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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월호 | 특집 ]

한국도예, 지금 KOREAN CERAMIC NOW
  • 편집부
  • 등록 2018-01-30 00: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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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특집에서는 유산, 전시·행사, 교육·학술, 세계화라는 4개의 키워드로 나눠 각 분야 전문가의 4인의 제언을 듣는다. 문화유산과 미술사적 맥락 위에서 태동된 우리 도예의 역사적 의미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되돌아보고, 도자문화 창조를 위한 인력 양성 교육과 그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뤄져온 학술연구의 흐름을 짚어본다. 또한 시대별로 변화해온 전시 지형과 양상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과감히 변모하고 있는 세계 현대도예의 움직임과 그에 맞춰 적응하고 있는 우리 도예계의 현실과 미래를 가늠해보았다.
본지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본 특집기사를 통해 이 시대 한국도예의 위치를 명확히 진단하고, 앞으로 한국도예가 우리의 예술 생활 문화의 영역 안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 선도해나갈 수 있을지 예상하고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마다 쇼지 「철사발회편호」 1948년

 

정신적 유산으로서 도예의 전통을 생각하며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이 세간의 화제였다. ‘세기의 대국’이라고도 불린 이 대결은 그동안 놀랍도록 발전한 컴퓨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함과 동시에 인간성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게 했고, 한편으론 인공지능이 개입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도구들은 그 동안 수도 없이 발명되었고 이때마다 괄목할 만한 인류 문명의 발전에 뒤따른 문화적 충격과 대응은 끊임없었다.
19세기 초, 현실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술계가 겪은 당혹스러움과 변화 역시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사진에게 완패당한 초상화가나 기록화가들은 사진을 ‘악마의 도구’로 치부하고 스스로를 귀족미술로 차별화시키고자 했고, 이후 인상파나 입체파 같은 선구적 현대미술Modern Art 양식들이 지금까지 회화의 본령이었던 사실성을 극복하고 인간의 시지각이나 예술인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진의 발명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기계의 능력과 차별화된 인간성을 찾으려는 인류의 강박이 시작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근대 산업사회의 핵심가치가 되면서 산업혁명 이후 공예의 기준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대량생산으로 보편화․저급화되는 생활 속의 미美를 회복시키고자 1860년대 시작된 영국의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 Movement은 유럽 공예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순수미술과 수공예의 통합이라는 ‘미술공예’ 정신을 탄생시켰고, 이후 전개된 아르누보, 아르데코, 유겐트스틸 같은 장식미술 양식의 근간이 되었을 뿐 만 아니라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예술․공예․산업 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서구의 도예부흥 움직임은 수공예적 도예가 산업(디자인)과 차별화된 순수예술임을 확인․선언하는 쪽으로 전개되었는데, 2차 대전 이후 꽃피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도예, 펑크, 슈퍼오브제, 도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우연성, 예컨대 자동기술Automatism테크닉에 내재된 의식(또는 무의식)의 구현은 흙의 유연함과 불의 변덕스러움을 다루는 도예의 본질과 매우 닮아있다. 당시 많은 서구의 도예가들이 의식이 내재된 이지적인 순수미술로서 도예의 잠재력을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도예에서 찾았는데, 이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재창조되는 문화의 역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영감을 준 토미모토 켄키치富本建吉, 카와이 칸지로河井寛次郎, 하마다 쇼지濱田庄司 같은 20세기 초 영향력 있는 일본의 현대도예가들이 분청사기나 백자와 같은 조선의 자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도예의 개념이 자리 잡은지 어느덧 100여 년이 지났다. 20세기 초 한국의 도예 역시 당시 서구사회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당혹감과 변화를 경험했지만, 무려 420여 년간 명맥을 이어 온 조선의 분원관요分院官窯가 해체된 1884년 이후 전통의 구심점을 상실한 상태로 외세에 의해 급격히 근대화되면서 자주적인 진로 모색의 기회를 갖지 못한 점은 큰 차이점이자 아쉬움이다.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수구적 태도로 현대문명을 배척했고, 전통적으로 기예를 천시하던 문화적 아노미현상이 한동안 지속되면서 한국 근대도예는 물산장려운동 차원의 수공예품 생산과 일제의 골동취미에 부합하는 청자 모조품 제작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 근대기에 싹튼 도예의 개념은 과거에 단절된 신라토기나 고려청자, 분청사기 등의 옛 기법과 모습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수공예적 전통기술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광복 이후 유입된 여러가지 형식의 현대도예Modern Ceramic Art와 구별하여 이른바 ‘전승도예’로 정의되어 왔다. 20세기 전승도예는 외세의 자본과기술, 골동취향에 떠밀려 고유의 전통을 주체적으로 계승하기 힘든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물의 아름다움과 그 신비한 기법을 재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전승도예는 현대도예Contemporary Ceramic Art로서 예술성과 공감대를 얻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했다. 수공예적 전통기술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오히려 현대문명과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이다.
적어도 8,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도자전통이 물려준 유산은 당대 최고를 자랑하는 기술력과 자부심 그 이상일 것이다. 먼저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한국도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적극적인 대외교류의 자세이다. 삼국시대 한漢나라의 영향을 받은 저화도 연유도기鉛釉陶器와 일본으로 전파한 고화도 경질토기硬質土器, 이어서 중국 월주요越州窯 기술을 수용해 발달한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를 통해서 선진기술을 과감히 받아들여 고유한 도자문화를 창조하고 다시 외부로 전파하는 한국도자의 속성과 자세를 볼 수 있다. 또, 천하제일로 칭송받던 고려의 비색翡色청자와 조선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준 분청사기, 그리고 엄정한 품격으로 통치이념과 생활문화를 담아내고 일본에서 최고의 다완으로 추대받은 조선백자에는 저마다 고유한 자연․인문환경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한국인의 정서와 조형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의 대학 도자교육과 학술연구

