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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6월호 | 특집 ]

도자의 대형화, 미적 가능성과 과제-이재언
  • 편집부
  • 등록 2013-07-02 16:17:02
  • 수정 2013-07-02 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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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대형화, 미적 가능성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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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 미술평론가, 도시미학연구소장

 

오늘의 도자陶瓷는 왜 커지고자 하는가?

전통적으로 도자예술은 크기보다 밀도와 완성도를 중시해왔다. 재료의 성분과 성형 및 시유, 소성에 있어 작은 오차로도 상이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작업상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데이터와 매뉴얼, 전 공정에 대한 기술력, 주술과도 같은 경험적 암묵지暗默知의 축적 등이 성패를 결정하다 보니 밀도와 완성도를 중시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 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미의식이나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되는 측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시장 등의 폐쇄적 실내공간에 적합한 미적 향유, 즉 순수한 미적 향유와 지각을 중시하는 근대적 미의식의 조건 아래에서라면 밀도에 역점을 두는 규범이 가능한 이야기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작품의 퀄리티와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제작자(작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대형화는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를 방해할 지도 모르는 신뢰하기 어려운 부정적 성향의 것이다. 진시왕릉 병마용과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요구되는 일이 드물다. 물론 대형작품을 뒷받침해 줄 소지 확보나 대형 가마의 설치 및 정밀한 가열 시스템 등의 기술적 토대 역시 불확실했다.

그러나 근대적 패러다임이나 미의식이 이완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20세기 후반부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게 된다. 대전환의 계기를 맞이해서는 미술 전반에 퍼진 미의식이나 규범들이 확실히 이전의 것과 달랐다. 미적 영역에서 달라진 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정적이고 순수한 미적 경험이란 현실 속에서 불가능했으며, 조형은 폐쇄적인 데서 벗어나 열린 공간, 열린 세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고정적이고 단선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가변적이고 다면적인 성질의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둘째, 가공할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의한 대량생산 체계,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폭발적인 양적 잉여와 인스턴트화는 밀도와 완성도의 가치를 희석시키기 충분했다. 셋째, 매체들에서 생산되고 복제되는 수많은 시각적 이미지와 자극들이 새로운 환경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점. 예술작품은 보다 새로운 양상과 형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으로 치닫게 된다. 요컨대 퀄리티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변화된 세계상은 도자조형도 역시 시대적 패러다임에 맞는 변화를 강요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요구들 속에 크기에 대한 문제도 자연스럽게 삽입되고 있었다. 특히 현대미술이라는 변덕스럽고 속물스러운 환경 속에서 도자예술 고유의 속성과 가치가 간과된 채, 냉엄한 시장으로만 내몰리면서 ‘현대’라는 옷을 입고 대응에 부심해 왔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현대도자 조형운동의 잠재의식 속에는 장르들과 견주어 보는 대결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회화에서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의 담론과 양식이 도자에서도 그대로 수용되고, 그 결과물들을 견주어 보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다. 수용과 대결적 본능 속에서 모름지기 크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것도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다.

 

공공미술과 도자

굳이 현대미술과의 관계 속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작가라면 누구나 크기에 대한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도예가라면 누구나 거대 작품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품는 게 당연하다. 70년대에 상상을 초월한 압도적 규모의 진시왕릉 병마俑이 중국 서안에서 출토되었을 때, 도예계가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물론 절대권력자의 사후를 지키는 부장품이라지만, 미적 범주에서 보아도 그것은 인류 최대의 설치작품이자 미적 퍼포먼스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폼페이 발굴이 19C 신고전주의를 촉발시켰듯이, 20세기의 도예가들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도예적 가치에 눈을 돌리게 한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도자예술은 작은 크기만을 다루는 숙명이 결코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새로운 조형에 대한 욕구와 충동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미술계에는 공공미술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미적 향유가 이제 폐쇄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장소와 시간을 통해 개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전향적 향유방식을 강조하는 공공미술이 우리나라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우리의 경우는 지난 90년대부터 대형건축이 이루어질 때 소정의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 법령이 발효되어 시행되어 오고 있다. 적지 않은 폐단 때문에 논란이 되기는 하나, 그로 인해 서울은 거리의 공공조형물이 가장 많은 국제도시로 부상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재는 공공미술작품들이 재료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는 고민스런 상황이다. 거리의 활력적이고 다채로운 풍경과는 달리 거리의 미술작품이 오히려 식상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조형성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그나마 일정한 심의과정을 거친 것이기에 논외로 치자. 거리의 조형물들이 브론즈, 석재, 스텐레스 스틸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그동안 주로 거리의 공공조형물을 독점해 온 작가들이 조각가 중심이다 보니 사용하는 재료도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브론즈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특유의 피막이 발생되어 오늘의 도시환경에 조화되기 어려운 면이 있으며, 돌의 경우 빗물과 먼지가 엉켜 도시미관을 오히려 해치는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최근에 가장 많은 사용 빈도를 보이는 스텐레스 스틸의 경우는 재질감이 차디 찬 느낌을 주고 있어 거부감을 준다. 예술작품으로 미적 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는 훌륭하나 재료적 한계는 시민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기 어려운 현실이다.

