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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월호 | 특집 ]

도자 중요무형문화재의 현실과 미래- 나의 아버지 김정옥
  • 편집부
  • 등록 2018-02-04 23: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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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휘지의 붓끝으로 그린 순박한 모습의 호랑이가 담긴 백자 항아리

 

 

 

 

도자부문 최초 명장, 한국 도자역사상 최초이자 유일의 중요무형문화재, 필자의 아버지 백산 김정옥이라는 이름 앞에 100년, 200년 후에도 아니 영원히 함께 따라다닐 수식어다.
1996년 아침, 9명의 중요무형문화재 심사위원들께서 우리 집 앞마당을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버지께서는 그 분들의 뒤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다. 9명의 문화재청 관계자분들 앞에서 더욱 당당할 수 있었던 아버지, 백산 김정옥. 본인은 도자부문 중요무형문화재의 현실과 미래의 모든 것이 이 순간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큰 항아리를 빚었던 증조할아버지는 고고미술사를 전공한 수많은 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손녀인본인의 동생에게 조선시대 기록에 실린 자신의 존재를 처음 드러내었다.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필연의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어김없이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그의 현재를 보라. 아버지께서 이름 없는 사기장으로 살았던 지난 50년의 세월들, 그 어느 하루의 삶도 성실하지 않았더라면,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어찌 아버지의 이름 앞에 올 수 있겠는가? 당장 다음 달의 생계조차 막막했던, 희망이라고는 힘들 때마다 더욱 목청껏 부르시던, 아버지의 유행가 노랫가락에서나 찾아볼 수 있던 그 시절에도 아버지의 물레는 찾아 주는 이 없어도얼마나 홀로 열심히 돌고 있었던가? 우리가 이것의 의미를 가벼이생각한다면 전통이라는 두 글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광고와 홍보의 문구들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전통이라는단어가 등장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전통 도자를 이어가고 있는사람들의 현실이고 또한 희망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본 글을 청탁받고 처음 드는 생각이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996년 도자부문 중요무형문화재가 지정되던 그 순간의 나의 아버지처럼, 아홉 분의 문화재청 관계자분들의 3시간 동안의 쉼 없는 질문에 단 한 번의 걸림 없이 모두 답할수 있었던 그때의 그 아버지처럼 도자부문 중요무형문화재의 현실과 미래라는 주제의 글을 막힘없이 써내려 간다.
아버지의 과거도 내 할아버지들에겐 그들의 미래였기에. 내가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아버지는 명장이나 중요무형문화재가 아닌,가난하고 이름 없는 한 사기장이었기에. 그 간단치 않았던 세월을겪어내며 한 분야의 일인자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본인의 두 눈으로 보아온 세월의 기억들이 있기에, 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대를잇는다는 것은 선대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 함께했던 그 순간들이마치 그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몸속에 녹아흐르는 그런 것일 것이다.
도자부문 중요무형문화재의 현재와 미래는 어느 한 가문의 현재와 미래가 아닌, 전무후무한 최초의 명장, 최초이자 유일의 중요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의 눈부심 때문에 전통도자의 대표 선수라고 하는 아버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지키고 보호해야할 국가의 소중한 보물임을 모두가 잠시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본다.
2012년 2월 서울 안국동에 ‘백산가’를 오픈했다. 4년여의 세월을가문을 알리는 일에 몸담게 된 것이다. 1981년,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땀방울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마에서 불씨를 옮겨 지금의 문경 영남요 자리로 오실 때, 그때 아버지의 막막했던 시간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안국동에 백산가를 오픈하던 그 순간 나 또한 얼마나 막연한 미래에 내 모든 것을 걸었던가? 하루를 앞 다투어카페와 옷가게, 화장품, 액세서리 가게가 생겨나고 있는 이 거리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전통도자 전시장 ‘백산가’를 연 것이다.그리고 지난 4년여의 시간들 속에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의미와 수없이 오르내리며 흙을 감싸던 손길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사람은 단한명도 없었다. 첨단 디지털 물질문명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우리 모두는 저 위에 두둥실 뜬 달항아리처럼 누구의 마음이라도 넉넉하게 품어줄 것만 같은 다정하고 따스한 손길을, 한편으로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가도 깨닫게 되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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