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19.08월호 | 특집 ]

특집1) 제주인의 삶을 품은 제주옹기와 미래가치
  • 편집부
  • 등록 2020-06-01 15:48:02
  • 수정 2020-06-05 16:04:03
기사수정

 

Special Feature

제주옹기

지금까지 옹기는 지역별 옹기의 역사와 의미, 미래 전략과 문제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는 주제를 가지고 이뤄졌다. 제주옹기를 단순히 국내 옹기를 소개하는 하나로 바라보는 것은 건강한 관점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쯤에서 제주옹기의 가치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명할 수 있는지 성찰할 기회로 삼을 때 비로소 제주옹기가 발전할 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제주옹기에 대한 현재적 의미와 과거-미래를 관통하는 관점을 살펴보고 이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과 영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멀었던 곳 제주, 지루하게 생각한 전통, 옛 것으로 여긴 옹기가 이제는 가장 가깝고, 세련되고, 근사한 제주도기로 변화하며 오늘날의 이야기를 잇는 시작이 되길 희망해본다.

 

Special Feature I

제주인의 삶을 품은 제주옹기와 미래가치
글.오창윤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문화조형 디자인전공 교수

제주는 매력적인 섬임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은 제주를 우리나라의 한 지역이면서 이국적 느낌이 드는 곳 으로 이해한다. 제주는 겉으로 보이는 이런 점 외에 제 주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와 풍습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는 한 집단에 주어진 여러 환경여건에 맞게 적응 하면서 생겨난 집단의 생활양식이며, 언제나 자연환 경에 제약되고 지역문화의 내용을 규정한다.

제주의 문화가 제주라는 풍토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발달하는 것처럼 제주의 도예문화 역시 풍토와 자연환 경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제주의 도예 문화는 토기 와 옹기로 설명할 수 있으며, 토기의 경우 신석기 토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고산리식 토기가 출토 된 지역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 경부터 서귀포시 대정읍을 중심으로 생산된 제주 옹기는 내륙의 옹기와 비교해 점토, 가마, 제작 방법, 운영방식 등 독특함이 많으며, 최근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제주 옹기는 제주인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실용적인 생활품이다. 무엇보다 제주의 지형적, 지질 조건에 영향을 받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색채는 제주토질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형태와 기능은 실용성을 위주로 제주 환경에 맞게 고안되었다. 이렇듯 제주 옹기는 제주라는 환경과 제주인의 삶에 의해 생겨나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며 살아간 삶의 일상이다. 이는 제주 옹기 속에 제주의 문화 특성이 잘 드러나 있고 제주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감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제주 옹기의 기원과 발전과정, 조형성, 현재의 제주 옹기의 상황을 살펴보고 보존과 창 신 創新 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풀어보고자 한다.

제주옹기의 기원과 발전과정
제주는 지질 구조의 영향으로 자기가 생산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생활도구를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사용해 왔다. 물론 제주 옹기가 생산되기 이전에는 육지부에서 자기와 옹기를 수입해 사용하였는데 이는 공급경로 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으며, 이런 점이 제주 옹기의 제작 갈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까지 제주 옹기의 제작이나 사용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있으나 정확 한 시기는 알 수 없고 남아있는 문헌상에 기록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마와 관련된 문헌을 보면 가장 이른 시기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 가마와 관련된 기록이다. 고려 원종 11 년 1270 년 몽골과 대항하여 싸운 삼별초군이 ‘탐라에서항파두리성을 축성하여 1273 년 5 월까지 항쟁했다.’ 1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삼별초군의 대몽항쟁은 시간 상으로 만 2 년 반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주문 화에는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기와를 굽는 기술과 가마가 제주로 들어왔으며, 남아있는 기와 파 편을 통해 그 시기 우수한 기술력을 추정할 수 있다.

