 통해 흉내내면서, 비정질이나 결정이라는 지질학적, 혹은 재료공학적 메카니즘에는 아랑곳없이 불의 공격을 타고 넘으며 예술이라 는 독특한 사변적 행위를 하고 있는 흥미로운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결정유를 재료학적 개념위에 석출된 범주론 및 존재론적 관점에서 러프하게 접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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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