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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월호 | 특집 ]

특집6) ‘공예’가 실종된 스펙터클의 장 場
  • 편집부
  • 등록 2020-09-07 16:29:37
  • 수정 2024-07-23 17: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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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예’가 실종된 스펙터클의 장 場

글_홍지수 미술학박사,공예평론가

지난 10 월 8 일, 청주공예비엔날레가 11 번째 문을 열었다. 매회 비슷한 시기에 열렸던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가 돼지열병 확산방지를 이유로 전격 취소된 지 열이레 만이었다. 이 때문에 올해 공예인들이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에 거는 기대와 존재의 무게는 더욱 컸다. 그러나 ‘공예’와 ‘예술’을 모토로 다양한 공예의 카테고리를 섭렵하며 부지런히 달려온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머리에 가관 加冠 을 쓴다는 20 살 청년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행사 명칭에서조차 향후 비엔날레가 가야할 정체성과 규모의 범주를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사기획과 운영 등의 면에서도 잡음과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회를 거듭할수록 국내 공예계의 작가 및 전문가 인력풀,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가 점차 빈곤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점점 본연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영향력을 퇴색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책과 우려의 목 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 예로, 조직위는 지난 2017 년 행사 명칭에서 ‘국제’ 를 제외했다. 이에 대해 조직위는 공예비엔날레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인지도와 브랜드를 충분히 확보했기에 내린 결정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 공예인들이 이러한 자화자찬에 얼마나 수긍했는지는 의문이다. 실제 자화자찬의 허장성세는 폐지되었다가 4 년 만에 되살아난 이번 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그대로 입증되었다. 올해 국제공모전 에는 46 개국에서 787 점이 출품되었다. 9 회 국제공모전 2015 이 지원자 702 명 872 점, 8 회 2011 1 , 188 명 1490 여점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외형적으로는 올해 국제공모전은 예년 수준을 수성했거나 국내외를 막론하고 갈수록 인기가 줄 어드는 공모전의 추세를 고려할 때 선방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입선작을 포함한 수상작의 면면과 수준이 예회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번 국제공모전을 탈공간화, 탈매체화 되어가는 세계 현대공예의 진취적 실험들과 이를 두고 벌이는 첨예한 담론의 현황과 시의성을 가늠하고 판단할 척도로 삼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여러 정황상, 2017 년 행사 명칭의 ‘국제’ 폐지는 20 여 년 간 ‘국제’와 ‘공예’라는 대의명분 아래 빛을 보지 못했던 지역 미술인들의 참여와 개입을 열어주는 명분이자 예산절감 차원의 자구책이었을 공산이 크다. ‘메이드 인 청주 Made in Cheongju ’를 대주제로 열린〈 2017 공예비엔날레〉는 1999 년 부터 2015 년까지 아홉 차례의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성과 에 대한 회고와 타 분야와의 융합을 통한 공예의 가치와 의 미의 재조명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실상 그 속에 공예는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예산규모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조직위의 의지와는 달리 공예와 무관한 다수의 공동감독 선정부터 공예 중심이 아닌 문화예술 전반으로 행사의 콘셉트를 분산시킨 탓이었다.

때문에 11 회 〈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가 현대공예의 본색 本色 과 영향력을 회복하고 다시금 공예인들의 자부심과 부흥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공예계의 요구는 어느 때 보다 컸다. 갈수록 현대미술화 되어가는 최근 현대공예의 표현을 어떻게 타 예술매체의 표현들과 차별화하며, 복잡다단해지는 현대공예의 시각언어와 값싼 물질포화에 밀려 수공이 설 곳을 잃는 상황을 어떻게 대중에게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을 것인가의 문제가 시급했다. 나아가 다양한 현대공예 표현을 두고 전 세계 전문가들이 궁구한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담론들을 소개하는 일도 이번 비엔날레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청주제조창의 리뉴얼, 공예클러스터 등의 추진 등으로 확장한 재단의 업무와 여러 상황들로 인해 비엔날레의 준비와 구상은 어느 해보다 늦어졌다. 뿐만 아니라 개최 시기의 변경 , 예술 감독의 선임 등 비엔날레 준비 과정에서 잡음과 혼선도 들렸다. 특히 물가 인상과 불안한 해외정세에도 불구하고 행사의 질적 우려가 예상되는 당회 비엔날레 예산의 초라 함을 보며 공예계에서는 이번 행사의 내실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일단 경기도세계도자비에날 레와는 달리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일단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본전시, 초대국가관, 공모전, 공예페어 등 5 개의 기획전과 3 개의 특별전의 구성, 세 번의 학술심포지엄 등 으로 외형상 비엔날레의 형식을 모두 갖췄다. 과거 스리랑카, 인도 등 제 3 세계 미술과 관련이 있었던 감독의 이력 때 문인지 지난 비엔날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시아, 동유럽 관련 특별전이 열린 것도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특색 이었다.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는 ‘미래와 꿈의 공예-몽유 도원이 펼쳐지다’이다. “그동안의 공예비엔날레가 공예의 쓰임과 기능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시간, 정신, 기술 이 결합한 독창적이면서도 탁월한 이상향의 공예를 경험 하는 시공간을 펼치고자 한다”는 안재영 예술감독의 변變처럼,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 전시 등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이미지, 이상향, 꿈 夢 이었다.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가 지닌 이미지의 힘, 서사, 시각 언어의 다름을 한국 미술의 특징으로 꼽히는 ‘자연주의’를 매개로 한 공간 속에 풀어놓고 그 의도를 구현하려는 탓인지, 청주 문화제조창 3 층에서 열린 본전시와 동부창고 특별전, 중국과 덴마크 초청국가전 등은 그야말로 현대미술의 이미지와 서사의 힘이 공예를 압도하는 인상마저 줄 만 큼 타 분야 비중이 컸다.