 

2016년 3월 중반,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경기가 우리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디지털의 영역인 알파고의 승리로 끝나기는 하였으나 이세돌이 거둔 1회의 승리에 보내는 갈채와 위안은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영역에 보내는 우리의 마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미래의 세상은 인공지능 혹은 로봇과 기계가 일상화될 것이라 막연하게 예측하고는 있었고,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알파고의 연달은 승리로 인하여 인간이 인공지능 혹은 로봇과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미래가 읽혀졌으나, 이세돌의 모습과 행동에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기계와 차별되는 심리와 인품을 읽으며 크게 위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자는 도자를 포함한 공예 영역에서 공예인들이 겪어왔고 또 앞으로도 겪어내야 할 과제들이 떠올랐다. 인류의 선사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진행되어온 도자의 역사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인가 외부의 힘에 밀리기 시작하였다. 굴곡의 역사 속에서 서구의 근대와 현대적인 개념을 받아들이며 대학의 도자교육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는 예술과 디자인의 틈바구니에서 갈등을 겪으며 확장과 변모를 거듭해왔다. 과연 인공지능 혹은 로봇과 기계가 일상화된 미래의 세상에서 도자는 살아남을까?
필자는 도자인들이 1980년대까지 예상치 못하였던 2016년의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미래의 강화된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도자예술 혹은 도자공예는 단연코 인간에게 더욱더 필요한 영역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왜냐하면 디지털 사물들이 인간의 육체적인 일을 대부분 담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인간의 아날로그적 기능들과 감성들을 대처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한 인간은 선사시대로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공예적인 행위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들을 축적해온 DNA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도자 장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왜 도자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지를 설득해야만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한국 대학에서의 도자교육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어왔다. 대학 도자교육의 주체가 도자교육 담당자가 아닌 대학 본부의 정책에 의해 결정되고 교육내용은 메뉴에 따른 유행처럼 수용되고 변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학 도자교육은 별다른 주체적 노력없이 유지되고 있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대학 도자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주체들은 임기응변적인 대응보다는 근원적인 해결책들을 모색하여 도자교육의 시대적 당위성을 입증해야 한다.
대학 도자교육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의 대학 도자교육이 내재적인 가치와 역할, 구조적인 틀을 형성하는 근원으로 작용한 시기는 근대라 할 수 있다. 도자교육의 잠복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일본과의 교류와 식민지 상황에서 미적 가치와 민예民藝의 개념을 변형 없이 수용하였고, 대학교육이 근대적 신분체제와 차별화하고자 하였던 엘리트주의적 교육관으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도자교육은 근대적인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에서 또 다른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다.
