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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월호 | 특집 ]

특집1)국내 공예잡지의 역사와 흐름
  • 편집부
  • 등록 2020-03-30 13:34:56
  • 수정 2020-08-19 03: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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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I

시대의 한계와 어려운 경영 속에 빛난 발행의 발자취
<한국 공예잡지의 역사>
글.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우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국내잡지 역사의 발자취를 다룬 전시 <미술을 읽다-한국 미술잡지의 역사>가 작년 11월부터 3월까지 열리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번 기획전은 종이 잡지, 신문의 퇴보시대 우리나라 미술잡지 의 100년 이상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로 전시와 연계 한 강연회 4회와 단행본도 발간됐다. 우리나라의 최초 미술잡지는 무엇일까? 그동안 서화협회에서 발행한 1921년 10월 『서화협회회보』가 최초로 알려졌는데 1917년 4월 동 양미술협회 이사장이었던 야마구치 세이가 편집 한 『미술과 공예』가 개인 소장가에게 나와 전시회에 소개했다. 야마구치 세이는 동양문고 주임으로 총독부의 적극 적인 지원을 받아 주요 간행물을 발행 하고, 수집 기증도 받았다. 2호는 1917년 6월에 발간되었고, 두 권의 잡지 내용은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화보, 조선회화, 조선 전래의 다완, 낙랑의 고분 발굴품, 서화골동 안내, 잡록, 회원의 소리 등 다양한 미술공예가 실렸다. 비록 일본인이 만든 잡지이지만 경성 서울에서 발행됐고 한국미술을 수록했으니 최초의 한국 미술잡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격적인 공예잡지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월간 『디자인』 을 발행해 온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가 디자인과 공예 를 분리해 운영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1988년 3월 『월간공예』를 창간했다. 특집으로 ‘한국 공예의 현황과 공예 전문지의 역할’을 다루었고, 제1회 디자인 공예 평론 및 논문상 도 공모했다. 당시 판매가격은 4,000원이었다. 하지만 4년 뒤, 1991년 3월 디자인과 공예를 합쳐 제호를 『디자인 + 공 예』로 변경하여 혁신호를 내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9명을 소개했다. 그러나 1년 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두 분야의 발전·모색을 위해 1992년 3월 『미술공예』를 다 시 창간하였고 한권당 5,000원에 판매했다. 그렇지만 『월간 공예』는 창간 7년만에 1995년 2월호를 종간호로 공식 폐간하였다.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우리 공예계는 아트디렉션과 테크닉 어느 한쪽도 우세하지 못하며 혼미한 상태 에 있고 나아가 공예의 정신인 장인 정신도 어떤 산업 제품에서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기 구독자 6천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나전칠기.목칠공예』는 1989년 6월 한국나전칠기보 호협회 중앙회 이칠룡 회장이 발행한 잡지로, ‘전통공예는 보호·육성되어야 하며 나전 칠기와 목칠 공예의 올바른 재 정립과 계승을 위한 기록으로 발행한다’고 창간사에서 발 행의 필요성을 밝혔다. 인간문화재 나전장 제154호 심부길 부부를 표지로 실었으며, 창간 특집으로 ‘나전칠기 목칠공예를 살린다’를 비롯해 문화재 관리국이 발행하는 중 요무형문화재 해설집 공예기술편의 오류를 지적했다. 당시 잡지가격은 2,000원. 4년 후 1992년 1월호부터 분야를 확장해 제호를 『공예문화』로 변경하며 판형도 바꾸고 권 당 4,000원을 판매했다. 칠공예가 강창원, 전통 공예가 소개, 관련 단체 탐방, 제작기법 및 용어 해설 등을 이어갔으 며 1994년 5월 통권 60호로 중단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최로 우리 사회 전반에도 큰 변화 를 맞아 미술잡지 창간도 홍수를 이루었다. 1988년에 발 행된 잡지는 『아트포스트』 , 『월간공예』 , 『가나아트』 , 『미술 신문』 , 『주간미술』 , 『포토291』 , 『아트뉴스』 등이 있고, 1989 년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해오던 『계간미술』이 『월간미술』로 바뀌었고 『동양화』 , 『서화정보』 , 『사진예술』 , 『미술시대』 가 줄을 이었다. 놀라운 것은 미술잡지가 주간잡지로 나와 『선데이서울』처럼 지하철 가판대에서 팔렸다.
 

 

1990년대 이후 상황
90년대 들어 『월간도예』가 1996년 4월에 새롭게 창간됐다. 세라믹 신소재, 기술을 다루던 공학잡지 『월간 세라믹 스』내 부분지면으로 소개하던 도자예술을 분리, 새롭게 창간했다. 김영수 문화체육부장관은 축사에서 “현재 50여개 대학에 도예관련학과가 설치되어 한 해 1000여명의 졸업 생이 배출되고 1년에 400건의 도예전이 열린다며 도예 종합정보 전문매체로서 기대한다” 고 밝혔다. 창간 특집으로 조형 성형 소성 유약, 국내 도예전, 세계 도예지상전, 해외 작가 도예단체 등을 실었고 가격은 5,500원. 1998년 3월 시각디자인사 김상순이 『현대공예』를 창간했지만 곧 폐간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2001년 8월에 『월간 크라트』가 발행되었고, 이레디자인의 김동운대표가 발행인겸 편집인으로 창 간사에서 “모두가 생활곳곳에서 공예를 만나고 가깝고 쉽 게 즐길수 있는 대중적 공예문화가 꽃피는 세상이 되길 바 란다”며 바램을 내세웠다. 때마침 도자비엔날레로 첫 해를 맞이한 <세계도자기엑스포2001> 경기도 행사 를 특집으로 시 의성있게 소개하며, 국제공모전 수상작가 인터뷰, 공예이 야기, 작업기법, 해외소식 등 폭넓은 내용을 다뤘다. 판매가격은 8,000원. 그러나 2003년 11.12월부터 격월간으로 바뀌고 2004년부터 판형을 줄이면서 공예문화 살리기 운동으로 공예교육시간 입법화를 위한 일백만 공예인 서명 운동을 펼쳤다.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공예인 스스로 외면하는 공예전문지는 소리를 낼 수 없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2005년 판형을 다시 키웠지만 독자의 한 계에 부딪쳐 2007년 7월호로 중단되었다. 2004년 4월에 크라트에서 작은 정보잡지로 중철 『크라트리뷰』 를 별도로 발행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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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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