사실 공공미술 작품은 형태도 중요한 문제지만 색채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전통적 조각재료는 색채 표현에 약점이 많다. 재질 자체가 안료를 흡수하기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장기간 자연광에 노출된 후 변색과 훼손이 잦다는 점이 누누이 지적되고 있다. 도자의 경우라면 훨씬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며 색채 견뢰도에 있어서도 타 재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전통 재료로 된 조각작품들의 경우 집적된 먼지와 빗물이 섞여 불결해 보이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도자작품의 경우 탈색의 우려가 없고, 먼지와 빗물이 서로 결합하여 작품의 표면에 흉하게 점착되는 경우도 드물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을 만한 일이다. 공공미술에서 도자작품이 주는 선입견만 극복될 수 있고, 적정의 샘플들이 보급된다면 대형 도자작품들의 활로는 충분한 시점이다. 또한 침체된 도자환경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도 도자예술이 공공미술로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대형도자를 위한 과제

도자예술만큼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장르가 또 있을까. 도자가 없는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랜 역사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미술이라는 환경에서만 보자면, 폭넓은 대중적 애호나 다양한 활로를 확보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도자예술작품이 그동안 미술시장에서 고전해온 이유도 분명하다. 관리의 어려움, 즉 깨지기 쉽다는 점을 든다. 조형적 가능성이나 잠재력은 널리 인정되면서도 깨지기 쉽다는 점은 사실 치명적이다. 작품이 깨진다는 것은 자산가치의 소멸을 의미하며, 아울러 인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 사항이다. 바로 이러한 우려와 편견은 공공미술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고 있다.

사실 작품이 대형화가 된다는 것은 기물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안전장치를 구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이 대형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변기를 생각해 보면 설득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저화도 도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는 두께와 건축적으로 안전한 고정 시공에 의해 변기가 생활공간에서 불안감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된 비잔틴이나 사라센 유적들, 그리고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보듯이 건축적 지지체와 함께 시공된 타일 모자이크 같은 경우도 일말의 우려조차 불식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磁化가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 안정성은 더 확실해진다. 문제는 아직 공공조형물로서의 좋은 본보기가 없다는 데 있다.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현실 속에서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방법 말고는 없다. 지난 30여년의 현대도예사 속에서 도자의 대형화를 위한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시행착오의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조형적 가치는 일단 논외로 치고, 도자작품이 대형화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역시 성형을 위한 ‘소지’와 ‘소성’을 위한 가마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밖에도 소소하게 수반되는 문제들이 많겠지만 관건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확실히 도자는 예술이든 산업이든 기술력과 시스템 싸움이다. 근대화, 산업화 이후, 길드나 공방 등의 역사적 조직에서 철저히 개인으로 환원된 도예작가들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대형작품의 경우 성형의 방법도 중요하지만 역시 흙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정적이다. 점력과 성분, 최소 1270도의 고온을 견디어내는 등의 기본사항이 충족되는 소지의 확보가 지상과제이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대형화에서 자신감을 갖는 것도 좋은 흙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흙 자체가 대형작품의 물리적 지탱을 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초벌만으로도 도자작업을 완결시켜주는 점은 우리에게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도자 경쟁력은 흙의 통제와 관리에서 온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대형작품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지의 개발이 관건이다.

도자성형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소성이라는 단계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관문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의 궁극적인 성패를 결정해주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관문이다. 열 조절 등과 같은 취급 노하우도 관건이지만, 역시 대형작품을 소성시킬 수 있는 대형가마가 있고 난 다음의 문제이다. 현대도자의 역사는 조금이라도 키를 키워보려는 몸부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대형도자작품을 위한 프로그램들이나 워크숍들이 많았지만, 항상 대두되는 문제가 가마였다. 가마의 확보와 소성에 따른 적정의 기술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릴 수밖에 없기에, 중요한 선결과제인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대형도자는 작가 혼자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특히 소지 개발이나 대형 가마를 설치하는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과제이다.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과, 인력, 설비 및 비용의 투입이 요구된다. 더러 개별적으로 대형 도자작업을 시도한 사례들이 있지만 여러 가지 조건들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개별적으로 시도될 수는 있지만 불확실한 판로로 인해 연구개발의 성과들이 연속성을 갖지 못했던 아쉬움도 적지 않다. 사실 대형 도자조각의 경우는 아무래도 공공 프로젝트가 수요를 창출해주었을 때 피드백이 원활해진다.

 

도자는 이제 시스템이 결정한다. 자원과 기술력을 효율면에서 극대화시키고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시스템이다. 진시왕릉 병마용도 결국은 시스템의 창조물이었던 것이다. 토인비도 역설했듯이 시스템은 기술의 진화적 정점이다. 우리의 경우 예술로서의 도자는 오랜 기간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지원이 많지만 예술의 측면에서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단국대에서 한국세라믹기술원의 지원을 받아 대형도자용 소지를 개발한 성과에 기반하여 도자조각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다 한다. 3.5m의 대형작품까지 소화해낼 수 있는 가마를 갖춘 인프라에 더해진 정부(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은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의 도시들이 흙의 감각을 최고조로 과시한 도자의 걸작들로 채워질 미래를 생각해보자. 일본 규슈의 이마리가 자랑하는 거리 도자조형을 압도하고도 남는 품격 높은 도자조각의 숲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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