1958년 홍익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출발한 대학의 도자교육은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일본인들의 한국 도자기 수집열에 따른 경제적인 호황과, 이로 인한 도자제작 기술 발전과 도자계의 활력으로 비교적 순탄하게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는 많은 대학에서 도자교육이 시행되어 도자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각종 도예 관련 단체들의 창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0년대 도자인들의 해외유학과 해외여행 등으로 도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유입되어 도자계가 다양하고 활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오브제화 경향의 증가 추세는 한편으로는 196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으로 추진한 경제개혁이 성공하고 산업체의 일상용기 제품들이 넘쳐나 수요가 줄어들어가는 현실에서 도자인들이 택할 수 있는 길 중의 하나였고, 다른 시선으로 보면 미국의 현대도예가 도자인들의 창조적인 욕구를 발동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 이 시기 동안 도자인들의 개인전과 단체전 및 국제교류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대다수의 대학 도자교육은 오브제화 경향을 교육의 내용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오면서 오브제화 경향의 도자로는 도자인의 생계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면서 여러 대학에서 도자교육을 디자인 및 산업과 연계시키는 교육내용을 도입하였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시되기 시작한 산업체의 실정에 맞추어 디지털화 시스템을 도자와 연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화 경향의 도자에서는 크게 요구되지 않았던 캐스팅 기법의 비약적인 발전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공예과 혹은 도예과라는 명칭 대신 ‘디자인’을 포함시키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한국 현대도예 전시의 현실 그리고 미래적 대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2015년 문예연감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에서 열린 공예 관련 전시 수는 총 1,140건이었다.1) 공예 전시 관련 조사 자료인 <공예백서>에서 매번 국내 공예전시 중 도예분야가 1/3이상 차지하는 것을 보아 한해 국내에서 열린 도예 관련 전시는 400여건 정도로 추산된다.2)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전시 횟수가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긴 하지만, 우리 도예계에는 월 평균 30여회의 개인전과 단체전(기획전 포함)이 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문예연감과 공예백서에 따르면 모두 2012년을 기점삼아 점차 공예전시 횟수가 감소 추세다. 이마저도 서울, 경기지역에 80% 정도가 집중되고 있다. 이런 지표들은 한국 도예의 무엇을 보여주는가? 매년 400여 건 열리고 사라진 전시들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이야기했으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조망했는가? 한국 도예는 지금 어디 즈음에 서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도자표현의 트라이앵글-축의 붕괴
전시는 한국 현대도예의 오늘을 확인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현장이다. 작가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흙과 불을 상대 삼아 씨름한 작품들을 들고 전시공간이라는 장에서 관객, 비평가, 큐레이터들과 만난다. 오늘날 한국도예 전시장場에는 ‘도예전’라는 타이틀 아래 조형과 공예, 디자인이 교묘히 공존한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스스로를 도예가, 공예가, 예술가, 디자이너로 지칭하며 그에 합당한 사물들을 만든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한 작가가 흙과 불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루었는지, 공예 혹은 미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나아가 작가가 만든 작품에서 우리 자신과 삶에 관해 생각한다. 우리가 발품을 팔아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는 이유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은 지금 우리 삶과 정신, 문화, 미적 지향을 드러내는 핵심 이미지이며 텍스트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흙과 불로만 구현 가능한 ‘오늘의 도자예술’이 있다.
