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식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생활용기이며, 공인들의 오랜 경험에 의한 숙련된 제작법과 한국인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22일까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는 전국에 밀집해 있는 19명의 옹기장들이 참여한 <오늘의 옹기展>이 열렸다. 전시는 옹기라는 전승 도자를 각 지역별로 나뉘어 특징을 취합하고, 현대 생활에 맞게 제작된 옹기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오늘의 옹기展>을 기획하고 전시의 자문 역할을 맡은 네 명의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옹기의 현대화를 위한 제언을 담았다. 그리고 재료와 기능의 확장을 모색하는 과정을 담은 옹기를 확인할 수 있다.
시대성 담보를 위한 제언
옹기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다른 도자기에 비해 역사적 기원이 깊다. 또한 한반도 전 역사를 통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온 만큼 실용성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나 백자가 귀족이나 왕실과 같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다면, 옹기는 모든 계층에 빼놓을 수 없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했던 점에서 탈계급적이었으며, 따라서 대표적인 민예의 사례로 꼽힌다. 문화적 고유성에 있어서도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일상적인 주거생활은 물론이고, 농업과 어업 등 생산을 위한 도구로서 제작된 옹기는 오히려 고급한 문화에 속하지 않았기에 외세 문화의 영향 속에서도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조차 옹기가 문화적 원형을 유지해 온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실용성 그리고 문화적 고유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옹기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옹기라고 하면 음식 저장용 도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는 오히려 옹기의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제고하는데 저해가 되고 있으며, 생활환경의 변화와 다양한 대체 상품의 출현은 수요 감소와 더불어 경제적으로 뒷전에 밀려나고 있다. 또한 문화적 고유성에 대한 자긍심은 옹기의 창의적인 발현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전에 어느 옹기 작가는 그동안 여러 실험과정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었지만, 학계에서 누가 방문하면 일부러 숨겨 놓고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옹기가 아니다.”라는 학계의 평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작가는 새로운 옹기의 형식을 발굴해도,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문화의 장이 부족해 옛 방식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옹기가 처한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오늘날 이뤄지고 있는 옹기 제작의 실태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세 가지 영역은 ‘전승적 가치 지향’, ‘기능성 추구’, ‘재료적 사고의 지향’으로 나눠진다.
이인진 「형태 쌓기」 1.2m, 석기점토/무유, 장작가마
제품으로서 옹기의 세계 진출 가능성
고요한 아침의 나라, 소복이 눈에 쌓인 장독대, 시골에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 그리고 밥상,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때론 장엄하기도 한 옹기는 고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계절이 뚜렷하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풍성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다양한 한식문화를 이루었다. 자연에서 얻어낸 제철재료로 인해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은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해 왔다.
시대에 따라 잿물을 입히지 않고 구운 질그릇과 잿물을 입혀 고온에서 구운 오지그릇이라 불렸던 그릇인 옹기는 통풍과 고른 온도를 유지하여 음식의 변질을 최대한 막아주는 기능으로 독특한 쓰임의 가치와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한식문화와 의식동원醫食同源의 개념을 성립하였다. 흙으로 빚은 그릇에 잿물을 입혀 구워낸 옹기는 기물의 작은 기공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어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의 발효식품을 보관해 왔으며, 잿빛의 그릇에 여러 가지 음식을 담아내어 정갈한 한식 상차림의 미학과 예술혼을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 말 스테인레스, 플라스틱 소재 및 다양한 식기의 보급으로 옹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부터 국가에서 옹기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전승문화 계승 보호를 시도하고 있지만, 주거환경의 변화와 가공식품과 서구음식의 범람으로 전통적인 옹기는 점점 소비자에게 외면 받으며 옹기수요의 감소 현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전통을 바탕으로 옹기의 핵심 역량과 가치, 지속적인 혁신과 식문화 변화에 따른 효율적인 확장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우발도 그라지아 마조리카Ubaldo Grazia Majoliche 도자는 지난 세기말 식문화의 변화와 저가도자의 경쟁 속에서 쇠퇴의 과정을 겪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이탈리아의 전통방식의 지역 채석장에서 생산되는 점토를 전통방식의 정제과정을 거치는 성형 공정을 계승하였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식문화에 따른 도자형상의 다양성과 르네상스 도안기법을 도자에 접목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가치의 마조리카 도자를 이어가고 있다.
