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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월호 | 특집 ]

전통의 색色, 현대의 색color
  • 편집부
  • 등록 2018-01-04 17:02:55
  • 수정 2018-01-04 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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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도자에서 태토 또는 유약의 빛깔이 아닌 ‘색色’이란 좀 더 낯선 느낌이다. 반면 현대 도자에서 ‘색color’은 익숙한 부분으로 보다 일상적으로 다가온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도자기의 색에 담긴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조선 후기 채색자기의 면면을 살펴보는 한편, 현대 도자에서 색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작업노트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백자동채시형연적白磁銅彩枾形硯滴」 높이: 4.8cm,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채색백자彩色白磁 –색과 형태로 말하는 솔직하고 세련된 취향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땐,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위한 탐색전이 한 판 벌어진다. 내 경우는 직업도 낯설고, 분야도 일반적이지 않아서 항상 질문이 많다. ‘도자기를 다루신다구요?’ ‘요즘엔 어떤 도자기가 제일 비싼가요?’ 항상 질문의 끝은 돈으로 이어진다. ‘투자 목적으로 산다면 어떤 게 좋을까요?’ 이 대화를 정리하는 방법은 내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어떤 도자기를 좋아하세요?’ 이어지는 대답의 주인공은 대부분 ‘달항아리’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소박한 아름다움에서 시작해서 백의민족얘기도 나오고, 완벽한 정형이 아니라서 마음이 간다고도 하고, 깨끗한 흰색이 아니라 얼룩도 있고 이지러진 자국도 있어서 정서에 맞는다고도 한다. 좀 안다는 사람은 ‘고려시대는 청자, 조선시대는 백자! 백자 중에선 달항아리가 1등!’ 이렇게 정답 맞추듯 말하기도 한다. 경청하고 있자면, 그들은 나에게 네 패도 펼쳐보라는 태도로 물어본다. ‘어떤 도자기를 좋아하세요?’

아, 기다리던 질문이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안다. 이름도 ‘보름’이라서, 나도 달항아리라고 말해 주길 기다릴 것이다. 재미있는 아재 개그도 던지며 센스를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하지만 난 아재 개그도 싫고, 이제 소박한 한국의 미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해맑은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휙휙 넘겨서 사진을 눈앞에 내민다. 목이 길고 예쁜 파란병, 그리고 빈틈없이 빽빽한 또 다른파란 빛 접시. ‘이게 뭐에요?’ 신기해하는 그들 앞에, 난 더 신난 표정으로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터치가 아름다운 갈색병. ‘멋있죠?’라고 물어보면 고개만 끄덕끄덕한다. 사진을 또 찾는다.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보여준다. 잘 익은 홍시같은 연적. ‘너무 예쁘지 않아요?’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이게 도자기에요?’ ‘우리나라 거에요?’ ‘네’ ‘요즘 만든 것?’ ‘아니요, 조선시대요.’ ‘정말? 중국 것 아니에요?’ ‘아니요.’ ‘진짜?’ ‘100년도 넘었어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질문과 답이 돌고 돈다.

 

