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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월호 | 특집 ]

특집4) 제주 옹기 컬렉터 이기정
  • 편집부
  • 등록 2020-06-01 16:18:24
  • 수정 2020-06-05 16: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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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Iv

제주 옹기 컬렉터
이기정
글.이연주기자 사진.편집부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물을 길어나르는 물항아리 ‘허벅’이 집집마다 있었다. 배가 불룩하고 입구는 좁게 생긴 허벅은 물을 길어 집까지 실어나르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물을 담은 항아리는 돌처럼 무거웠고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집에서 호되게 혼날 마음이 더 무거웠다. 자식보다 허벅이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라 깨지면 쫓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정수기를 두거나 생수를 시켜먹지만 없던 시절에는 허벅이 시대의 정수기이자 배달물이었다. 허벅 뿐만 아니라 그릇, 종지, 대접, 병 등 생활옹기들도 다종다양했다. 육지에서부터 가볍고 저렴한 플라스틱과 수로가 개선되며 허벅사용은 급격히 줄었다.물허벅이 깨질 일도 혼날 일도 없었다. 쉽고 가볍고 깨지지 않았다. 이제는 허벅이 보존민예품이 되어 박물관에 가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 , 000 여점 이상의 제주옹기를 비롯해 전통초가의 대들보, 기둥, 마루, 문짝, 창틀 등으로 쓰인 목재들, 함지박 등 버려지 는 ‘제주의 것’들을 차곡하곡 모아온 컬렉터의 소장품은 엿볼 기회는 있다.

개인 소장으로는 가장 많은 제주 옹기를 가졌다고 입모아 이야기한 컬렉터. 이기정 수집가를 만나 바깥 육지 으로 나가는 제주옹기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수집으로 확장됐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대학시절부터 옹기를 모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수집의 길을 걷게 되었나.
A. 대학교 3학년일 때라 75년도였을 거다. 미술교육을 전공했던 연유로 교수님을 따라 여 기저기 다녔다. 골동품 가게에 출토품을 감정하러 갈 때면 이것저것 눈여겨보기 위해 쫓아 갔다. 그곳에는 고려청자나 백자 등 좋은 것들이 상당했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좋은 품질의 도자는 수백만원대로 꽤 비쌌고, 옹기는 십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제주옹기수집의 시작은 간단하다.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옹기를 내 마음의 달항아리’로 여기며 수집하기 시작했다. 분청, 백자, 청자 등은 인기가 많아 가격대가 높았다. 투박하게 생긴 옹기는 그들에게 매력을 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나라고 좋은 청자 백자를 안 갖고 싶겠나. 그러기엔 학생 주머니는 얇았다.

Q. 국내에는 옹기를 보유한 여러 박물관과 개인 수집가들이 있는데, 소장 중인 제주옹기 는 어떤 기준으로 모은 것인가.
A. 제주 옹기만 샀다. 특히 좋은 제주 옹기들을 많이 샀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미술 선생으로 지내면서도 월급 보너스가 들어오는 족족 옹기를 샀다. 골동상에게도 좋은 옹기 가 있으면 육지에 주지 말고 내게 팔라고 했다. 시골을 다니며 할머니들에게 직접 사기도 했다. 학생들 수업에 옹기 한 두개씩 가져가 직접 보여주기도 했는데, 교육용으로 시작한 마음도 있었다. 한향림옹기박물관과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분은 육지항아리 중심이고, 난 오직 제주것만 모으니 우물 안 개구리라 할 수 있다.

Q. 많은 옹기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한 것인가.
A. 광택이 고르고, 만졌을 때 만질만질한 것에 손이 간다. 제주옹기는 따로 유약을 입히지 않고, 가마에서 자연스럽게 입혀진다. 불길이 많이 닿은 부분은 색이 진하고 광택이 강한 반면 덜 닿은 쪽은 그렇지 않다보니 표면이 균일하기가 쉽지 않다. 옹기 외에도 분청 백자청자 등도 모았는데, 박물관 사람들이나 일본에서 사가고 남은 것들을 구입한 것들이다. 깨진 것들이 대다수인데, 부장풍습에서 도굴방지 차원으로 도자일부를 깨뜨려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한 채로 남아 있어 수리하면 쓸 만 했던 것들이다.

Q. 주요 수집품은 무엇인가.
A. 물항아리부터 장담는 항아리, 소금단지 등 쓰임이 많았던 제주옹기가 대부분이다. 제주는 집집마다 허벅이 있었고, 식구마다 이고지고 다녔다. 애기허벅은 어린아이들이 물을 기를때 사용한 작은 허벅인데, 자식보다 허벅을 귀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소금은 귀해 작은 단지에 넣어 보관했고, 신안군에서 배로 가져오다보니 비쌌다. 물항아리가 곧 쌀항아리 가 되고, 참기름, 간장 등을 담은 병도 쓰기 나름이었다. 현무암으로 만든 항아리 뚜껑도 있는데, 된장에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대개 옹기접시를 엎어서 덮거나 옹기 항아리엔 옹기뚜껑이 있는데, 특별하게도 돌로 된 뚜껑이다. 술을 증류할 때 썼던 고소리 두 개의 작은 항아리를 붙여 만든 모양에 주구를 달았다 는 비싼 가격에 주고 샀다. 제주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 들이고, 사람들이 옹기의 맛을 잘 몰랐기에 살 수 있었던 것들이다.

Q. 어디에서 모은 것들인가.
A. 골동품 가게에서 좋은 옹기가 들어오면 연락이 온다. 예전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나왔지만 좋은 옹기들은 육지로 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많던 골동품 가 게도 사라지고 한라민속관과 고은당 두 곳만 남았다. 제주대를 졸업하고 석사공부하러 육지로 건너가 지냈는데, 당시 인사동에 가면 희귀한 골동품이나 질좋은 제주옹기가 많았다.

Q. 옹기 뿐만 아니라 여러 제주민예품을 수집한다고 들었다. 어떤 물건들이 있나.
A. 제주전통초가의 마룻바닥, 기둥, 창, 대문 등 목재들도 모았다. 느티나무, 가시나무, 조록이 벚나무 등 좋은 나무들로 만들었다. 유명 건축가나 서울 유명카페에 가보면 제주문짝, 통나무들이 눈에 띄인다. 늦더라도 제주의 것을 지켜보자는 생각에 모으기 시작했다. 제주 궤, 그릇이나 음식물을 넣어두는 살레, 쌀을 담아둔 통두지, 나무농기구, 가마솥 등 제주물건은 제주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모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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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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