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현대도예의 새로운 재현 방식들
현대도예의 아방가르드 전략으로서 사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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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미술학 박사, 도예비평
최근 현대도예의 재현행위들 중에서 사진 이미지 차용은 가장 탈공예적 기법이며 가장 비전통적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대도예는 사진이라는 이질적인 매체의 고유성을 취함으로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생경한 담론과 이미지형식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사진이미지를 이용한 재현은 이것이 공예소재 및 기술위주의 기존 방법을 탈피하고 타 예술매체와의 결함을 도모함으로써 전통공예유산의 미학적 태도와 관습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자예술의 지평을 열려는 현대도예의 미학적 목표가 가장 명확하게 구체화되는 지점이다.
현대도예의 사진 이미지가 지닌 알레고리적 요소들
현대 도예가들은 사진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존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이것은 변형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원본 이미지가 지닌 독특한 아우라aura를 변이시키고 이후 또 다른 아우라를 습득하기 위함이다. 특히 현대도예의 사진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중 매체 이미지들은 원본 없는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가 지닌 독자적 시각을 통하여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때 원본성을 재획득한다. 발터 벤자민Walter Benjamin은 이 아우라의 붕괴와 생성이 예술가가 지닌 원작에 대한 비평적 변증법적, 재해석 곧 알레고리를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고 보았다. 이 알레고리가 바로 이미지 차용의 본질이며 표절, 도용, 모방 등과 구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틀인 동시에 이미지 차용이 현대미술사에서 갖는 예술적 가치라고 본 것이다.
현대도예에서 사진 이미지는 종종 페스티쉬pastiche나 패러디parody와 같은 방식으로도 등장한다. 프레데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페스티쉬를 포스트모던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았다. 패러디는 원본을 조롱하기 위해 원본의 양식적 고유성을 이용하고 원본의 특성을 포락하며 모든 패러디 이면에는 그것에 비추어 위대한 모더니스트의 양식을 조롱할 수 있는 어떤 언어적 규범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디의 언어적 규범이 효력을 상실 할 때 언어적 규범 역시 사라지고 단지 일상의 다양함과 이질성만 남게 될 때 바로 페스티쉬가 등장한다. 즉, 패러디가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에서 차이와 변형을 강조한 스타일을 이용하여 원본을 조롱하는 모방을 만들어 낸다면 페스티쉬는 숨은 등가나 풍자적 충동, 웃음이 없는 공허한 패러디로서 모방하는데 그친다. 제임슨에게 있어서 페스티쉬란 이미지로 현실을 변형하고 시간을 일련의 연속성에서 파편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변형은 알레고리의 중요한 특징이다.
알레고리는 예술적 기법이자 태도이며, 예술적 과장이자 수용활동으로 하나의 텍스트가 또 다른 하나의 텍스트에 의해 중첩되는 모든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교훈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형식이며, 현대에 와서는 넓은 의미로서 상징 범주 안에서 대립하는 성격을 지닌 의미와 형상 사이의 유사적 혹은 비유적 결합이 창출되는 경우를 말한다.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에 의하면 알레고리는 ‘덧붙여진 것’일 뿐 아니라 ‘대체’하고 ‘보충’된 것으로서 이전의 의미를 밀려내고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래 이미지를 차용하고 그 이미지를 파편화, 왜곡, 축적, 반복하고 부가물을 추가 보충함으로써 원래 뉘앙스와 리얼리티를 박탈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알레고리적 이미지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차용된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차용의 작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의 불투명성이며 바로 이점이 사진 이미지를 이용하는 현대 도예작품들을 알레고리로 인정할 수 있게 만든다.
전통도예의 보수성과 관습성을 해체하려는 대표적인 알레고리 기법을 이용하려는 작가들 중에 폴 메튜Paul Matieu, 그레이슨 페리Grayson Perry의 방법이 주목된다. 이 중 그레이스 페리의 작품을 예로 든다면, 그는 빅토리안식 전통 기물 표면 위에 외설스럽고 아마추어적이며 유머러스함이 담긴 사진 전사와 그라피토graffito로 키치 이미지를 담는다. 페리의 표현은 ‘수공vs 기계’,‘전통기형 vs 반미학적 도상’의 대립구조를 형성하고, 이 알레고리 구조가 촉발하는 간극의 충격이 관람자의 시선과 마음을 흔들 때, 바로 현대도예의 저항성이 작동된다는 점을 증명해준다.