이런 반응, 알고 있었다. 그렇다. 대부분 이런 도자기가 있었는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도자기로 이런 작품이 등장한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잘 아는 친숙한 그림이 있다. 책가도.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완상 기물들은 알록달록한 색에 기교가 넘친다. 그리고 풍속도 속 사람들. 먹고 마시는 그릇들이 파랑 빨강, 화려하다. 이런 그림의 이런 장면들은 또 우리 눈엔 낯설지 않다. 같은 시대의 작품들이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종류를 이어줄 필요가 있다. 수학문제를 풀 때, 두 가지 공식을 각각 알고만 있으면 뭘 하겠나. 서로 연결해서 이해해야 더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의 대표 자기는 백자이다. 분청사기도 있고 지방요에서 만들어진 많은 도기류도 있지만 관령官令으로써 집중했던 것은 백자다. 당연한 이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차 기술과 기교는 발전하고, 무역은 활성화 되고 또 모든 물자의 입수가 편리해지고, 사회엔 돈이 돌고 문화는 다양성을 가지며 진화한다. 그렇게 조선 후기는 갖가지 안료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조용한 백자가 점점 화려해질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게 되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는 화려함과 사치를 금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나라밖 신세계를 경험한 똑똑한 인간의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들 알다시피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고, 인간의 소유욕과 과시욕은 단어 그대로 욕망이며, 삶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무와 사무의 영역은 지금도 그렇듯이 언제나 한 끗 차이이고, 때로는 사적인 부탁이 공적인 업무 지시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결국 사번私燔의 확산은 분원分院이라는 왕실 관리 하의 관요官窯에서 자기를 생산하던 조선에서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어쩌면 관체제 운영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조선의 요업이 관요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민요民窯의 자생적 운영이 가능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면, 상호간의 자극과 해외 무역을 통해 얻는 영향력의 시너지로 아마 조선의 자기 제작 수준은 기술과 기교면에서 지금보다 더 놀라웠을 것이다.

 

일상에서 파생된 현대도자에 깃든 색

 

권나리 「物-DAWN」 glazed ceramic

 

색은 색상, 명도, 채도라는 3가지 속성을 가지며 하얀색부터 검은색인 무채색, 유채색, 그리고 그림자로 나눈다. 특히 생각과 느낌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미술에서 색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색은 예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서 장식적, 공간적속성을 대변하며 대표적 장식기법으로 인정 받아왔다. 도자의 범주에서도 색은 작가들의 성격, 감정, 심리, 행동 등을 표현한다. 우리는 색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반대로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도자기도 수많은 공정을 거쳐 탄생한다. 흙을 채집하고 수비하고 성형하며 장식한다. 그리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번조한다. 도자기 제작과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색Color이다. 현대의 작가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색을 통해 표현한다. 흙, 제작 기법, 유약으로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해온 색을 도자에 담고 있다.
도예와 공예, 미술의 모든 영역에는 색이 있다. 거대한 캔버스에 스며든 색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우리의 삶에 스민 오방색五方色 등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색의 다양성은 예술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색은 도자를 완성하고 연출하는데 중요한 마무리 단계로 적용되며 모든 요소를 지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색을 새롭게 발견하고, 일상의 숨겨진 미적 감성을 깨우는 ‘색’에 영감을 받은 3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풍경, 그릇, 감정으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권나리 풍경
권나리는 잔잔한 물 위에서 반짝이는 빛 무리, 짙은 어둠이 물러나고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타는 듯 노을에 화려하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만났던 순간 등 일상에서 만난 풍경에서 영감을 받는다. 또한 색을 기본 도형이자 물레를 이용한 작업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실린더의 형태로 표현한다. 그녀는 일상에서 만난 시간과 상황의 흐름들을 사진으로 찍어 모아놓고 정리하는데, 사진 안에서도 기억 속의 인상과 감정을 특정한 시간이나 장소,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색으로 표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매일 생활하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고 현실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삶속에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색의 변화를 도자 작업에 표현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작업노트를 인용하자면 ‘작업은 일상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 경험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선물과 같다. 한순간, 두 눈을 사로잡고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은 홀로 세상의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강렬했다. 이토록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경험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색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은 크다. 권나리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감정을 기록하고 제작한 작품을 통해 일상의 경이를 느끼게 한다. 또한 색이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기의 형태에서 사진으로까지 매체의 확장을 통해 기록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비물질적 개념인 빛, 소리, 바람 등의 현상을 실린더의 가상공간에서 재탄생됐다. 자연현상에서 오는 비물질적 요소는 물리적으로 느끼는 무게와는 다른 청각이나 시각 등의 지각에서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녀의작업적 공통점은 조화와 융합이다. 중립적이고 주변 사물이나 컬러를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힘을 가진 색을 주를 이루어 부드럽고 따뜻한, 차분하고 신비로운 색감의 조화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작가의 기억에 남은 순간을 지배했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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