제주 옹기와 관련된 문헌 및 명문 자료는 제주풍토록 濟州風土錄 ,  서재집 書齋集 , 명암집 鳴巖集 이증 李增 . 남사일록 南槎숙종 5 년 1679 년 12 월 7 일부터 숙종 6 년 4 월 기록 숙종 28 ~ 29 년 1702 - 1703 년 에 작성된 남환박물지산편 南官博物 誌産篇 ,  조정철 趙貞喆 1751 - 1831 년 , 헌영해처감록 靜軒瀛海處坎錄 등 에서 제주 옹기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헌 중 제주 옹기 생산을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은 숙종 28 ~ 29 년 1702 - 1703 년 에 작성된 남환박물지산편 南官博物誌産篇 과 조정철 趙貞喆 1751 - 1831 년 이 쓴 헌영해처감록 靜軒瀛海處坎錄 이다.남환박물지산편 南官博物誌産篇 에는 ‘瓦, 甕器, 木器, 銀, 銅, 及藍이 제주의 산물로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의성 소녀들 뙤약볕 아래로 치마도 적삼도 아닌 옷을 입고 십자로 근방 성 바깥문에서 물병 지고 물 길러 가며 재잘거리네. 물 긷는 여자들은 큰 병 大甁 을 대바구니 竹筐 에 넣어 등에 지고 간다. 旌城少女値朱炎 下不爲裳上不衫 十字 街頭 闠闠 地 負甁汲水語 喃喃 汲水女 以大甁納竹筐 負而行 ’

두 문헌의 기록으로 제주 옹기는 17 세기 초반인 조선중기 경에 적어도 제주에서 생산됐던 것으로 보고 있으며, 대바구니에 물허벅을 넣고 물을 길어 나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옹기의 제작기술 유입은 전라도 지방을 통해 들 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추정하는 이유는 과거 다양한 생활용기들이 전라도를 통해 들어온 근거가 남아있고, 제주 옹기 제작 기법이 전라도 옹기 제작 기법과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제주에서 옹기가 생산되기 이전에는 전남 강진군 칠량면이나 경상남도 고성 등지에서 생산된 육지의 옹기들이 배에 실려 강진 을 통해 제주로 유통됐던 기록 또한 남아있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 옹기는 제주 옹기의 전성기, 제주 옹기의 단절기, 제주 옹기의 복원기, 제주 옹기의 재발견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선 중기를 시작으로 1900 년대 초반까지의 전성기, 70 ~ 90 년대 단절기, 90 년대~ 2000 년대 초까지 복원의 시기를 거쳐 현재는 재 발견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절의 시 기를 거친 이유는 1948 년 4 . 3 사건의 영향과 플라스틱 용기의 등장, 식생활의 변화, 현대화의 바람에 맞물려 70 년대 초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시기 옹기업에 종사했던 많은 사람은 감귤 농사와 다른 업에 종사하게 됐고, 이후 제주 돌가마를 비롯한 옹기 관련 유적들은 농업구조의 변화 귤 농사와 도로 공사, 시간에 흐름 등에 의해 많은 곳이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보존이 양호한 몇몇의 가마가 남아있어 제 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58 - 1 호 구억리 섯굴 노랑굴 와 58 - 2 호 구억리 검은굴 , 58 - 3 호 신평리 앞동산 노랑굴 , 58 - 4 호 신도리 일곱드르 노랑굴 로각각 지정 보호되고 있다는 점이다.

20 여 년 동안 제작되지 못했던 제주 옹기는 1990 년대 에 들어오면서 몇몇 전통옹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제작되면서 복원의 시기에 들어선다. 1990 년에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대정농공단지 속에 제주 도 예원이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토기 화분을 제작 하던 제주 옹기마을이 다시 옹기 제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0 년대 제주 돌가마 도예연구소 ( 2002 ) , 껌은 굴 ( 2007 ) , 제주전통 옹기 전승보존회 ( 2008 ) 가 각각 만 들어져 사라졌던 제주 옹기 제작의 맥을 잇고 있다. 또한 1998 년 제주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서 제주옹기문화연구회가 창립되어 제주 옹기 관련 워 크숍과 전시를 통해 제주 점토와 옹기의 우수성, 옹기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2010 년 11 월 (사) 제주 전통 옹기 전승 보존회와 구억리 마을이 주축이 되어 제주옹기박물관이 개관하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박물관 활성화를 시키지 못하고 휴관에 들 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 년에 결성된 (사) 제주 전통 옹기 전승보존회의 노력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는 옹기굴제의 개최는 현시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과거 옹기업에 종사했던 사람 중 생존해 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이분들의 나이는 70 ~ 90 세로, 실질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분이 몇 분밖에 없다. 더 늦기 전 에 과거 제주 옹기에 대한 녹취사업 및 자료 아카이빙 사업이 시급하며, 한번 단절되었던 과거의 아픈 경험 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

.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월간세라믹스
전시더보기
작가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