한국 도예계에 지금과 같은 작가 양성 시스템과 전시문화가 안착하게 된 것은 70년대부터다. 대학교육의 확대에 따른 도예 인구와 전시 단체의 급증, 다양한 전시문화의 확산, 젊은 도예인들의 해외 유학 증가, 해외 도예문화와의 교류 확대 등이 활발해지면서 80년대에 본격적으로 현대도예가들의 독자적인 창작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이 시기 작가들의 창작지향은 급격히 실용의 기器에서 벗어나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을 바탕으로 기하학적 추상이나 추상표현주의 조형 양식이 대세를 이루었다. 90년대 이후에는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려는 대형조각, 설치, 건축도자 뿐 아니라 전사나 자기슬립 등 산업도자의 재료를 이용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단일한 예술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 타 분야와 결합하며 매체의 확장을 주도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90년대 한국 도예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2000년대는 순수미술의 조형 형식과 미학적 담론보다는 실용,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도예가가 손으로 만든 고급상품을 표방하면서 시장의 틈새를 공략하려는 시도들이 증가했다. 조명, 식기류, 인테리어 소품,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필요한 먹고 마시고 쓰고 즐기기에 족한 일상의 사물들이 도자공예 혹은 도자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나왔다.
고독한 예술가보다 사회 참여적이고, 혹은 무엇인가 차별화되는 자극적인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들의 욕망이 ‘도자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또한 도예가로서 자력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작업을 이어나가려는 도예가들의 생존의지, 디자이너 육성을 강조하는 교육제도, 정부의 공예 지원정책 이 삼박자가 맞물려 공예시장이 형성된 것도 최근까지 이들의 활동이 활발한 이유다.
문제는 최근 한국공예 창작 및 전시 지형이 급격히 상품위주로 기울고 있다는데 있다. 최근 우리 도예전시에서 도자예술이 무엇일까, 흙과 불, 유약, 소성같은 물질적 탐구 뿐 아니라 도자의 형태와 색채의 한계는 어디일까, 도자예술의 역사와 그와 연계된 우리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심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타매체와 도자예술의 표현과 해석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서구의 방식과 우리의 것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도 우리 도예가들이 반드시 해야 할 고민이다. 도예란 주어진 흙과 불, 환경이라는 조건에 대한 작가마다의 입장과 선택 그리고 행위의 결과다. 이는 그동안의 미술사와 도자사의 계보, 한국미술과 세계 도예계의 향배를 의식하면서 그와 차별화될 의미있는 자신만의 좌표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 결과물이 조형, 공예, 혹은 디자인상품을 만드는 그 무엇이든 말이다.
발 빠른 양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한국 미술시장의 변화 속에서 도자조형은 주류인 적이 없었다. 앞으로 그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며, 80년대와 90년대 도예계를 주도했던 조형은 이제 생명력을 다한 것이라는 자조적 목소리도 들려온다. 토기부터 백자까지 옛 도자유산 역시 당시 사람들에겐 유용한 실용적 사물이었으니,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후 끊어졌던 전통의 회복과 계승의 차원에서 80년대 현대성 모색을 위해 급격히 도입했던 서구조형어법인 도자조형이 쇠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해석도 들린다. 21세기 한국 도자가 조형을 버리고 공예와 디자인 상품으로 생존하는 것이 정녕 당연한 시대적 조류일까?
매체가 지닌 표현의 힘은 매체를 넘나들며 무한 증식하는 이종교배 속에서 나온다. 무한경쟁과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의 공예와 디자인이 반짝이는 재기와 기능성만을 무기로 변화무쌍하게 유동하고 급변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시대적 유행에 부응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성에서 많이도 아닌 한 발짝만 앞서나가야 하는시대다. 결국 시장 생태계 속에서 공예와 디자인이 살아남으려면 매체가 구동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의 공존과 상호적 진화에 기반을 둬야 한다. 즉, 각 매체가 지닌 내포적 표현의 다양성에서 외연으로의 확장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자공예 혹은 디자인상품이 지금보다 더 높은 창조성을 완성하려면 도자의 재료, 매체, 표현의 한계를 시험하고 한 개인의 고유한 감성과 기질에 기대어 우리들 삶에서 유래하는 모든 문제를 명확하고 날카롭게 드러내는 도자예술 표현의 축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벨기에 앤트워프에 자리하고 있는 언폴드의 작업실
드리스 베르부르겐Dries Verbruggen와 클레어 워니어Claire Warnier