유성종 「풀잎장식옹기화병」
예술적 가치로서의 옹기의 전망
옹기는 손으로 만든다. 옹기는 생명의 모태로 불려오는 흙과 사람의 체온이 버무려져 오랜 기간을 두어 만들어지는 생활기이다. 한국의 옹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저 먼 조상이 있는 삼국시대까지 흘러가게 된다. 그만큼 옹기는 우리 삶 문화와 아주 가깝다. 인간 삶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음식을 담는 식문화부터 집 마당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생활공간 문화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한 집안의 부엌에도, 종일 밥 짓는 연기로 가득한 요릿집에도, 임금이 거주하는 궁궐에도 옹기가 있을 만큼 옹기는 우리 민족의 생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옹기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건조 기간만 합쳐도 약 30일, 총 제작 기간이 한 달하고 몇 주 넘을 정도로 뚝딱 만들어지는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기에 여름 장마철에는 한 달 혹은 두 달까지 제대로 된 작업도 순탄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늘 옹기를 써왔다. 너무 널리 유용이 쓰여 왔던 탓일까, 현대에 와서 옹기는 여타 다른 사라진 문화들과 비교해 당당하게 살아남아 보존되어 왔음에도 아직까진 ‘싼 그릇’ 이라는 인식이 주요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귀하게 보관되던 동시대의 문화인 백자와 비교했을 때 옹기가 가지는 가치는 늘 조금 더디게 인식되어 왔다. 신분과 경제적 형편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친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옹기는 늘 생활기로서의 한계를 뛰어 넘기 힘들어 보였다. 양반이나 고위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예술과 학문을 평민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리게 했던 한글을 ‘위대한 언어’라고 일컫는 우리는 모든 가정 안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자리를 지켜온 옹기에게는 ‘위대한’ 혹은 ‘예술’ 중 그 어떤 수식어도 붙이지 않는다. 옹기는 늘 생활 속에 자리를 잡아왔던 고유문화 임에도 불구하고 왜 예술이라는 인식은 늘 뒤처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옹기는 정말 생활기로서의 역할이 전부였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옹기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예술 문화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는 신라시대 왕실의 한 부서로부터 시작한다. 와기전瓦器典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이 부서는 흙을 구워 만든 그릇, 도자기 제작을 관장했던 부서로 그 역사는 조선시대의 경공장京工匠까지 흘러가 옹기의 수요를 위해 도기를 굽는 이들이 항상 있었음을 증명한다. 조선시대의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 지리와 풍속을 기록했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전국 곳곳의 지리를 기록했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에서도 옹기를 만드는 장인에 관한 언급을 한다. 이 때 존재했던 옹기장은 21세기로 와서 1990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옹기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마의 열을 유지해주는 땔감에는 오랫동안 타도 향이 좋은 소나무를 사용해왔고, 유약도 자연에서 온 풀과 나무들을 태운 잿물 등 천연 소재를 사용해왔다. 그러나 근대로 오면서 목재의 부족과 경제적인 단가 조정 등의 문제에 부딪치면서 전통 옹기 제작 기법은 조금씩 그 흔적이 변화를 거쳐 옅어지고 있다. 화학적인 소재가 섞인 유약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맑은 진흙을 구하기 어려워져 여기저기서 모아진 흙으로 구워지는 등 재료의 대체로 인해 전통 옹기는 변화의 바람을 맞았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우리 민족의 옹기 제작 기법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옹기장이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그때의 빛났었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정윤석 「칠량옹기」 52×52×54cm
현업 옹기작가로서 피부로 느끼는 오늘의 옹기
옹기가 전통의 형식을 지키는 전승도자부터 재료와 기법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도자문화중 유일하게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전통적 제작기술이 면면히 이어 내려온 것은 옹기이다. 그리고 지금도 각 지방의 특색대로 지역장인과 시, 도 무형문화재로 인해 보전되고 전수되고 있다. 옹기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면, 친절하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옹기의 재료와 기법은 실질적으로 산업적이나 예술적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좀 더 구체화된 전문적인 옹기이론을 자세하게 정리하여 학문으로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도자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관심을 받고 있었던 옹기는 앞으로 다양한 각도로 연구될 많은 주제들이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옹기작가들의 양상을 보면 전통 옹기, 실험적 해석에 의한 작품, 생활상품들이 제작되고 있으며, 옹기제작기법을 활용하여 건축과 환경도자 염전 바닥재 등 다양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 옹기의 전통을 잇는 현대의 중진, 신진작가들에 의해 앞으로 다채로운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이 시대의 현대인들에게는 전통성의 현대옹기를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될 장르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왜곡되지 않는 범위에서 광범위한 확장이 필요하고, 옹기의 본질을 너무 벗어나는 작업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