현대도예의 사진 레디메이드는 원본의 훼손 또는 변형 뿐 아니라 복제로도 시도된다. 복제는 곧 원본의 해체이다. 이에 대해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현대미술의 근본적 변화양상을 사진매체를 매개로 해석하는데 이 사진이 취하는 중요한 기능을 ‘해체 전략deconstruction strategy’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현대미술의 전개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의 특징을 아이콘icon에 대한 지표index라는 기호학적 질서 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사진을 통해 검증하고자 했다. 또한 사진 이미지 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복제’를 포스트모던시대 예술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정의하며 원본성에 대한 모더니즘 이론에 맞섰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에 의하면 작품은 떠도는 텍스트들의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진 이미지의 이용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불가피한 사항이라고 했다. 사진 이미지의 이용에 대해 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사진의 재현이라는 특성은 원본성, 아우라, 진정성 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해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크라우스와 크림프는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사진에 주목하여 사진의 특성인 기록성, 재현성, 반복성 등을 통해 모더니즘의 이론을 해체한다. 이들의 입장을 현대도예에 적용할 때 적합한 것이 사진이미지를 이용한 전사기법이다. 마렉 세큘라Marek Cecula의 「자기 카펫The Porcelain Carpet」(2002)을 예로 들면, 그는 유명 공예품 혹은 명화를 도자로 재처리함으로써 그는 고전 예술의 아이콘들의 효력을 상실시킨다. 원본의 상징과 아우라를 날려버리고 단지 아우라가 사라진 도상과 이질성만 남김으로써 새로운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자기 카펫The Porcelain Carpet」의 아라비아풍 카펫은 기계가 만든 생산물들 위에서 카펫이 담고 있는 수공의 가치와 장인정신을 상실하고 해체되어버린 유사 이미지로만 남는다. 결국 명화, 카펫 등 고전미술을 변형, 복제하는 세큘라의 해체 전략을 통해서 연구자는 서양 고전유산의 정보, 상징, 감정적 상태를 새로운 도자예술로서 재고하려는 현대도예의 아방가르드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 전략으로 사진 이미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현대도예의 사진 이미지들을 아방가르드 전략으로 이해하는 첫 번째 이유는, 사진을 도자화陶磁化시키는 방식이 갖는 전통도예에 관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1970년대 이후 전사, 석고몰드, 상업용 저화도유와 러스터유, 대량생산 도자기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도자 재료 및 기술이 전통공예의 수공성과 미적가치에 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인정되는 일련의 과정이 놓여있다. 이 과정에서 사진 이미지 또한 자연스럽게 아방가르드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공방중심 도예문화’에서 탈피하여 작가의 저자성과 창의적 표현을 중시하는 현대도예의 변화는 1970년대 산업도자의 유약, 태토, 소성방법 등을 예술화함으로써 기존 공예적 가치를 거부하려는 일련의 서부해안작가들에 의해 정점을 이루었다. 특히 하워드 코틀러Howard Kottler는 미국 도자예술의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중요하게 선행되어야 할 문제로 장인정신의 개념변화를 주장하며 이 움직임의 선두에 섰다. 그는 훌륭한 장인정신은 도예전통의 발전과 다른 것이며, 새로운 도예문화에서는 도예전통과의 관계의 유무가 아닌 작가의 개인 아이디어가 도자재료와 기술을 어떻게 구체화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결국 도예가들이 당연시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던 기본적인 것들(기술, 형식, 제작자의 참여여부 등)에 대한 관심과 당위성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아방가르디스트avant-gardistes들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으로 전통도예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산업재료를 선택하고 이들을 직접 제조하는 대신 상점으로부터 구입하여 사용함으로써‘기술technic, 技術’보다 ‘개념concept, 槪念’을 중요하게 다루고 나아가 그 개념을 ‘도상화image, 圖像化’ 내지 ‘상징화symbolization, 象徵化’ 하려는 새로운 도자조각의 경향을 낳았다.‘슈퍼 오브제super Object’의 등장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 새로운 경향은 구상성concreteness을 띄고 이미지를 정치·사회 언어화하려는 현대미술의 대항예술화 경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사회․정치적 현안을 서사적으로 표현하고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비판적 시선에서 통찰하기 위해서는 실재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사진의 도상들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현대도예가 가장 첨예하게 다루는 주제들 중 하나는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긴장 국면들이다. 