 

현대도예의 새로운 변화

 

『월간도예』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필자에게 있어서 『월간도예』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규직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월간도예』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학창시절 서초동에 소재하고 있었던 『월간도예』에서 해외자료를 검색하고 기사 영문화 작업 및 감수를 했던 것이 좋은 인연으로 남아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창간 20주년에 즈음하여 『월간도예』 기자로 일했던 손문수 독립 큐레이터와 현재 『월간도예』 총괄 편집장인 김태완 편집장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되돌아보면 도예 관련 분야에 몸담았던 과거의 시간이 『월간도예』의 궤적과 일맥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을 했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떠올려지지 않지만 사람이 남았고 관계가 남아 있다. 전시와 학술활동을 통해 국내외 공예전문가들을 만났고 이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13년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와 2015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기획전시 준비 때문에 국내와 해외로 다니면서 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변화를 수용하고 표현하고 있는지 잘 관찰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현대도자는 변화의 흐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적 접근으로 과감한 표현을 수용하고, 동시대적인 모습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디지털화로 만들어지는 경향도 이러한 현상을 말해주고 있다.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가와 단체를 소개하자면 벨기에의 언폴드UNFOLD, 미국의 너버스 시스템N-E-R-V-O-U-S System 그리고 보케 드 브리Bouke de Vries이다. 이들은 무엇을 만드는데 있어서 방법과 방향은 각기 다르지만 시대에 맞는 혁신적 생각과 시도를 작품에 담고 있다.
언폴드는 오픈소스open source개념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전시켰다. 미적 감각과 과학적 원리를 효과적으로 융합시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할 수 없는 부분은 인터넷을 통하여 사람을 찾고 그들인 원하는 기술 보유자를 초대하여 프로젝트에 합류시킨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며 특징이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연구를 확장시키고 더욱 발전시킨다. 그들의 가장 혁신적인 시도는 ‘전자 장인L’ Artisan Électronique’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도자의 가장 기초적인 물레성형 기법을 전자화시켰다. 이것은 곧 점토를 만지지 않고 일종의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다. 언폴드 단체의 드리스 베르부르겐Dries Verbruggen과 클레어 워니어Claire Warnier가 개발했고 컴퓨터 그래픽은 팀 크나펜Tim Knapen이 만들었다. 인지 센서를 통해 손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컴퓨터상에서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형태를 조형하고 3D프린터로 실물 형태를 만들어 내는, 즉 출력하는 것으로 완성한다.
3D 프린터가 한참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도자기를 이런 방법으로 만든다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대단한 발전으로, 기물의 미적 완성도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변화를 수용하는 좋은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언폴드는 디지털 학회 등에서 이러한 방법론을 발표하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안성만 작가가 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2015년 공예트렌드 페어에서 선보인 바가 있다.
미국의 너버스 시스템N-E-R-V-O-U-S System의 경우도 같은 맥락이지만 그들의 소재는 도자가 아닌 나일론 또는 플라스틱이다. 공학기술과 수학을 전공한 두 명의 구성원은 컴퓨터와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의상과 장신구를 만든다. 그들의 작업공간은 보스턴 솜머빌Boston, Sommerville인데 그곳에서는 신소재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연구 허브Hub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며, 이와 같은 작은 단체들이 혁신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너버스 시스템의 의상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도 소장하고 있으며, 패션쇼를 통해 선보이기도 하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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