감독이 강조한 꿈 夢 , 이상 理想 의 재현은 기실 공예보다는 순수미술 특히 회화에 더 강점이 있다. 순수미술은 추상적인 생각, 개념, 경험, 감정, 느낌, 자기표현, 상상 등을 전달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회화는 작가가 자신의 신체로 감각하고 지각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며, 보는 이의 신체화 된 시각 경험을 활성화시키는 강력한 ‘의사소통’의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현대회화가 전통적인 프레임이나 규범에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끌어들이며 극단의 경계적 위치에서 다양체를 지향한다하여도, 회화는 여전 히 멀티미디어 시대의 동영상이 줄 수 없는 ‘느림의 미학’과 ‘촉각적 가치’를 담보로 질료와 이미지 사이에서 독특하고 강력한 가상성과 리얼리티의 힘을 보여준다.
순수미술이 2 차원 혹은 3 차원의 시각 이미지를 통해 의사 소통하는 것에 반해, 공예의 형상과 이미지는 ‘의사소통’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용자의 목적과 실용적·물리적 기능에서 생성된 것으로 사회의 기호체계나 독립적 요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현대공예의 형태와 언어는 단순한 기능적 형태와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회화 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이미지와 테크놀로지, 다양한 매체가 번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역과 패러다임 속에서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며 변화하고 있다. 현대공예의 표현에는 정해진 재료도 없으며 공예가 혹은 예술가라는 고정적 지위의 구별 또한 무의미해졌다. 모든 것이 공예의 재료가 될 수 있고 모든 수단이 공예의 재현방법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최근 현대공예의 양상을 논함에 있어 과거 공예를 정 의하던 실용성, 기능성, 재료, 기술 같은 실제적 문제로는 더 이상 공예를 설명할 수 없으며 점점 현대공예와 현대미 술의 지적 구조가 동일해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입장은 공예가들이 이제 기능, 용도, 재료, 수법 등의 직접성을 떠나 현존하는 순수미술의 비평적, 이론적 담론 안에서 공예를 논하고 그를 통해 공예 가 순수미술에 준하는 미학적 동등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시선은 이번 공예비엔날레의 전시와 학술회의 전반에도 읽힌다.

공예를 단순한 상품이나 수공품이 아니라 개념적, 지성적 산물로서 변모시키려는 이러한 시도는 과거를 되짚어 볼 때 공예를 역사적 흐름으로 혹은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사 실만으로 읽지 않으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공예의 실제적 기능을 최대한 배제하고 암시적이고 은유적 기능 더 나아가 기능을 은폐시킨 공예품을 회화나 조각과 같이 놓음으로써 이 둘의 차이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전시연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관객이 재료, 기술, 기능 등을 근거로 자신이 보고 있는 사물을 공예로 식별하려는 경향을 되도록 기존 공예를 설명하던 재료, 기능, 역사 등의 카테고리를 지우고 매체 대 매체로 즉, 회화와 공예가 공유 가능한 ‘이미지’혹은 ‘서사’를 주제로 내세워 공예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문제는 앞서 말한 공예와 미술의 차이를 제거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재료와 기술, 실용성을 공예를 규정하고 이해 하려는 시도보다 바람직한가이다. 실제 매체혼용과 혼성이 난무하는 오늘 현대미술 속에서 모든 예술품을 사물, 사건, 개념으로만 기준하여 바라본다면 현대미술과 공예 각자가 지닌 개별적 차이와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을까? 공예 역시 현대미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시간, 공간, 행위가 결합된 미메시스 mimēsis 를 만들지만 이 둘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같은 재료와 도구를 사용한다 해도 그것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움직이는 예술가와 공예가의 생각, 태도, 창작의 동인과 제작의 목적이 다르다면 그들이 만든 결과물은 다른 것이다. 순수미술의 이미지가 예술가들이 인지 recognition 를 통해 만들어낸 상징기호들의 총체라면, 공예의 이미지 는 공예가들이 사람들의 삶과 필요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분하게 발생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점점 현대미술의 외연과 식별불가능해지는 현대공예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연 이미지와 형태 보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어졌는지, 역사적 전통 안에 서 어떤 의미와 맥락이 있는지를 파고들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2 년의 간격을 두고 매회 청주에 모여 공예비엔날레의 프로그램에서 보고 듣고 토론하고 점검하고자 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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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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