즉 전쟁과 같은 국가 간 충동, 종교 갈등과 각국의 이해관계의 충돌, 그리고 핵의 위협과 더불어 내가 속한 도시,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다루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이 심화될수록, 시각예술은 더욱더 이러한 갈등을 첨예하고 진중하게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표출시킨다. 이때, 이러한 폭력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물리적인 측면보다는 좀 더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다. 즉, 자기기술自己記述을 본질로 삼는 예술특성 때문에 물리적 폭력보다는 사회적 폭력이 유발하는 고립, 우울증, 그들의 자아실현, 자주성, 자아인식을 발견하기 위한 우리들의 무능력함, 개인적인 자기고뇌 등 개인이 겪는 심리적 한계성이 더 강조된다. 전쟁, 정치 및 사회적 문제, 대중문화와 물질문화의 병폐, 젠더에 관한 문제, 환경 및 사회문제 등 우리 사회의 산적한 현안들이 첨예화되고 다양화될수록 현대도예는 추상적 표현보다 구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지향하며, 그 이미지를 만드는 재료와 수단 역시 전략화하려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현대도예는 점차 전통적 소재와 기술을 사용해 얻는 은유적 암시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실재처럼 맞닥트릴 때 받는 시각 충격을 더 선호하는 추세다. 따라서 이에 더 유리한 재료, 기법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현대도예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을 위해 변화된 주제와 목적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재료와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것이 기술보다 도상을 중시하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특히 전쟁, 사회, 환경 등 문제를 다루는 칸프런테이셔널 도자confrontational ceramics에서 사진 이미지의 역할은 실재 사건을 구체적으로 상기시키고 정치사회적 현안을 제시함으로써 시각수용자들의 행동력을 고취시키는데 매우 적합했다. 이 때문에 구체적 현실을 하나의 순간포착 이미지로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가 빠르게 안착될 수 있었다. 여기에는 1970년대 이후 전사기법이나 현대판 전사지라고 할 수 있는 유약 처리된 제록스 사진의 도입이 뒷받침되며 가속화된 감이 없지 않다. 힘든 육체적 노동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도자기에 실사 이미지를 적용할 수 있게 되면서 도자예술의 표현한계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현대도예의 사진이미지 차용의 확대 가능성
사진 고유의 매체특성과 재현방식은 현대도예가 기존에 사용하던 재현방식들보다 우리 사회에서 당면하는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에 대해 도발적인 코멘트를 만들어내는 데 더 유용할 뿐 아니라 강력한 이미지 전달 능력 면에서 타 재현방식보다 우월하다. 또한 이 방식은 현대도예가 사진매체가 가진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역사성 즉, 사진적 사실주의를 담보로 사회적 문화적 혹은 정치적 상징체계 속에서 기능해온 사진의 사회․문화적 상징적 코드를 차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나아가 자유로운 프레이밍framing과 몽타주의 채용, 병치와 초현실주의 기법 등 사진언어와 문법을 차용하여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과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미지 차용은 현대도예의 재현행위 가운데 중요하게 읽혀진다.
향후 현대도예가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공고히 하면할수록 전통 재현기법의 은유적 표현보다는 사진을 이용한 재현방식이 더 확대 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대중사회의 이미지들은 미디어, 인터넷 등 새로운 전달매체를 타고 더욱 급속히 우리 가치관과 사고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할 뿐 아니라, 우리가 그 폐해를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걷잡을 수 없이 이미지의 생산과 전략 역시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빠르게 달려갈수록 사회가 해결해야할 문제들도 함께 양산된다. 결국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현대도예의 개입 가능성이 강화될수록 실천행위로서 사진 이미지의 재현의 역량과 적용 역시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의 심화는‘표현하는 예술’에서 새로운 ‘행동하는 예술’로서 진화하려는 현대도예의 새로운 위상 변화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