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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월호 | 뉴스단신 ]

도예가가 보내는 편지 두번째
  • 편집부
  • 등록 2010-11-16 16:34:48
  • 수정 2010-11-16 18: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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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희 도예가가 아버지 천한봉 도예 명장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아버지께
새벽2시, 방문이 열리면서 잠시 후 작업실에 불이 켜지고 아버지의 물레 돌리는 소리가 새벽을 깨웁니다. 아버지! 이제 여름도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과 구름이 친구가 되는 계절이 왔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금년 여름은 구들방으로 되어있는 작업실이 어느 때보다도 찜질방처럼 느껴졌던 한 해였습니다. 한 낮의 삼복더위를 피하여 자정 즈음 봉통에 불을 지피고 나면 망뎅이장작가마 사이사이 칸 문마다 뿜어져 나오는 메케한 연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장작타는 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울리던 날이 떠오릅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도 맵지 않은데, 넌 왜 그러냐?”고 말씀하시며 매케한 연기에 눈도 못 뜨고 있는 제 얼굴을 바라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릅니다. 팔십 평생 흙과 불과 물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이신데 겨우 20년 흙을 만져온 제가 아버지처럼 순응하기에는 아직 이른가 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불 때는 것을 배우기 위해 그 긴 시간 옆에 있겠노라면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자라”고 “한사람만 고생하자”고 하시며 한사코 들여보내시던 일, 사기모지에 부딪힐까 조심스러워 장작을 쉽게 넣지 못하던 저에게 칸 바닥을 마당에 그려놓고 장작 넣는 연습을 하셨다는 아버지의 어렸을 적 경험담을 듣고 그렇게 해보던 일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그 일들이 모두 밑그름이 되어 불 때는 일이 기대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팔순이면 하루 종일 앉아 있기도 힘든 연세인데, 함께 작업해 온 그 시간이 무색하게 손수 열 두세시간 동안 불을 때시는 열정은 젊은 저로써도 흉내내기 힘든 일입니다. 가끔은 아버지의 작업방식에 투정도 부려봅니다. 요즘 작업방식대로 하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데, 옛날 아버지가 배웠던 방식과 도구를 사용하니까 발전도 없고 실패율도 높고 마냥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습관이라면 긴 세월 몸으로 익혀 머리보다 몸이 먼저 행하도록 하려는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아버지! 지금은 황혼의 뜨락에 떨어진 가을날 나뭇잎처럼 깊게 파인 주름과 물레를 돌리시느라 닳아 없어진 손가락 지문으로 저는 이렇게 자라왔습니다. 제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다시 후손들이 저에 닳은 손바닥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가끔 뜰 앞의 개울물보다 느린 걸음걸이가 힘겨워 보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의 열정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오로지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먼 훗날 장작가마 옆에 앉아 서리내린 흰머리를 쓸어올리며 장작을 던지시던 아버지를 회상하는 일이 저에게는 행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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